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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형평성을 잃어 버린 '식약처'
2020-11-04 10:23:00 2020-11-04 20:56:50
최용민 산업2부 기자
정부는 법 규제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사회 전반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때 정부는 규제로 이를 통제하고, 사전에 문제 확산을 막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다. 형평성이 있어야 정부 규제가 힘을 얻을 수 있고, 규제 기관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민이 정부 규제를 옹호하고 납득하는 이유다. 만약, 정부 기관 규제가 형평성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는 담보될 수 없게 된다.
 
요즘 제약업계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메디톡스 사이에서 발생한 ‘보톡스’ 제품 수출과 관련한 문제가 이슈다. 식약처는 지난달 19일 메디톡스가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고, 보톡스 제품을 도매상에 판매했다는 이유로 제품에 대한 회수·폐기 명령 조치를 내렸다. 도매상을 거쳐 판매한 것은 내수용이기 때문에 약사법을 근거로 국가출하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수출용은 국가출하승인이 불필요하다. 식약처는 메디톡스 제품에 대한 품목 허가 취소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에 메디톡스는 도매상을 거쳐 해외로 수출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국가출하승인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가출하승인 면제 대상인데 약사법을 적용한 것은 잘못됐다며 법원에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메디톡스는 특히 자사 뿐 아니라 다른 제약 업체도 도매상을 통해 보톡스 제품을 해외로 수출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관행이라는 것이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도 한 언론을 통해 자사 제품을 국가출하승인 없이 도매상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도매상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이번 기회에 전수 조사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품을 회수·폐기하고, 품목 허가까지 취소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면 당연히 전수조사를 해야 맞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그러나 식약처는 이에 대해 메디톡스와 같이 업계 신고가 있어야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업체들이 관행으로 무역상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신고가 없으면 조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이 지점에서 의구심을 품는다. 식약처 논리라면 무역상을 통한 제품 판매보다 업계 제보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초점이 흐려지면 국민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무역상을 통한 해외 판매가 제품을 회수·폐기하고 품목 허가 취소까지 필요한 문제라면 당연히 업계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식약처가 특정 업체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논란의 중심에 정부 기관이 있다는 것은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업계 관행이라고 법 규정을 위반한 업체에 면죄부를 주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위반했으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다. 정부 기관은 법 집행에 있어 형평성을 유지해야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식약처가 무역상을 통한 해외 판매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기준은 제약업체 전체가 되어야 한다. 제보가 있어야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식약처의 입장은 국민들이 의구심을 품기에 충분하다. 식약처는 이제라도 전수조사를 통해 법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최용민 건설유통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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