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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십수 년 간 어려웠는데 더 버텨야한다
2020-05-15 06:00:00 2020-05-15 08:05:32
‘밴드 시대’가 저문 건 오래지만, 1980년대 ‘에어서플라이(Air Supply)’라는 2인조 밴드인 산소 공급자가 있다. 사실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꽃중년보단 80년대 학번인 장년층들에게 인기를 끌던 멜로디다.
  
기타 겸 보컬리스트인 그래함 러셀과 리드 보컬 러셀 히치콕의 감미로운 목소리, 서정적인 멜로디를 처음 접한 시기는 ‘고딩’시절이다. 학교마다 하나쯤 있다는 ‘미친 멍멍이’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뺨 맞아야했던 까까머리의 기억은 또렷하다.
 
터진 입술로 양호실을 찾은 10분간의 뇌리엔 ‘All Out of Love’ 멜로디가 각인돼 있다. 요즘 ‘틴에이저’들에겐 마블영화인 데드풀 OST로, 중장년층에겐 80년대 추억의 ‘슈가맨’일 것이다.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결성한 이들의 환상적 듀오는 세월이 흘렸어도 예술의 확장성을 무색하게 하는 영원한 시류로 남아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순간도 시간의 틈 사이로 어느덧 불혹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경제의 확장성은 늘 제자리다.
 
아니 더 악한 구조가 됐다. 지난달 취업자가 47만6000명 감소한 믿어지지 않는 현실 탓이다. 지난해 말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취업자가 50만명 이상 급증하면서 고용 훈풍을 기대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슈퍼바이러스의 창궐은 47만6000명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실상은 50만명 이상 급증하던 예비 취업자와 더불어 직업을 잃은 47만명을 합한 100만명이 실업에 내몰린 셈이다.
 
지난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보다 심각한 처지가 됐다. 21년 전인 IMF 외환위기 때보단 조금 덜한 정도일 뿐, 최악의 고용참사다.
 
특히 ‘외환위기급’ 일자리 충격에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40대 실업자는 2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불안한 학창시절을 보낸 40대들은 2000년대 취업전선에서도 허덕이던 세대다.
 
40대 취업자 수 감소분에 대한 충격은 코로나발이 아니더라도 이미 올해 초부터 빨간불이었다. 올 1월 ‘고용동향 합동브리핑’을 발표하던 자리에서 1991년 이후 가장 크게 폭락한 16만2000명의 40대 취업자 수 감소분에 대해 정부 고위관계자는 ‘어느 정도 버틸 여력이 있는 연령층’이라고 했다.
 
십수 년 간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하며 버텼는데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년 간 어려웠는데 얼마나 더 버텨야할까.
 
경제의 허리를 위한 관련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부의 벌언 이후 코로나발 충격은 40대와 더불어 17만2000명의 30대 실업자, 15만9000명의 20대 실업자를 양산했다.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부랴부랴 관련 대책을 내밀었다. 긴급대책의 카드는 공공부문 중심 일자리 156만개. 
 
이미 몇 달 전부터 최악의 고용지표를 예견한 정부부처의 움직임 치고는 ‘땜질식 일자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급한 불을 꺼야하는 정부의 고민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일자리 유지·창출의 몫이 기업에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 맞는 정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통계 지표의 착시를 없애야한다. 취업자가 47만명 추락하면서 실업률이 0.2%포인트 줄어든 현상을 주의 깊게 봐야한다.
 
바로 비경제활동인구에 대한 물음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한 경제전망가 크리스 마틴슨(CHRIS MARTENSON)의 ‘크래시 코스’를 보면, 정부 입맛대로의 통계가 잘 드러나 있다.
 
예컨대 미국의 과거 정부를 보면, 상품 가격이 인상되면 품질 향상을 이유로 가격상승분을 공제하거나 은행 수표 사용에 대한 면제 수수료를 포함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높고 낮음의 인플레이션 상승률, 국내총생산(GDP)나 소비자물가지수 등 통계의 마법이 왜곡된 지표를 불러온다.
 
미국 실업률은 대공황 이후 최악인 14.7%이나 우리는 4%대의 안정적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비경제활동인구가 83만1000명 늘어난 1699만1000명이다. 이들은 실업률 통계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비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한 지난달 실업자는 130만7000명 규모다. 무디스의 'Aa2' 유지는 우리사정이 좋아서가 아니다. 미국 등 세계경제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성장주도형 경제는 영원한 시류가 될 수 없을지 모른다. 알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 보단 포스트코로나의 고용설계가 긴급한 시기다.
 
이규하 정책데스크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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