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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시간이탈자' 전신환의 거친 역사
2016-05-31 09:21:29 2016-05-31 09:21:29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전신환이 영화 '시간이탈자'에서 등장하는 분량은 20분여 정도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그가 보여준 광기 어린 눈빛은 좀처럼 잊기 힘들다. 조정석과의 격투 신에서 보여준 그의 살기 가득한 눈은 '시간이탈자'가 발견한 보석이다.

 

그가 그토록 인상 깊은 눈을 가지게 된 것은 거칠고 사나웠던 과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구에 취한 중학생 시절부터 꿈이 없던 학창시절, 우연히 연기를 알고 연극에 미친 대학시절,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실망을 못 느끼던 무명생활까지 배우 전신환에게는 34년간의 거친 역사가 있었다.

 

광기 어린 눈을 가진 전신환을 최근 만났다. 죽기 전까지 배우가 되겠다고 말하는 그는 "영화 '링컨'에 나온 다니엘 데이 루이스처럼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꿈을 전했다.


배우 전신환은 유복한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사진/제이아이스토리

"유복했던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

 

전신환은 1983917일 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서 태어났다. 은평구 내에서도 유명한 산부인과였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산부인과의 구조가 기억이 난다고 한다. 1984년 미국 이민을 가기도 한다. 친척들이 다 같이 이민을 가게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미국을 가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적응으로 금방 돌아오게 된다.

 

전신환의 아버지는 합천 출신으로 빈 손으로 상경해 온갖 고생을 했다. 그러던 중 화장품 사업을 오래하며 자수성가 했다고 한다. 부촌이라 불리는 연희동과 은평구 쪽에 두 매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여서, 어릴 적 경제적인 여유는 꽤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워낙 가부장적이었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주로 도맡아 하셨고, 경제권도 아버지에게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워낙 가족만 보고 사셔서 크게 불합리하다는 건 느끼지 못했다. 다혈질이고 성격이 강하셨는데, 나는 아버지를 주로 닮았다. 그나마 연기를 하면서 많이 바뀐 편이다."

 

성격이 비슷하다 보니 아버지와 많이 다퉜다고 한다. 그에게는 형과 여동생이 있다. 많은 둘째들이 그런 것처럼 사랑의 갈증을 많이 느꼈다. 성격도 다혈질인데다 가족에 불만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아버지와 다툼이 많았다고 한다.

 

"교복이고 교과서고 형의 것을 물려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강했다. 나도 성질이 있다 보니 많이 대들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날 많이 챙겨줬던 게 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형보다는 공부를 잘했다. 수학을 특히 잘해서, 경시대회에서 상도 타고 그랬다. 그래서 사랑받는 것도 있었는데, 시야가 좁았었는지 어릴 때부터 많이 대들었다. 지금은 참 미안한 점이다."


전신환(오른쪽)과 그의 형 그리고 여동생.

"미운 열다섯 살, 당구를 배우다"

 

요즘 '2'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몸의 변화와 함께 성격이 예민해지면서 생기는 일종의 성장통이다. 전신환도 성장통을 심하게 앓았다. 그 때 성장통과 함께 알게 된 것이 당구다.

 

"당구를 배우면서 성적이 엄청 떨어졌다. 칠판만 보면 당구대로 보이고, 계속 공 가는 길만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은평구 내 당구장에 다 빚이 있었다. 휴대전화를 맡기면서 당구를 쳤다. 그 당시에는 관심이 있었던 것도 없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당구에 미쳐있었다. 4년 동안 당구만 쳤다. 그 때 시절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수학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겠다."

 

당구는 지금의 전신환에게도 인생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잇다. 일반 당구대가 아닌 선수용 당구대로 3250을 친다고 한다. 선수용 당구대는 일반 당구대보다 더 크다. 4구랑 비교할 수도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당구는 집중하는 스포츠다. 축구나 농구는 단체스포츠지만, 당구는 1:1이다. 상대와 싸우기도 하지만,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나는 일도 일이지만 취미생활을 더 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당구는 인생의 동반자다. 당구를 최선을 다해 치면, 지더라도 재밌다. 그게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당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생각한다. 또 공기나 상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면서 완벽해야 한다. 그런 점이 내가 일할 때 많이 드러난다. 완벽해야 된다는 욕심이 있다. 자연스러운 것까지 완벽해보이려고 노력한다."


