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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최고의 '극한직업'은 대한민국 국민
2019-03-11 06:00:00 2019-03-11 06:00:00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액은 역대 1위에 올라섰고 누적 관객 수 1600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1위 영화 ‘명량’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복잡하기 않다. 전통적인 흥행 영화의 코드를 쫓아 주인공은 경찰이다. 그러나 영화 ‘베테랑’과 ‘범죄도시’에서 봤던 경찰의 모습이 아니다. ‘극한직업’이라는 영화 제목대로 제대로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서 극한상황에 놓이는 주인공들의 삶이다. 급기야 마약반 해체 위기까지 몰리자 마지막 선택한 ‘극한결정’이 잠복근무다. 마약 범죄 조직의 아지트 앞 망해가는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한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형사의 고향집 갈비 소스를 적용한 통닭으로 영업을 시작하는데 이 영화처럼 대박이 난다. 시대정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고 끝까지 관객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심리 추리극도 아니다. 왜 엄청난 대박행진을 이어가는 것일까. 한마디로 ‘공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편안한 삶이 아니다. 목숨을 건 수사를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돌아가는 건 혹독한 평가와 가혹한 시련뿐이다. 우연히 하게 된 또 다른 ‘극한직업’인 치킨집 ‘수원왕갈비통닭집’은 현실에 없는 꿈과 희망이다. 전국의 수백만 치킨집 사장 또는 예비 창업자들은 이 영화를 보고 대박집 대리 만족감과 부푼 기대감으로 몇 시간 동안만큼은 행복주사를 맞은 것처럼 행복했을 것이다.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마다 후련한 웃음과 함께 저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쓴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영화 속에 등장한 형사 그리고 치킨집 사장이 ‘극한직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누가 더 ‘극한직업’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최고의 ‘극한직업’은 누구일까.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영화 속 명대사처럼 ‘지금까지 이렇게 극한 상황은 없었다. 이것은 현실인가 꿈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겪는 극한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선 정신적 고통이다. 올해 들어 두 달을 허송세월한 대한민국 국회는 민생은 내동댕이친 체 시도 때도 없이 정쟁으로 소일하는 모습이다. 의원들의 각종 부정과 비리 의혹은 이제 더 이상 들어줄 인내심마저 사라졌다. 눈만 뜨면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막말과 비리, 부정부패 의혹 관련 뉴스로 주체하지 못할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차라리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극한상황’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고통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금방이라도 신천지가 열릴 것처럼 장밋빛 경제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은 공수표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달 12~14일 실시한 조사(전국100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7%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향후 1년간 우리나라 경제가 어떨지’ 물어본 결과 ‘나빠질 것’이라는 의견이 50%나 되었다.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응답은 고작 17%에 그쳤다. 객관적인 경기 지표는 매우 좋지 않은데 우리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정부의 ‘희망고문’에 고통 받고 있다. ‘극한직업’을 보고 관객들이 공감한 것은 영화 속의 대박 치킨집이라는 설정과 달리 현실에서는 처참한 소상공인들의 아픔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고통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면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가장 큰 고통은 육체적 고통이다. 바로 미세먼지 때문이다. 국민들은 수 년 전부터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이야기해왔고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대책을 요구해 왔다. 미세먼지는 평균 수명을 단축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약 1년 여 전 실시된 트렌드모니터의 조사(전국1000명 온라인조사)에서 응답자의 85.8%는 ‘미세먼지 공포가 일상이 된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국민들은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이미 전달했지만 환경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의 눈높이를 쫓아가지 못했다. 이제야 처방이라고 내놓은 안이 고작 인공강우 정도다. 국회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다고 한다. 미세먼지의 주요 발원지로 지적되는 중국에 항의 차 ‘방중단’을 보내겠다고 한다. 늦어도 너무 늦은 뒷북 대응이다. 오죽했으면 미세먼지의 유일한 대책은 이 나라를 떠나 청정국가로 이민 가는 길뿐이라고 할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너무 많이 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야말로 최고의 ‘극한직업’이다. 누구의 주장처럼 더 이상 이 ‘극한직업’을 이기지 못해 나라를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 없는 국가, 국민 없는 정치, 국민 없는 지도자는 말짱 도루묵이다. 영화 ‘극한직업’의 대박 흥행을 바라보며 ‘극한직업’인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이런 미세먼지는 없었다. 먼지라서 못 막는 것인가, 뭔지 몰라서 못 막는 것인가.’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insightk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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