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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부 임기중 문신을 지우자
2020-07-30 06:00:00 2020-07-30 06:00:00
이강윤 언론인
지난 1일 국회에 '생명안전포럼(대표 우원식 의원)'이라는 포럼이 공식 발족했다. 새 국회가 문 열면 으레 포럼이 우후죽순으로 생기지만, 초심대로 활동하는 포럼은 매우 드물다. 이번 생명안전포럼은 외부 참여인사의 면면이나 내건 구체적 목표로 보건대 자못 기대를 갖게 한다. '생명안전네트워크(대표 송경룡 신부, 김훈 작가)'가 국회에 '압력'을 넣어 발족한 데서 알 수 있듯, 시민사회의 주장과 입법통로를 국회 공식단체 형식으로 확보했다는 점이 다른 포럼과는 좀 다르다. 안전이 최우선인 시대정신을 반영한 국회 차원의 첫 움직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몸서리 처지지만 6년 전, 2014년 4월16일로 돌아간다. 상처 헤집자는 거 아니다. 돌아볼수록 원통방통한 시간의 연속이어서다. 다들 '어제'까지 해오던 대로 했다. 해경도, 행안부도, 해수부도, 언론도, 해운사도, 그리고 청와대도. 4월16일 오전 8시52분, 단원고 2학년 최모군이 첫 신고 전화를 했다. 해경은 공포가 극에 달해있는 최 군에게 '경도와 위도'만 계속 물어댔다. 신고전화는 거기서 끝났다. 왜 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출동한 해경도 마찬가지. 배 몰고 나갔다가 "어. 저 큰 배가 누워 있네" 창문 깨보려 한두 번 망치질하다 안되니까 "안돼, 업체 불러야돼". 그래서 '언딘'을 불렀다.
 
오죽하면 침몰 후 6시간 동안 청와대에 "300명 이상이 배에 갇혀있다"는 보고 조차 안됐겠는가. 20년 동안 대형사고가 한 번도 없었으니 다들 허둥댈 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예 모른 것이다. 참고해야 할 '어제'가 20년 동안은 없었으니까. 사람 머릿수도 제대로 세지 못하는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어떻게 정확한 대책을 보고하겠는가. 부처별로 대책본부 만들고 전화통 붙잡고 현장에 호통만 쳐댔다. 늘 그래 왔으니까.
 
해운사는 과적인 줄 알면서도 평형수까지 빼가며 짐을 몽땅 실었다. 어제까지 그렇게 돈벌어 왔으니까. 과적이나 선박불법증축도 다 눈 감아줬으니까. 때 되면 뇌물 바치고, 아예 법인카드까지 쥐어주며 '관리'해왔으니까. 민간이나 업계의 생사여탈권을 쥔 관료들의 특권의식과 자본이 만나는 순간, '사람'은 없어진다. 언론도 마찬가지. 보도자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꼈다. 어제까지 그래왔으니까.
 
관료들은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 "어제까지 해 온 대로 했을 뿐인데 왜들 저러지" 관료들이 두고 쓰는 말이 있다. "돈과 사람 없어서 일 못한다"와, "어제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는 것이다. 관료들은 왜 어제에 집착할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그렇게 해 오던 방식'이 뼛 속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악성 유전자이자, 문신이다. 어제에 뭐 하나만 살짝 얹은 흉내만 내도 '우수 혁신사례'로 뽑혀 상까지 받는다. 그러므로 관료제 하에서 혁신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그 기준이 되는 어제는 어디서 왔는가. 두 말할 필요 없이 '어제의 어제'로부터 왔다. 어제를 계속 따라 거슬러가면 일제강점기가 있다. 일제가 고착화시킨 관존민비 행정체계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면서 전범으로 자리잡았다. 어제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 오늘 그렇게 하고, 오늘 그렇게 하니 내일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 주류와 지배계층·지배이데올로기는 관-기업 유착 풍토에서 누이좋고 매부 좋은 부패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 괴물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연간 최소 1000명이 안전사고로 죽어나가고 있다. 그들은 어제와의 결별을 혁명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관료주의와 천민자본주의라는 적폐를 고치치 않는 한, 어떤 수습책도 무의미하다.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 개조 작업을 관료들 손에 맡겨서는 난망이다. 대통령 지시 받자와 보고서 백 날 만들어봐야 백년하청이다. 어제와 총체적으로 결별하지 않으면, 개조 지시자나 그 지시 받는 자나, 결국 또 다시 어제를 컨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발독재시대에 '사람 경시'는 흠이 아니었다. 그게 개발연대가 남긴 최악의 유산이다. 해마다 '그 날'이 돼 추모만 하다가는 도로아미타불이다. 어제와 완전히 단절하라. 촛불정부의 나머지 임기는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뜯어고치는 게 촛불정부의 마지막 책무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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