배우 박원숙이 오픈한 연기학원은 전신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다. 사진/뉴시스

"박원숙이 만든 연기학원을 등 떠밀려 가다"

 

수학경시대회에서 상도 받았던 그가 당구를 알면서 학업과는 점점 멀어졌다. 고등학교 2~3년 때는 뒤에서 1등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공부를 잘하는 학교도 아니었는데 뒤에서 1등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하반기, 인근에 더 이상 적수가 없어 당구가 시들해질 때 쯤 배우 박원숙이 오픈한 연기학원 전단지를 신문 사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당시 북가좌동에서 살던 그는 부모의 등쌀에 떠밀려 연기학원을 등록하게 된다.

 

"키도 크고 얼굴은 그나마 말끔하게 생겼으니까, '연기라도 해봐라'하면서 날 보낸 거다. 당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책 읽게 시키는 것도 싫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싫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조차 싫었었다. 많이 삐뚤어져 있던 시기였다."

 

그 때 만난 선생님이 박원숙의 아들 서범구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고인이 됐다. 그 당시 잠깐의 상담이 당구만 치던 전신환을 연기자로 이끌게 된다.

 

"물론 학원생을 채우기 위해 한 립서비스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서범구 선생님은 진심 어리게 나를 칭찬했다. 외모나 목소리를 칭찬했다. 우리 부모님께 '맡겨 주시면 잘 키워보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아직도 생생하다. 당구를 배우고 나서 어른한테 들어본 첫 칭찬이었다. 그렇게 연기를 시작했다."

 

학교를 마무리 한 뒤 버스를 타고 신촌역으로 나와 2호선 지하철을 빙빙 돌아 강남역의 학원을 다녔다. 이동 시간만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같이 오고 다녔다. 그렇게 연기를 배우는데,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았던 그가 그 학원의 에이스가 돼 있었다.

 

"난 그래도 멀리 다니니까 그냥 다닐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대사도 꼭 외워가고 그랬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사도 안 외워왔다. 결석도 잦았다. 나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는데, 에이스가 돼 있었던 거다. 재미를 느끼기는 했다. 어떤 이가 처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돼서 연기를 하고 집중을 하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조금씩 더 열심히 준비를 하다가 이범수 선생님의 학교 동기인 박현심 선생님의 애제자가 됐다. 3 때부터 중앙대학교 지원을 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입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연극영화과로 가장 높다는 중앙대학교 얘기가 나온 거다. 그 때부터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반 뒤에서 1등을 하기도 한 그는 중앙대학교 입학에 성공한다. 사진/제이아이스토리

한 번의 실패, 그리고 재수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를 했다. 성적은 바닥이었다. 대학은 꿈도 꾸기 힘든 수준이었다. 잘했던 수학도 실력이 형편 없어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전신환은 대학이라는 꿈을 꾸게 된다. "뭐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뒤에서 1등을 하던 성적으로 입시에 도전한다. "대학을 가고 싶다"고 집에다 말하니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물심양면 지원이 시작됐다. 과외선생을 찾아주고, 돈도 넉넉히 주기 시작했다. 주변의 지원을 받자, 그도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재밌는 건 수학이 0점에서 시작했다고 하면 한 달 만에 1등급으로 올랐다. '수학의 정석'을 몇 번 되풀이 하는 데 얼마 안 걸렸다. 수학적 머리가 왜 뛰어난지는 나도 의문이다. 3 때 전교 1등 하는 애가 수학만큼은 나한테 물어봤다. 국어랑 과학도 꽤 잘했다. 사회는 적당했는데, 영어가 꽝이었다. 도저히 안 늘더라."

 

최선의 노력을 했고, 예상보다 성적도 잘 나왔다. 수학이 1등급에 언어가 3등급이었다. 과학도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연극영화과는 주로 언어·사회·외국어 영역만 봤다. 전신환은 중앙대학교에 당당히 떨어진다.

 

"좌절감이 엄청 컸다. 최선을 다한 것도 모자라 운도 따라줬는데, 실패했다. 다시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난 포기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척이 운영하는 넥타이공장에 취직하려고 했다. 근데 집에서 재수를 권했다. 한 번만 더 해보라고 했다. 또 연기하는 친구 중에 재수하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재수를 했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중간에 수시 시험도 있었다. 경험삼아 본 수시 입시에서 그는 많은 교수들의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학원 자체가 중앙대학교 출신이 많아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기대해도 좋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자신도 모르게 기대를 하기 시작했지만, 수시에서 또 미끄러졌다.

