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내 안의 ‘내가 죽던 날’
2020-11-17 00:00:01 2020-11-17 00:00:01
아픈 시기가 있었다. 몸이 아닌 마음이 아팠다. 마음에 난 생채기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나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채로 마주한 사건과 상황이 만들어낸 상흔이었을 뿐이었는데, 그때 난 스스로를 탓하며 자신을 감추기 급급했다.
 
겉으로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나도 당신들과 다르지 않은 씩씩한 사람이다를 내보이고 싶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란 사실을 망각했다.
 
아픈 건 마음인데 몸에서 증상이 나타났다. 잠을 못 잤다. 잠만 자면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또 쫓겼다. 잠에서 깨면 어둡고 차가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겨우 꿈 하나에 힘들어하는 내가 싫었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건 비참한 일이다. 짜증과 화를 수시로 냈다. 더는 씩씩한 척 연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번엔 모든 관계로부터 날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혼자가 됐지만 그 또한 고통이었다.
 
‘어둠의 시간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 시기를 벗어난 건 아주 의외의 장소, 의외의 인물 덕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이 있단 연락이 왔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면서부터 큰 소리로 웃고 누구보다 크게 떠들었다. 어차피 이벤트일 뿐. 내 안의 어둠을 들키지 않고 씩씩한 사람인 척 하루만 잘 버티면 그만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행동했다. 그런데 그 깃털의 무게를 바라본 녀석이 있었다. 녀석이 건넨 조용한 한 마디. “너 요즘 힘드냐?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된다. 혼자 견디려 하지 마라.”
 
창피하게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을뻔했다. 씩씩한 척 버티고 있던 마음의 강건한 격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무너져 내렸다. 애써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단 위로, 힘들면 힘들어해도 된단 그 한 마디 위로가 내 안의 어둠을 걷어 갔다
 
영화내가 죽던 날이 개봉했다. 주연 배우 김혜수를 만났다. 자신의 개인사를 담담히 전하는 그의 모습에 힘들던 당시 내 모습이 떠올랐다. 1년 정도 악몽에 시달렸단 그. 현실에서의 김혜수도 그랬지만 영화 속 인물 현수로 등장할 때도 그랬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발버둥쳤지만 그 발버둥이 사실은 죽을 만큼 살고 싶기에 보내는 무의식의 신호란 걸 현수도, 김혜수도, 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라는 건 아주 작은 온기다. 누군가 건네는 말 한 마디여도 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명이어도 된다. 그 작은 온기에 기대 심연 속에 갇힌 사람은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 십 수년 만에 만난 동창이 잡아준 손에 내가 무저갱에서 빠져 나왔듯, 김혜수가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이번 영화를 통해 악몽에서 탈출했듯, 영화 속 현수가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이들의 연대를 통해 살아갈 희망을 찾았듯, 필요한 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작은 온기 한 조각이다.
 
이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는 관객이 많다. 자신이 위로 받았기 때문일까 주변 누군가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좋다.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 차례다. 주변에서 안간힘으로 버티는 이들에게 조금 더 능동적으로 손을 내밀 시간이다. 그것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배려이며 몫이고 해야 할 권리가 아닐까. 영화 한 편이 가르쳐 주고 기억시켜 준 내 안의 내가 죽던 날이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