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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의당의 '딜레마'
2020-03-12 06:00:00 2020-03-12 06:00:00
'상대방이 중앙선을 침범하면, 다른 차선으로 옮겨 사고를 방지하는 게 당연한 거다. 이를 두고 비겁하다고 나무라거나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고가 날 걸 뻔히 보면서도 그대로 직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난 10일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송영길 의원이 말한 요지는 대강 이와 비슷하다. 
 
사실, 소위 ‘4+1 협의체’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킨 것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상당한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대신, 민주당이 그토록 원하던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법 등을 통과시켰으니 무조건 양보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비례를 포기한 ‘빅딜’이었음은 틀림없다. 현행 선거제하에서는,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으면 정당 득표율이 높아도 비례 의석을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유 한국당이 비례전문 위성 정당인 미래 한국당만 만들지 않았더라면, 민주당은 그냥 그렇게 쿨하고 멋지게 원칙을 지키면서 총선 준비를 했을 수도 있다. 지금의 ‘비례연합정당’이니 ‘플랫폼 정당’이니, 이미 ‘답정너’인 상황에서 당원투표로 결정하겠다는 등의 조금 민망한 이야기는 안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지난달 16일쯤 의석수 계산기를 공개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너도 나도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예컨대 현행의 지지율을 기반으로 민주당과 미래 한국당이 각 정당 득표율 40%를 얻는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당은 127석 정도를 받는 반면, 미래통합당과 미래 한국당은 157석 정도를 얻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큰 차이는 비례의석수 때문에 생긴 거다. 
 
기존 선거제도인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높은 사표율로 민심을 왜곡시킨다는 이유로, 당시 자유 한국당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꿨지만, 미래 한국당의 등장으로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의당이 주장하는 대로 그냥 지금까지처럼 명분과 소신을 지키며 멋지게 전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좀 부끄럽고 체면은 구겨지겠지만 실리를 찾아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의당이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등 진보 진영 시민단체들과 연합해서 민주당의 비례정당 참여를 맹비난하고 나섰지만, 10일 있었던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의석을 도둑맞게 생겼다’고 말하는 순간, 이낙연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이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 동안'이라고 언급하는 순간,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여기에, 비례 정당에 참여하면 정의당을 버리고 가더라도 19석은 건진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까지 더해져 대세는 확실하게 기울었다고 한다.
 
민주당은 12일, 권리당원들의 모바일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 그동안 미래 한국당을 일컬어 ‘꼼수정당’이라고 비난을 퍼붓던 민주당이 뻔뻔하고 염치없게 그냥 비례 정당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마지못해 참여’하는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느니, 중도층의 이탈과 지역구 의석수를 뺏길 수 있는 ‘소탐대실’이라느니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요지는 비례정당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정의당이 큰일 났다.  
 
그동안 정의당을 지지했던 진보 세력이 정의당이 아닌 정당 투표에서 민주당의 비례연합을 찍게 되면, 정의당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수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정의당을 바라보는 민심이 매우 험악해질 게 뻔하다. 이미 심상정 대표를 향해 ‘욕심꾸러기’라느니, ‘이기적’이라느니 말이 많아지고 있다. 
 
민주당이 걸어갈 길은 이미 정해졌다. 궁금한 건, ‘정의당’의 선택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도중 두 자식 중 한 명만을 ‘선택’해야 했던 ‘소피’의 궁박한 처지가 생각난다. 
 
노영희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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