 

"열 받아서 중대는 절대 안 쓰려고 했다. 기대하는 시간은 긴데,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더라. 그리고 다시 수능을 봤는데, 성적이 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중대는 안 넣으려고 했는데, 주위 선생님들이 다시 지원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다시 넣었다. 난 그 때 경희대를 노리고 있었다. 경희대는 수학이 포함됐다. 수학은 성적이 좋았으니까. 중대 정시 실기에서 수시 때 본 연기를 다시 준비했다. 그들이 관심 가졌던 연기였으니까, 다시 한 번 해본 거다. 그런데 집중도 안 되고 잘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졌다는 생각에 다른 학교 연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국대 연기 시험을 보기 전날 중대 발표가 있었다. 가족이 뒤에 있고, 컴퓨터로 확인하는데, 버퍼링이 좀 길었다.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합격'이라고 떴다. 가족은 난리가 났다. 기뻤다. 아버지가 차를 사준다고 하더라. 정말 잊을 수 없는 신나는 시간이었다"


전신환은 군 입대 전 중앙대학교 연극 '노트르담의 꼽추'와 '사랑의 종을 울려라'의 주인공으로 나서게 된다.

중앙대학교의 에이스 조명팀, 그리고 주인공

 

요즘도 대학 내 군기가 문제가 된다. 시대에 뒤처진 행동들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연극영화과는 어디나 군기가 세기로 유명하다. 체육학과에 못지않다. 그가 학교를 다니던 2003년의 캠퍼스도 비슷했다. 하지만 전신환은 이미 연극에 대해 깊이 빠져있던 터라 대학생활에 쉽고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3 때 안톤 체홉의 연극을 봤다. 그 전까지는 나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을 못 봤다. 내가 학원 내에서 제일 연기를 잘했으니까. 무대 위에서 정말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는데, 숨을 쉴 수 없었다. 그 순간 연극에 나는 빠져버렸다. 이미 그런 정신무장이 돼 있었을 때 연극을 하는 선배들과 친해졌다. 군기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여겼었다. 왜냐면 조금이라도 어디 한군데만 무너져도 연극 전체가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말 무섭고 힘들었는데, 연극에 대한 마음이 많이 생기면서부터는 모든 게 즐거웠다. 열심히 하다보니까 선배들에게 예쁨도 많이 받았다. 에이스들만 한다는 조명 팀에 당당히 들어갔다. 2학년 때까지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연애다운 연애 한 번 안 하고, 수업보다도 연극을 직접 만드는 데 더 취해있었다. 그야말로 연극에 미쳐서 살았던 시절이다. 일주일동안 밤을 새가며 조명 작업을 하는데, 잠을 못자는 고생보다 연극을 마쳤을 때의 쾌감이 더 컸다. 그러면서 2학년 때 선배들의 졸업공연을 하게 된다. 유명한 '노트르담의 꼽추'의 신부 역할이었다. 집시 여자에게 빠져서 확고한 신앙심을 버리고 여자를 탐하고, 꼽추를 괴롭히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오디션을 보려고 하는데, 선배들 눈치가 심했다. 선배들 몫을 뺏어가는 거니까 분위기가 살벌하다. 그래도 욕심이 생겼다. 우리학교 선배들 중에 2학년 때 공연 주인공을 하고 졸업 전에 대극장 무대에서 주인공을 해야 잘 된다는 공식이 있다. 햄릿 계보도 있다. 서인석, 이범수, 손현주, 홍광호, 강하늘 등이 그렇다. 강하늘은 후배다. 하정우는 오델로 계보다. 나도 그 욕심을 채우고 싶었다."

 

신부 옷을 챙기고 음악도 따로 챙겼다. 의복을 굳이 갖추지 않고 오디션을 보는 관행이 있었지만, 전신환은 진심으로 신부 역할을 맡고 싶은 마음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야말로 경쟁의 방점인 오디션에서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두 달 넘게 연습을 하는데 제일 높은 선배들이 단역을 하고 있고, 내가 주인공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연기 못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성장의 발판은 분명했다."


