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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온천 마을로 떠나다…좋아서하는밴드의 ‘음악여행’
지난달 28일 새 싱글 ‘예쁜섬’…”지난해 여행 도중 완성”
코로나 시국 연상되는 가사 “개개인 존중하는 사회되길”
2020-05-13 00:00:00 2020-05-20 11:35:3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온천 김이 뽀얀 세상을 만들던 꿈의 마을. 울긋불긋 단풍숲을 가로 지르던 오렌지빛 석양 한 줌.
 
이 동화 같은 풍경에 걸터앉으면 잠시나마 현실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작업 노트를 펼쳐 생각을 글로, 음표로 적어 내려가는 순간이 경쾌해졌다.
 
지난해 가을, ‘좋아서하는밴드’[손현(기타), 안복진(아코디언, 보컬)]는 일본 혼슈 북부 동해 연안 아키타현으로 ‘음악 여행’을 떠났다.
 
지난해 가을 아키타로 '음악여행'을 떠난 좋아서하는밴드[손현(기타, 왼쪽), 안복진(아코디언, 보컬)]. 사진/좋아서하는밴드
 
이 시골마을은 온천 7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세계였다. 노천의 단풍에 젖고, 자연에 스며든 ‘멈춤’의 시간. 현대적인 시설도, 디지털 장비도 없는 이 곳의 신선함은 지난해 여름 멤버 변동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새로운 전환점처럼 다가왔다.
 
이 음악 여행은 한일 예술 교류 프로그램 ‘아키타 숲속 갤러리’ 일환으로 진행됐다. 뮤지션, 디자이너, 화가, 사진가, 캘리그래퍼, 여행작가 같은 한국 젊은 예술가들이 여행지 감흥을 자신들만의 ‘예술 언어’로 풀어내는 프로젝트. 예술로 국적, 장르 등 세상의 모든 경계에 맞서겠다는 게 취지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의 한 카페에서 밴드를 만났다. 이 카페는 아키타 여행 직후, 밴드가 당시를 추억하며 공연했던 장소다. 멤버들은 “아키타 여행은 밴드로서 새로운 음악 지향을 고민하게 해준 일종의 전환점이었다”며 “멤버 변동 후 적응할 새도 없이 진행된 아키타 여행에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뭉뚱그려뒀던 스케치 작업물을 완성시켰다”며 웃어 보였다.
 
지난달 연남동 한 카페에서 좋아서하는밴드와 음악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센다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버스로 3시간 내달리면 ‘그 곳’이 있었다. 산 속에 둘러싸인 풍경이 그림 같던 뉴토 온천마을. 함께 간 젊은 한국 아티스트들, 지역민들과 사흘간 섞여 창작도 하고 공연도 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골 마을에 불시착한 기분이랄까요.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그간의 삶에 대해 돌아봤어요. 갑작스런 밴드 구성원의 변화,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저….”(복진)
 
멈춤의 시간은 새로운 생각의 물길을 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들에 자꾸만 얽매여 있었던 것 같았어요. 음악가로서 저는 변한 게 없는 데….”(복진)
 
일본 혼슈 북부 동해 연안 아키타현에 위치한 뉴토온천마을. 사진/좋아서하는밴드
 
지난달 28일 나온 새 싱글 ‘예쁜섬’은 이 여행 중 마무리한 곡이다. 서울에서 스케치만 그린 뒤 악기, 노트북을 들고 가 아키타에서 완성했다. 동화풍의 섬세한 타건으로 시작하는 음악은 중후반 첼로 등 풍성한 현악이 겹쳐져 알록달록한 ‘섬’의 세계를 그려낸다.
 
화자는 “개개인은 섬이며 그 섬들을 멀리 떨어져 보면 우리라는 외로운 세상(섬)이 된다”고 말한다. “이기심이 결국 우리를, 이 세상을 더 작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하는 관조적 자세로 각자 존중해준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어쩐지 코로나19로 연대의 의미가 시들해지는 오늘날 우리 세계를 비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한 송이의 꽃을 품고/동동동 떠있는 외로운 섬이라네/고개를 돌려 서로를 안고 안으면/하나의 섬들은 커다란 세상’
 
“흔히 ‘우리’라는 말을 너무 흔하게 사용하는 한국사회의 정서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혼자 있는 것은 뭘까, 외로움은 뭘까, 자꾸 묶으려다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각자로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데…. 마침 이 어려운 시기에 곡이 제 때 나온 것 같아 다행이에요.”(복진)
 
일본 혼슈 북부 동해 연안 아키타현 뉴토온천마을에서 즉석 라이브를 하는 좋아서하는밴드. 사진/좋아서하는밴드
 
뉴토온천마을에서는 열댓명 앞에서 기타와 멜로디언, 생목 만으로 라이브를 했다.
 
동화 같은 멜로디가 곧 주변을 물들였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 낯설게 여겨지던 풍경,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 일본어가 서툰 멤버들에게 음악은 문화권을 잇는 ‘제3의 언어’였다. 최근 두 국가 간 정치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문화는, 음악은 골을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멤버들 입장이다.
 
“정치 사회적 문제가 있다고 문화까지 차단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 생각해요. 서로 회복하고 다시 이해하게 하려면 이런 예술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손현)
 
일본 혼슈 북부 동해 연안 아키타현 뉴토온천마을로 '음악 여행'을 간 좋아서하는밴드. 사진/좋아서하는밴드
 
이들 음악이 지닌 교류, 교감의 힘은 최근 싱글작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를 테면 ‘모두 울어도 되는 날’은 세월호 때 간직하고만 있던 메모를 파리 여행 중 겪은 총기 테러를 보고 구체화한 곡. “운다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잖아요. 역으로 생각해봤어요. 우는 날이 국경일로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아픈 마음이 좀 덜해지지는 않을까.”(복진) 일렉트로닉 건반이 그리는 처연한 멜로디는 복진의 또랑한 보컬, 풀밴드의 역동성(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드럼, 아코디언)과 겹쳐져 슬픔을 누그러뜨리는 식으로 작용한다.
 
최근 밴드는 싱글 작업 프로듀싱을 맡아주고 있는 이한철과의 인연으로 ‘방방’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는 18명의 뮤지션이 ‘사회적 거리두기’ 취지에 맞춰 각자의 방에서 녹음한 음악영상을 합쳐 제작해 화제가 됐다. 밴드는 “음원이 실제 코로나 기부까지 돼 뿌듯했다”며 “이한철 선배에게선 음악을 스트레스보다는 즐거운 태도로 다루는 긍정적 마음, 추진력, 곡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 등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멤버 복진의 경우 최근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규 4집 ‘MAP OF THE SOUL : 7’ 수록곡 ‘filter’ 작사에도 참여했다. 그는 제의를 받았을 때 “지난 10년의 음악 활동을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에 더 흥미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최근작 ‘예쁜 섬’은 어떤 여행지에 빗댈 수 있을까. 아키타일까.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 어떤 곳이든 거기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이번에 아키타에서 느낀 게 그거예요. 노래를 틀고 딱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키타현 뉴토온천마을에서 열린 한일 예술 교류 프로그램 ‘아키타 숲속 갤러리’ 중  좋아서하는밴드를 소개한 그림. 사진/좋아서하는밴드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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