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통일 봉인론' 파문…여권 '색깔론'일관 비판
'햇볕정책' 핵심인사들, 문제의식 인정하면서도 대체로 비판적
2024-09-24 15:03:00 2024-09-24 16:09:25
지난 19일 오후 광주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념사에서 주장한 '남북한 두 국가론-통일 봉인론'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색깔론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용산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당일 "북한 정권 뜻에 동조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비판한 데 이어, 한동훈 대표는 23일 "김정은이 주장하는 내용과 같다"며 "'동북 공정'도 아니고 '종북 공정'하자는 얘기인가”라고 했는데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종북(從北)을 넘어 충북(忠北)"이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임 전 실장은 이에 대해 "반응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19일 기념사에서도 그는,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2국가 선언에 대해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는 있을 수 없다.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고 선을 그은 바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을 주도해온 인사들은 임 전 실장의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은 인정하면서도 대체적으로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의 설계사'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일 목포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 전남 평화회의'에서 "완전한 통일을 이룩하기 전에 남북이 서로 오고 가면서 경제·사회·문화적으로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먼저 하자는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통일 방안"이라며 "이 길 말고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가"라고 임 전 실장을 에둘러 비판했습니다. 
 
정세현 "임종석은 '1민족 2국가'론, 김정은 '2민족 2국가'론과 달라"…이종석 "고민은 알겠으나 성급"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임 전 장관과 함께 참석한 20일 회의에서 “지금 시점에서 통일은 불가능하게 됐다”며 “임 전 실장의 얘기가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헌법 개정 주장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이 김정은 총비서의 2국가론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2국가론을 비교·평가한 표. 
 
정 전 장관은 23일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헌법 개정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은 국민 정서상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임 전 실장 주장은 ‘1민족 2국가론’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2민족 2국가론'과 달리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특수관계론(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의 범주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정은이 주장했기 때문에 '2민족 2국가'는 못 간다, 우리는 계속 '1민족 2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 등이 임 전 실장에게 동조했다고 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23일 통화에서 "(19일) 현장에서 '통일하자 말자, 헌법을 바꾸자'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을 들으면서 고민은 알겠지만 너무 성급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지난 5월22일자 <경향신문>칼럼에서도,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사실상 두 개의 국가가 존립하는 현실을 인정한 위에 우선 화해협력을 실현한 후 점진적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라면서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하자, 일부에선 그에 대처해 새로운 통일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변화한 상황을 반영하여 부분 보완해 나가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현재의 적대적 남북 대결 상황에서 영구분단국가로서 '두 개의 국가' 여부가 판가름 나는 것은 먼 미래"라고 했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특사였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학자는 주장 가능하나 현역 정치인의 발언은 성급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고,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동영 의원도 "안타까운 심정에서 평화 정책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는 헌법 3조(영토조항), 4조(통일 지향)를 위반한 것이며 역대 정부의 평화통일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연철 "두 국가론은 전쟁론"…김창수 "'남북연합'이 사실상 두 개의 국가"
 
이미 '적대적 두 국가를 평화적 두 국가로 바꾸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 "북한 핵문제 등이 있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반박해온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비판은 더 강합니다. 그는 23일 칼럼과 24일 페이스북에서 "두 국가론은 분단 이전에 강대국의 분할론이었고, 분단 이후에는 전쟁론이었다”며 한국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과 북에서 단독 정부가 수립하면서,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또 "특수관계(론)는 통일지상주의가 아니다. 통일이 아무리 어려워졌다고 해서, 통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해서, 통일을 나중으로 미룬다 해서, 미래의 문까지 못질 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미래세대에 대해 우리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역임한 김창수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도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2단계인) 남북연합은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에 기반한 사실상의 두개의 국가였다"며 "김대중 정부는 통일정책이 아닌 대북정책을 추진했고, 문재인 정부는 통일은 언급하지 않고 오직 평화를 주장했다. 그래도 미래의 언젠가 이룰 통일에 대한 지향성을 놓치지는 않았다. 단, 북한이 지금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적대적인 두개의 국가는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임종석 전 실장은 19일 기념사를 시작하면서 "도발적 발제"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일단 대규모 논쟁을 촉발시키는 데는 성공한 셈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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