전신환은 아버지 때문에 연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아버지"

 

그렇게 선배들에게 눈치를 보고 욕을 먹는 가운데에서도 전신환은 기뻤다. 이유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7회 정도 되는 공연 내내 객석을 채웠다. 혼자 오지 않고 친척과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아들의 연기를 바라봤다. 기쁜 마음에 연신 웃으며 주위에 "저 놈이 내 아들이야"라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 때 전신환은 "아버지가 자식만 바라보시고 사셨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꼽추' 공연이 끝나고 사실 쉬고 싶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려서 하나 더 공연을 맡았다. 제목이 '사랑의 종을 울려라',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망나니가 아버지와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아버지는 지병이 있으셨다.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또 보고 싶어서 힘든 중에도 공연을 하나 더 하게 됐다."

 

하지만 무슨 우연인지 그의 아버지는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연습기간에 혼수상태에 빠진다. 전신환은 연습이 끝난 뒤 대학로 인근의 병원에서 입원하는 아버지를 약 3개월 동안 매일 찾아갔다. 3개월 동안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한다. 아버지 때문에 더 심취하게 된 연기였던 만큼 포기할 수 없어서 공연 준비 또한 계속했다. '깨어나시겠지'라는 희망이 마음 속에 있었다. 그리고 첫 공연 날이 다가왔다. 듣지도 못하는 아버지께 "공연 때문에 몇 일간 못 올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첫 공연 당일 친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믿겨지지가 않더라. 당장 달려가지도 못하고 한 동안 멍하니 있었다. 연출 형한테는 말도 못하고 다른 배우 형한테 다녀오겠다고 하고 병원에 갔다. 아버지를 보여주시더라. 다리에 힘이 풀리고 펑펑 울고, 장례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공연 하고 오라'고 하더라. 형도 그렇게 말해주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연을 하러 갔다. 그 때는 판단도 잘 안돼서 그냥 공연을 했다. 주위에서 할 수 있겠냐고 하는데, 의외로 더 잘 된 거 같다. 아버지와 화해하는 장면이 오히려 더 와 닿더라. 그 일을 겪은 후로 내가 배우를 해야 되는 이유에 사명감이 더 생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포기하면 아버지가 더 힘들어할 것 같다. 아버지 때문이라도 난 연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

 

전신환은 영화 '하녀'에서 이정재의 비서 역으로 출연한다. '하녀'는 그에게 영화에 대한 재미를 알려준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싸이더스FNH

군대 전역 후 영화 배우의 꿈을 꾸다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내게 된 그는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도 졸업하게 된다. 군 입대 전 우연찮은 기회로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 때 그 사람들'에 출연하게 된다. 김재규로 예상되는 백윤식의 비서 역할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신이 사라지면서 밥만 먹고 오게 된다.

 

"임상수 감독이 누군지도 몰랐다. 머리가 노란 색이었는데, 이상한 아저씨 같았다. 그리고 2005년에 영화과 선배 백승현 감독의 졸업작품 '인비져블'을 찍게 된다. 영화도 못 보고 군대에 갔다. 군 생활을 하는 중에도 연기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제대해서도 연극 공부에 심취해 있었다. 이미 나는 연기에 있어서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이 완전히 무너진 현장이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 촬영장이었. 이정재의 비서로 나온 그는 걸어가는 것도 떨렸다고 한다. 반 박자씩 늦고, 카메라에서 조금만 나오라는 말에 확 나오고 그랬다고 한다. 5회차가 50회차로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하녀'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짓게 하는 장면이 있다. 걸어가는 신에서 갑자기 넘어졌다가 확 일어나는 이정재의 비서가 그였다. 당시에는 나름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면이었다.

 

"전국적으로 눈이 엄청 많이 온 날이었다. 이정재 선배 발에는 미끄럼 방지용으로 뭔가를 붙여줬는데, 나한테는 안 줬다. 따라가다가 확 넘어졌다. 연기할 때 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휙 일어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나서 걸었는데, 'OK'라고 하더라. 욕먹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철수하더라. 그리고 그게 영상에 나왔다. 유일하게 웃긴 장면이었고, 나는 신스틸러가 됐다."

 

'하녀' 전후로 전신환은 연극 연기보다 영화 연기의 재미를 더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온갖 독립영화를 찾아다녔다. 때로는 상업영화의 단역도 맡게 됐다. '미스터 고'의 응원단장, '관상'의 신숙주, 비록 한두 컷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열심히 연기했다. 독립영화도 무수히 찍었다. '별다방 미쓰리', '야간비행', '남쪽으로 간다' 등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 그리고 칸 영화제에 초청돼 프랑스를 찾게 된다.


