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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애비규환’, 이런 소통이라면 언제나 ‘옳다’
20대 여대생+10대 남자 고등학생=임신…기상천외 가족 만들기
‘소동’을 위한 ‘소통’의 방식 주목, 정답 찾아가는 각자 삶과 방식
2020-11-06 00:00:01 2020-11-06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선 전제 조건이다. 모든 게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이 영화 속 모든 인물과 상황, 정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고지식한 꼰대 시선으로 보자면 말세도 이런 말세가 없다. 반대로 열리고 열린 넓은 가슴으로 끌어 안아 준다고 해도 도대체’ ‘어떻게란 탄식이 쏟아진다. 그런데 진짜는 이거다. 이상할 정도로 귀엽다. 이상할 정도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희한할 정도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생각을 고쳐 먹게 된다. 영화 애비규환을 보면 대부분은 이런 관념에 사로 잡혀 혼란스럽고 막막하고 한숨을 내쉴게 뻔하다. 하지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본인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또 고리 타분한지 바라보게 된다. 이 영화, 발랄하다. 그리고 또 도발적이다.
 
 
 
애비규환아비규환이란 사자성어에서 따온 제목 같다. 이 영화 속 상황이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20대를 겨우 넘긴 토일’(정수정)은 자신이 과외를 담당한 고등학생 호훈’(신재휘)과 사랑에 빠진다. 한 순간의 객기와 호기로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은 토일에게 임신이란 축복(?)을 안긴다. 이건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아빠가 고등학생, 엄마가 이제 대학을 졸업도 못한 20대 초반이다. 양가 집안은 난리가 났다.
 
여기서부터 애비규환의 아비규환은 기상천외한 코드를 드러낸다. 토일의 집안 반응이다. 떨떠름이다. 엄마(장혜진) 그리고 아빠(최덕문)의 반응이 가관이다. “왜 이리 극단적이냐는 엄마의 반응, 그리고 앞뒤 맥락이 정확한 사자성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한문선생님 아빠의 가르침은 이게 뭐야란 반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불호령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 가족, 냉전이다. 적당히 시끄러운 냉전이다. 시트콤의 한 토막도 이런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진 않는다. 번잡스럽다. 본인들도 당황스럽다. 그런데 또 의외로 정리가 된다. 토일의 임신 이후 출산 그리고 결혼까지의 계획을 담은 PPT 계획서라니. 정말 이 가족, 보통은 아니다.
 
영화 '애비규환'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호훈의 가족은 더 가관이다. 아빠(남문철) 엄마(강말금)는 만세를 부른다. 고등학생 아들의 대형 사고에 박장대소다. 예비 며느리에겐 선생님호칭이다. 아들의 과외 선생님이니 선생님은 맞다. 이 가족, ‘토일의 가족과는 비교 불가로 더 대책이 없다. 오히려 아들의 초대형 사고를 즐기는 모습 같다. 이젠 오히려 토일이 답답하다.
 
토일은 답을 찾고 싶다. 아니 우선 답은 있다. 호훈과 호기롭게 결혼하고 꿈꾸는 가정을 꾸리면 된다. 그에 앞서 친아빠를 찾아 나선다. 그렇다. 엄마와 함께 사는 한문선생님 아빠는 새 아빠다. ‘토일의 당차고, 또 어떻게 보면 대책 없는 당돌함의 배경이 그랬던 것 같다. 엄마의 이혼과 재혼이 토일의 성격을 만들었단 게 아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 정립에서 토일의 가족은 오픈된 무엇처럼 느껴진다. 새 아빠도 고정관념의 새 아빠의 모습이 아니다. 누구보다 토일을 사랑하고 친 딸처럼 여긴다. 그럼에도 토일은 친 아빠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친 아빠와 만난 토일은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기억 속에서 잊혀진 줄 알았던 친 아빠의 현재에서 실망한 게 아니다. 스스로가 생각한 가족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증명하고 또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답이 친 아빠에게 있던 것도 아니다.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럼 도대체 토일은 뭘 알고 싶었고, 뭘 기대했던 것일까.
 
영화 '애비규환'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실패가 두려웠던 것이다. 엄마의 실패를 눈으로 보고 자란 토일이다. 하지만 토일은 엄마의 실패를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린 상태였다. 물론 그건 지워진 게 아니라 몸 안에 남아 있었다. 토일도 확신이 필요했다. 본인이 저지른 사고. 본인의 확신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 번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 아빠가 필요했다. 실패의 원인을 갖고 있는 친 아빠다. 친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새 아빠도. 나아가 호훈의 아빠와 엄마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빌어주고 있었다. 토일의 엄마가 이혼을 결심했던 것도, 토일의 엄마와 이혼을 결심하고 떠나간 친 아빠도. 가슴으로 품은 토일을 친딸 이상으로 사랑했던 새 아빠도. 아들의 사고를 웃음으로 대했던 호훈의 엄마와 아빠도. 모두가 사실은 실패를 마주하기 두려웠다. 그래서 현실을 바라보고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놓인 삶이고 인생이었다. 그들도 아빠가 처음이고, ‘엄마가 처음이다. 토일과 호훈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는 있지만 완벽한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영화 '애비규환'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애비규환토일의 자아찾기 과정이다. 이 과정이 주된 정서다. 곁가지의 정서는 아빠 찾기다. ‘토일이 친 아빠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갑자기 연락이 끊긴 토일의 예비 남편 호훈을 찾아나서는 과정. 이 두 가지 정서가 결합되면서 가족이란 전통적인 개념에 대해 보다 더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혼이란 화두가 제시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화두일 뿐이다. 실패까지 이르는 데 필요한 시행착오가 분명히 살아가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란 진짜 화두, 그리고 그 화두가 갖고 있는 정말 진짜 화두“100%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주목된다.
 
영화 '애비규환' 스틸. 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 전체가 가볍고 발랄하고 또 괴상하며 희한하고 이상하다. 그런데 이게 결코 가볍지 않고 발랄하게만 볼 수도 없으며 또 고상할 수도 있고, 정숙하며 정상적으로 보이는 마법을 만들어 낸다. 이 영화 자체가 우리의 고정관념이 갖고 있는 편협함을 지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삶은 정답이 없는 데 말이다. 걸어가다 보면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럼 일어나서 다시 걸어가면 그만인데 말이다. 영화 마지막 엔딩의 파격이 그래서 멋지고 또 멋지다.
 
이런 소동극이라면 충분하다. 아니 이런 소통극이라면 언제나 옳다. ‘애비규환의 소통 방식이 옳다. 지금 필요한 방식이다. 개봉은 오는 12.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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