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봉오동 전투’ 유해진 “너무 날카롭게만 볼 필요 있을까”
“역사 다룬 작품 많이 하는 이유, 끌림과 책임감 때문”
“5년 전부터 기획된 영화, 지금 상황 예측이나 했겠나”
입력 : 2019-08-17 06:00:00 수정 : 2019-08-17 06: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물론 예전부터 그랬다. 그에겐 어떤 신뢰감이 느껴졌다. 절친 차승원과 함께 출연한 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선 인간적인 면모까지 드러나면서 더욱 호감형이 됐다. 사실 그의 초기 출연작을 보면 호감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충무로 코미디 영화의 전설이 된 주유소습격사건’(1999) 당시 일화다. 영화가 공개된 뒤 실제로 충무로 관계자들 사이에서 영화를 연출한 김상진 감독이 실제 깡패를 캐스팅했다단 루머가 퍼진 바 있다. 유해진의 험상궂은 외모는 결코 그에게 쉽게 접근하기 힘든 방패막이었다. 하지만 이젠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섬세하고 예술적이며 워낙 사람 좋은 사람이 바로 유해진이란 것을. 지방 촬영을 갈 때면 근처 마을 사람들과 단 박에 친해져서 촬영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나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의 사교성은 유해진의 인간미와 됨됨이를 나타내는 척도다. 영화 봉오동 전투를 찍을 때도 그는 함께 했던 후배들에게 가장 따르고 싶고 가장 친해지고 싶고 가장 인간적인 선배로 호감을 쌓았다.
 
배우 유해진. 사진/쇼박스
 
영화 개봉 며칠 후 만난 유해진은 고요했다. 영화에 대한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기대감일까. 조용히 혼자 마음 속으로 영화를 복귀하고 있는 듯했다. 워낙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이니만큼 기대감을 숨기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이젠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하지만 개봉 전 새 영화를 선보일 때의 긴장감은 여전한 듯했다.
 
어휴, 언제나 마찬가지에요. 이 긴장감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봤는데 그래도 많은 스태프와 수 많은 독립군을 연기한 많은 배우들의 노력이 스크린에 거의 다 고스란히 투영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죠. ‘노력이 헛되진 않았구나싶었어요. 예전에 블랙잭이란 영화 개봉 전에는 진짜 가슴이 터질 뻔 했어요.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해요.”
 
최근 우리 역사 속 굵직한 현대사를 조명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해 온 유해진이다. 영화 말모이’ ‘택시운전사’ ‘1987’ 모두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그 안에서 새로움을 끌어 낸 작품들이었다. ‘봉오동 전투역시 마찬가지였다. 교과서에서나 봤었던 단 몇 줄로 설명된 우리의 분명한 역사에 유해진은 끌릴 수 밖에 없었단다.
 
배우 유해진. 사진/쇼박스
 
글쎄요, 뭐라 단정짓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끌림이에요. 시나리오가 워낙 묵직하고 단단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의 암울했던 시절 속에서 통쾌한 승리까지 담겨 있고. 그런데 그게 분명한 역사인 거죠. 끌렸어요. 끌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역사를 다룬 작품을 제가 많이 하는 것도 그런 끌림의 배경에 있는 책임감 같아요. ‘이런 얘기는 관객들이 알아야 할 것 같다라는 그런 느낌이 앞섰죠.”
 
봉오동 전투를 촬영하면서 그는 특유의 건강한 체력을 유감 없이 뽐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그의 취미 생활은 이제 관계자들은 물론 그를 좋아하는 팬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봉오동 전투는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가파른 산길과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실제 산 속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촬영 현장에서 그는 후배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산신령으로 불렸다고.
 
하하하, 조금만 젊었으면 산총각이라고 불렸을 텐데 말이죠(웃음). 산은 뭐 제가 워낙 좋아하는 공간이고.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꾸준히 다녀요. 사실 산에서 뛰는 건 쉽지 않아요. 가파른 곳이라 힘든 게 아니라 너무 울퉁불퉁해요. 잘못하면 다치고 그러면 촬영 자체에 차질이 생기고. 진짜 조심조심 촬영을 한 거에요. 현장에 저희가 다치지 않게 관리를 해주시는 팀들도 계셨고. 제가 워낙 잘 뛰는 모습으로 나오긴 했는데. 저도 나이 먹어서 엄청 힘들었어요. 하하하. 그나마 산을 좀 다닌 게 도움은 됐죠.”
 
배우 유해진. 사진/쇼박스
 
유해진이 극중 맡은 인물은 커다란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독립군 황해철이다. 봉오동 일대의 산 속을 제집 앞마당 뛰어 다니듯 날쌘 몸놀림으로 뛰어 다니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도 이런 점은 스크린을 통해 사실감 넘치게 표현됐다. 커다란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일본군들을 처단하는 장면에선 통쾌함과 황해철이란 인물의 성격을 여지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제가 뛰어다니는 장면이 되게 박진감 넘치게 표현이 됐더라고요. 그게 바디캠을 쓴 건데, 복대에 차기도 하고 막대기에 달아서 손에 들고 뛰기도 하고 그랬어요. 처음엔 좀 둔탁한 느낌이 들게 촬영이 됐길래 원신연 감독에게 내가 들고 뛰면 어떠냐라고 직접 제안을 했죠. ‘항일대도는 그게 되게 무겁거든요. 제 대역이 정두홍 무술감독이 해주셨는데, 워낙 투박한 액션을 좋아하셔서 더 멋지게 나온 것 같아요.”
 
영화가 개봉한 현재까지도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극중 악랄한 일본군 최정예 부대 월강추격대의 대장과 그 대장의 오른팔을 연기한 일본 배우들이다. 독립군에게 포로로 잡힌 일본군 소년병 역시 일본 배우가 연기를 했다. 연출을 맡은 원신연 감독은 처음부터 이 배역들을 모두 일본 배우가 연기하기를 원했었다. 다행히 여러 일본 배우들이 출연을 자청했고, 지금의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배우 유해진. 사진/쇼박스
 
사실 저희도 놀랐어요. ‘출연하겠어?’ 싶었는데 꽤 많은 배우들이 출연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고 들었어요. 최근 양국 정세나 그런 걸 떠나서 그 분들 입장에선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같은 배우로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죠. 현장에선 크게 별 다른 얘기를 나누거나 하진 않았어요. 말도 안통하고(웃음). ‘월강추격대대장으로 출연한 배우가 저랑 동갑이더라고요. 또래로서 느끼는 공감대는 좀 있었죠. 그 친구들이 우리 영화 현장의 밥차를 정말 신기해 하기도 했고요.”
 
한일 양국의 격한 대립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배제한다는 발표가 있은 지 며칠 뒤였다. 국내에선 아직도 일본 불매 운동이 확산 중이다. ‘봉오동 전투가 이런 분위기를 타고 뜻밖의 수혜를 입어 흥행할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이 영화에 국뽕이란 프레임을 씌어 폄훼하려는 시각도 분명히 등장했다. 유해진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배우 유해진. 사진/쇼박스
 
이건 제가 순수하게 느끼는 지점이에요. 요즘 모든 면에서 우리 모두가 너무 날카로워져 있지 않나 생각이 되요. 너무 날카롭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단 좀 둥글둥글하게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일관계에 대한 문제도 제가 감히 말씀 드릴 식견도 없지만 조금 답답하죠. 그 답답함이 저희 영화로 좀 풀리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죠. 물론 이 영화가 출발한 5년 전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출발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영화 자체로 봐주시고 우리의 선조들이 희생해 얻은 위대한 역사를 감상해 주시면 저로선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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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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