'야간비행'에 출연한 전신환(왼쪽)과 손현우(오른쪽)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중앙)과 사진을 찍었다.

"영화도 모르는 영화배우, 부끄러움을 느끼다"

 

영화 '야간 비행'2010년 칸 영화제에 초청된다. 야간비행은 퀴어영화다. 전신환은 게이의 형 역할을 맡게 됐다. 예상도 못했는데, 칸에 가게 된 셈이다. 본래 초청은 감독과 게이 역을 맡은 배우가 받았는데, 그 배우의 집안이 보수적이라서 집에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전신환이 대신 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칸이 3대 영화제인 줄도 몰랐다.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사비를 들여 프랑스에 갔다. 당시 초청된 작품이 '북촌방향'이랑 '황해'였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아주 웃긴 영화는 아닌데, 외국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아주 돌려서 하는 주인공의 행동에 엄청 웃겨하더라. '황해'는 환호성이 엄청났다. 뼈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주 신나게 반응을 하더라. 그 때 '한국영화가 이런 반응을 얻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에게도 멀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돈이 많지 않았던 전신환은 칸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리스에 숙소를 잡게 된다. 아침마다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기차를 놓쳐 택시를 탔는데 17만원 가량의 비용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중에 중앙대학교 선배인 하정우에게 연락을 하고 술 자리도 가졌다고 한다.

 

"하정우 선배와는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고 가끔 연락하는 사이였다. 연락을 드렸는데, 정말 살갑게 잘 챙겨주셨다. '황해' 시사회 반응을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다. 부러우면서도 희망도 느꼈다. 근데 정우 형도 '용서받지 못한 자' 때 나처럼 고생을 엄청 했다는 거다. 머리 세팅을 하고 나왔는데, 땀 흘려서 다 망가지고 그랬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해주는데 힘이 많이 되더라."

 

전신환은 영화제에 온 만큼 영화를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네 편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영화관을 찾았는데, 아는 감독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미 유명한 감독들이 즐비해 있는데, 난 한 명도 몰랐다. 동생들한테 추천 받아서 보고 그랬다. 돌아오는데 너무 부끄럽더라. 영화배우를 하겠다는 놈이 유명한 감독도 모르고 말이다. 어떤 감독이 심사위원인지도 몰랐다. 칸 올 때 사람들한테 '저 칸 다녀옵니다' 이러면서 허세를 부렸는데, 난 거기에 만족하고 있었던 거다. 서울에 오자마자 여러 루트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만 주구장창 봤다. 그 이후로 한 작품이 이송희일 감독의 '남쪽으로 간다'. 그 때 영화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감독님이 '이 새끼 영화에 미친 놈'이라고 했다. 좋은 평가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지금도 많은 영화를 보고 있다. 그 정도는 해야 어디 가서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거짓말'에 출연한 김꽃비와 전신환. 사진/리틀빅픽쳐스

전신환을 알린 '거짓말'

 

영화인으로서 한 발 한 발 단계를 밟던 그는 SBS 드라마 '수백향'에 출연하게 된다. 6개월 간 긴 여정을 밟는 와중에 독립영화 '소셜포비아''거짓말'에 동시 캐스팅된다. 두 작품 모두 매력을 느낀 전신환은 스케줄 상 여건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에 모두 출연을 결심한다. 그리고 '소셜포비아''거짓말' 모두 국내 독립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특히 주인공이었던 '거짓말'은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 대명 컬쳐 상을 받게 된다. '거짓말'이 첫 번째로 상을 받았고, 이듬해 두 번째로 상을 받은 작품이 최우식이 출연한 '초인'이다.

