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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ESS, 자신 없으면 관두라
2020-02-12 06:00:00 2020-02-12 06:00:00
지난해 6월 정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안전대책을 발표했었다. 2017년 8월부터 20여건의 화재사고가 일어나자 나름대로 조사한 끝에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화재 요인을 주로 외부에서 찾았다. ESS 설비에 대한 보호·운영·관리 체계가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때 필자의 제1감은 조사가 본질을 파고들지 못하고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잇단 사고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했다고 봤다. 하나 마나 한 조사였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기술자도 아니요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단지 오랫동안 기자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경험칙은 남아 있다. 부실한 조사결과와 처방을 내놓았다가 문제를 더 악화시킨 사례를 수없이 보아온 것이다. ESS 화재사건 1차 조사결과도 그런 부류라는 것이 당시 필자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이를 짚어보는 칼럼을 거의 다 써두었다. 당시의 조사결과가 과연 진실한지 묻는 칼럼이었다. 일시적인 손실확대를 걱정한 나머지 진실을 덮으려고 한 것 아닌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더 시급한 다른 사안을 다루느라 보류했다. 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후일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1차 조사결과 발표 이후 5건이나 더 일어났다. 그러자 정부는 정말로 2차 조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가 지난 6일 나온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에서는 '배터리에 이상이 있다'는 추정결과가 제시됐다. 그리고 에너지저장장치의 충전율을 80~90%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안전대책도 정부가 내놓았다.
 
이번 조사는 1차 조사 결과와 사뭇 다르다. 마치 술라가 잘못이 아니라고 한 것을 마리우스가 잘못이라고 하는 듯하다.
 
이번 2차조사 결과는 비교적 핵심에 접근한 것 같지만, 문제해결의 길잡이가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욱이 에너지저장장치를 생산하는 두 대기업 LG화학과 삼성SDI가 조사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금융상품을 불완전판매하고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 은행들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조사결과는 존중한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근본적으로 이들 대기업이 반발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제품의 하자 여부는 대기업 스스로 우선 잘 알 것이다. 그 어떤 외부기관이나 정부에 조사를 맡길 필요도 애초에 없다. 대기업이라면 그런 자존심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두 대기업에는 그런 자존심마저 없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완벽한 제품이라면 시장이 그것을 입증해 준다. 하자가 발견되고 사고가 생기면 스스로 회수해서 완벽한 제품으로 개선한 다음에 다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굴욕만 당한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일부 스마트폰을 서둘러 출시하려다가 품질에 대한 불만제기가 이어진 적이 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출시를 연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완벽한 제품이라고 입증할 자신이 없으면 삼성전자처럼 해야 한다. 공연히 자꾸 만들어서 사고만 일으킨다면 회사에 손해만 끼칠 따름이다. 회사의 이미지도 함께 나빠진다. 그러느니 깨끗이 포기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나 힘을 쏟는 것이 더 현명하다.
 
어차피 지금 같은 상태로는 두 대기업이 에너지저장장치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이미 수천억원의 손실요인이 발생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어려울 것이다. 완벽한 제품이라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손님을 끌기 어렵다. 세계시장이 커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몫일 따름이다.
 
LG그룹의 경우 건조기 문제도 요즘 시끄럽다. 그래서 그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해결되는지 지켜보고 있다. 언젠가 짚어볼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삼성SDI의 제품의 경우 필자에게도 언짢은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그르칠 염려가 있으니 자세한 언급은 삼가겠다. 다만 삼성SDI가 과연 높은 기술수준을 요하는 제품을 제대로 만들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은 하고 싶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이끄는 동안 '품질경영'을 부르짖어왔다. 불량제품을 운동장에 모아 태우는 행사까지 치렀다. 그런 행사를 통해서 삼성의 품질관리 의식과 실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여전히 품질에 대한 잡음이 자꾸 생겨나는지 모르겠다. 에너지저장장치를 생산하는 두 대기업에게도 이제 그런 자세와 각오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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