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물가 관리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외침이 무색할 만큼 최근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3년간 소비자물가 3.5%상승..생활물가 중심으로 올들어 폭등세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 정부들어 지난 3년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기준치인 3%를 웃도는 수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4.7%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는 2009년 2.8%, 2010년 2.9%로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4.1%까지 치솟는 등 한은의 물가관리 기준범위의 상단을 넘어섰다.
노무현정부 때 집권 초기 3년 평균 3.0%, 5년 평균 2.9% 의 물가상승을 보인 것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서민 주요 생활비를 30% 줄이겠다는 정부의 초기 계획도 물가 상승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병박 정부가 집권 초기 물가를 관리해 서민생활을 안정시키겠다며 52개 생활필수품목을 담아 만든 이른바 'MB물가지수'는 어느새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오히려 농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생활물가는 급등했다. OECD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선식품 물가상승률은 30개 국가중에 두번째로 높았다.
생활물가지수는 3년간 평균 3.6%를 나타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이 2.9%를 기록할때도 신선식품 물가는 21.3% 급등했다.
소비자물가는 1월 4.1% 상승률에 이어 2월에는 4.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런 물가상승률은 상반기 내내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들어 생산자물가가 6%를 넘어서고 수출입물가도 14%이상 뛰어 국내 소비자물가 폭등은 이미 예고된 것으로 보인다.
◇ 정부 성장률 집착에 '저금리·고환율 용인'..물가에 악영향
최근의 물가급등은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 곡물가격 급등, 태풍피해, 구제역 등 예상치 못한 외부변수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정부도 억울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OECD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12월 소비자물가 통계는 에스토니아(12.2%)에 이어 상승률 2위(10.6%)를 기록하고 있어, 최근의 물가급등은 외부요인보다는 관리
실패에 기인한 것이란 지적이다.
지난해 말 이른바 '배추파동' 당시 정부는 이런 농산품값 급등을 사전에 전혀 예상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농수산물 가격 상승이 예고돼 왔지만 사전 물량확보와 유통과정 합리화 등 정책으로 풀 수 있는 물가안정 대책은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또 국제 원자재값 등 외부요인이 크게 작용했지만 저금리와 고환율을 용인하는 등 정부의 성장률 집착이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집권 첫해인 2008년부터 강만수 당시 재정부장관은 노골적인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 수출을 늘려 성장률 끌어올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고환율은 수출을 늘렸지만 수입물가도 높여 결과적으로 국내 물가를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은 "집권초기 정부가 수출증대를 위해 고환율 정책으로 고수한 것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라며 "모든 나라가 달러 약세 영향을 받을 때 우리는 그렇지 않아 고스란히 다른나라의 배로 물가부담을 받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물가관리 전담기관인 한은의 저금리 유지정책도 물가상승을 부채질 했다. 한은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시장에서 물가에 대한 경고음이 나왔지만 정부의 성장중심 정책에 찬물을 끼얹지 않겠다는 의도로 금리인상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물가급등이 현실로 나타나자 한은은 올해 1월 '새해 첫달 금리동결'이라는 시장의 예상과 관행을 깨고 부랴부랴 금리를 올렸다.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첫 두해는 물가가 안정되는 듯 했지만 올해는 해외요인이 크게 작용하며 물가가 오른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있다"며 "정부가 이제는 성장이 아닌 안정위주에 신경을 써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물가안정의 정책 최우선 방향으로 설정하고 각 부처를 총동원해 물가잡기에 나섰지만, 지난 3년 물가상승 요인들을 사전에 제거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한 것은 물가정책의 실패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