 

"그 영화는 허언증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 집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었다. 굉장히 현실적이다. 여자가 집안 환경을 등지고 도피 결혼을 하면서, 자기 과거를 감추고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실 내 동생에게 아픔이 있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동생이 너무 많은 걸 숨기고, 치부로 여겼었다. 그 때 나는 동생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우리가 뭐가 부족하냐'고 따지기도 했다. 알고보면 동생은 집에 대해 질려했던 것 같다. 그 때는 이해를 못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이해를 했다. 그런 나만의 고충이 작품에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전신환은 '시간이탈자'에서 광기 어린 싸이코패스를 표현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6개월간의 불안한 휴식, 그리고 '시간이탈자'

 

영화 작품이 이름값을 알리고 전신환도 같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몸집이 커지면서 좀 더 큰 영화의 캐릭터를 찾아다녔다. 오디션도 정말 많이 봤지만, 생각만큼 좋은 결과는 없었다. 어중이떠중이로 약 6개월 간 쉬었다. 몇 작품을 캐스팅 직전까지 갔다가 놓치면서 그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수백향'을 하면서 어떤 작품이든 하겠거니 했는데, 계속 쉬게 됐다. 그저 멍하니 편안하면서도 불안하게 지내고 있었다. 시간 되면 낮술도 먹고, 그렇게 지냈다. 그런 중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오디션이 이틀 뒤에 있다고 했다. 시나리오도 없이 대사만 있었다. 무슨 역할인지도 정확히 몰랐다. 역할이 세구나 하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게 '시간이탈자'의 생물 선생이다."

 

조감독을 만나 형식적인 오디션을 보고 난 뒤 집에 가는 길에 연락이 왔다고 한다. 곽재용 감독이 중국에 있었는데, 영상을 보고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전신환은 이 강한 역할은 다른 사람이 내정돼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캐스팅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곽 감독을 만났다.

 

"그 때 그 연락을 받고 정말 놀랐다. ''클래식' 감독님이 나를?'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열심히 준비해서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너의 맛이 간 눈빛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이 역할이랑 어울린다고 하시더라. 실감이 하나도 안났다."

 

전신환이 맡은 생물 선생은 일종의 싸이코패스다. 과거가 베일에 싸여있으며, 사람을 죽이는 것에 감정의 흔들림이 조금도 없는 인물이다. 40여명이 되는 제자를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설정만큼은 굉장히 강한 인물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인물 표현을 원하는 그에게 부딪힘은 없었을지 궁금했다.

 

"극적인 장면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다. 가장 영감을 준 작품이 '헨리:연쇄살인자의 초상'이라는 영화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연쇄살인마의 가정사가 좀 독특하다. 어머니가 몸을 파는 일을 하는데, 어릴 적 남자와 정사를 하는 장면을 아이에게 보게끔 했다. 그 충격이 여성혐오를 만들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를 죽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영화를 보고 어쩌면 사람을 죽이는 것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생물 선생에 대해 이해가 되더라."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정석과의 격투신이다. 곽 감독의 표현처럼 '맛이 간 눈빛'을 무장한 전신환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하는 조정석의 처절한 싸움이 후반부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전혀 합이 이뤄지지 않은 막싸움은 특히 인상이 깊다.

 

"정상적으로 액션을 하는 것보다 이런 막싸움이 더 어렵긴 하다. 나도 액션을 배웠는데, 이게 더 힘들더라. 엉성하게 주먹을 날려야 한다. 처음 싸워보는 사람들이 싸우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쉽지 만은 않았다. 한겨울에 셔츠만 입고 싸우다보니까 춥고, 연기 때문에 화상도 좀 입었다. 고생은 했는데, 뭐랄까, 힘들어서인지 뭔가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재밌었던 기억이다. 적어도 '시간이탈자'는 밀도 있게 찍은 영화다. 독립영화는 테이크도 오래 못가고 밀도 있게 찍기 힘든데, 이번에는 혼신을 다했다.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신환이 꿈꾸는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나의 꿈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시간이탈자'가 끝난 전신환은 현재 들어간 작품이 없다. 시나리오를 보며 고민 중이다. 놀라운 점은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업종의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돈도 벌면서 서민의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배우인 그는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끊지 않는다.

 

"아직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좋다. 업계 사람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 얻는 것들이 정말 많다. 당연히 나의 내면을 더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고, 삶과 표정을 배우고 관찰한다. 내가 꿈꾸는 삶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같은 배우로 사는 것이다. 1~2년에 하나의 작품만 하더라도 밀도 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다. 관객들 눈도 높아져서 진짜 사실적이게 연기를 하지 않으면 인정도 못 받을 뿐더러 나조차도 만족하지 못할 거다. 살인자 연기를 했을 때 살인자가 진짜 인정을 해야 진짜 연기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까지 접근해야 배우라고 생각한다. 가짜보다 진짜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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