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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새우싸움에 ‘고래’ 넷플릭스가 얻은 ‘대물’
2020-04-17 00:00:00 2020-04-17 00:00:00
이해를 돕기 위해 ‘물건’에 비유해 본다. A사라는 제조업 회사에서 멋진 상품을 만들었다. 홍보 및 판매를 B사란 전문업체에 맡겼다. B사가 해외루트를 통해 상품 판매를 계약했는데 A사로부터 일방적 계약 파기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A사가 C사란 대형 유통업체에 상품 전량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 논란 배경이다. 
 
‘사냥의 시간’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쳐스’가 이 영화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 ‘콘텐츠 판다’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19’로 불거진 극장가 고사 분위기에 스크린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를 통한 온라인 서비스로 방향을 바꾸겠단 이유다. 졸지에 ‘콘텐츠 판다’를 통해 이 영화를 매수한 30개국 영화사들은 일종의 허위 계약 피해자가 됐다. 
 
영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례 없던 상황이라 모두가 당황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과거 넷플릭스 상영 방식을 택했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사냥의 시간’ 논란은 법정 공방 끝에 ‘콘텐츠 판다’의 ‘일단 승리’로 일단락 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냥의 시간’은 국내 상영마저 불투명해졌다. 영화계에선 “‘리틀빅픽쳐스’가 너무 무리한 생존 카드를 선택했다”란 말까지 나왔다. 기본적 상도의에 대한 배신을 비난한 것이다.
 
사실 이 분위기면 ‘넷플릭스’도 피해자다. 확실한 액수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사냥의 시간’ 총 제작비를 약간 웃도는 금액을 ‘리틀빅픽쳐스’에 지불하고 판권을 매입했단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이번 사건은 모두가 상처 입은 게임으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그럼 이 사건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제 3자였던 넷플릭스로 시선을 돌려봤다.
 
전통적으로 한국 콘텐츠 시장은 동아시아 전체 흥행 척도로 여겨져 왔다. 할리우드가 오랜 시간 국내 시장에 공들인 이유도 국내 영화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탐내왔기 때문이다. 이런 매력적인 시장을 글로벌 거대 콘텐츠 기업들이 가만둘 리 만무했다.
 
영화 산업의 전통적 소비 형태인 극장업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위협받고 있단 신호는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감지돼 왔었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국내외 OTT서비스가 이미 한국 시장 공략을 시작했고 또 한편에선 공략을 준비 중인 것도 그 배경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포함한 모바일 환경 최적화가 이뤄진 국내 상황도 글로벌OTT 기업에겐 외면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사냥의 시간’ 논란은 얼핏 보면 넷플릭스까지 손해를 입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시각을 바꿔보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다국적 자본이 투자돼 열외처럼 여겨지던 ‘옥자’와 달리 순수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넷플릭스의 주 타깃이 될 수 있단 것을 국내 영화계 전체가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애초부터 극장 배급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기업 배급사와 연결되지 못한 수 많은 영화들은 이제 “넷플릭스도 두드려 볼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넷플릭스로선 한국 콘텐츠 시장, 그 중에서도 세계적 위상을 떨치는 한국 영화 콘텐츠를 잠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됐다. 할리우드와 중국 자본도 온전히 뚫지 못한 한국 영화 시장을 집어 삼킬 수 있다면 이 정도 논란과 피해는 얼마든지 감수할 만 하지 않을까.
 
혹시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넷플릭스의 노림수는 아니었을까.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새우 싸움에 고래가 얻은 것만큼은 너무도 크게 보인다.
 
그리고 16일 오후 콘텐츠 판다와 리틀빅픽쳐스는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콘텐츠 판다가 ‘사냥의 시간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 취하를 결정했다두 회사는 일정을 조율해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공개를 결정했다. 넷플릭스가 바라본 지점은 여기까지 일 수도 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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