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초가을에 전해진 금융계의 결실
입력 : 2020-09-16 06:00:00 수정 : 2020-09-16 06:00:00
긴 장마와 태풍에 이어 가을이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조금 있으면 텃밭에 심은 고구마도 캐야 한다. 나름대로 기대된다. 가을의 문턱에서 금융계에서도 모처럼 결실 하나가 맺어졌다.
 
지난 6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펀드 4건에 대해 판매사가 원금 100%를 반환하라고 결정을 내렸다. 아마도 원금 100%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라는 결정은 금융투자상품 분쟁 조정 사상 처음인 것 같다.
 
그러자 지난달 27일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미래에셋대우와 신한금융투자 등 4개 판매사가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에 대한 고객 보호 조치도 추가로 마련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권광석 은행장의 '멸사봉공' 결단이 큰 몫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권 행장 자신도 라임펀드에 투자한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이사들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불만도 일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한금융투자는 마지막까지 고심하다 막판에 '소비자보호'를 위해 수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수용한 것은 다행이고 올바른 자세라고 여겨진다. 사실 한국 국민과 기업들이 대부분 그렇게 한다. 예컨대 과도한 세금을 내라고 통보받았을 경우 일단 납부하고 추후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금융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을 수용한 배경이 궁금하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청와대 감찰에서 '해방'된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윤석헌 원장은 올 상반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석연치 않게 감찰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윤 원장 감찰을 맡았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민정수석은 물러났다. 윤 원장 거취를 둘러싼 안개도 걷혔다. 이제는 윤 원장에게 더 큰 힘이 자연스럽게 실린 듯하다. 그런 흐름을 금융사들이 파악하고 서둘러 분조위 결정을 수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직 메아리 없는 사건도 남아 있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결정한 키코 배상책임을 은행들이 수용하기를 마다하고 있다. 분쟁조정위 결정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신한은행·우리은행·산업은행·하나은행·대구은행·씨티은행 등 6곳의 불완전판매책임을 인정하고 15∼41%를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145개 기업에 대해서는 조정안을 토대로 은행들이 자율조정하라고 금감원은 권고했다.
 
그렇지만 우리은행만 이 권고를 수용했다. 배상금 지급까지 끝냈다. 우리은행은 이어 이번에 라임펀드 배상결정까지 수용하기로 했으니, 정말로 큰 결단이라 하겠다. 지금쯤 얼마나 개운할까? 거센 비바람이 지난 후의 하늘처럼 청명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은행들은 조정안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일부 은행은 수용여부에 대한 회신 기한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고, 금감원은 동의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10개 은행이 자율조정을 위한 은행협의체를 꾸리긴 했지만 언제 결론이 도출될지 부지하세월이다.
 
급기야 피해기업들이 은행 출연금으로 구제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은행들이 내세우는 '배임' 핑계를 우회하기 위한 방안이다. 은행들의 비협조와 미온적인 태도가 답답한 나머지 먼저 묘안을 짜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타협안조차 수용될지 미지수다.
 
이들 은행은 다시 나선 금감원의 처사에 대해 마뜩잖게 여기는 듯하다. 이미 모두 끝난 일이라고 여기던 키코 사태를 다시 소환한 것 자체에 짜증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은행들은 키코 사건이 하루빨리 잊히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 위안부와 징용노동자의 기억이 잊히기를 바라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의 태도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잊히지 않는다.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 완전히 잊히기는 더욱 어렵다. 가해자는 발 뻗고 편히 누워 있는 동안에도 피해자는 당한 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법이다.
 
그러니 은행들의 바람과 달리 키코 사건이 완전히 잊히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지워지기 어려운 얼룩이다. 그 얼룩을 없애버리려면 은행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 신뢰를 되찾기 위한 현명한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해야 한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거짓상술이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손을 달라고.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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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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