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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똘레랑스 제로' 친박의 공천 학살극
2016-03-22 06:00:00 2016-03-22 06:00:00
최근 한국 언론을 누비는 단어들은 섬뜩하고 아찔하다. '친박의 비박 학살극' '정치보복' '처형' 등.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3주 앞두고 벌어지는 새누리당의 난투극은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킬 정도다. 친박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사생결투를 벌이고 있다지만, 이 비상식적인 결투를 국민은 수수방관하며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의 포스트마테리얼리즘(탈물질주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먼저 물질적·생리적 욕구를 열망하고, 이 욕구가 충족되면 그보다 상위 단계인 자기실현·자기존경, 정치적 똘레랑스(관용) 등 탈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이러한 현상은 학력이 높은 중산층에게서 더 뚜렷하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등장해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그런데 한국 정치 엘리트들은 고학력에 거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이러한 기류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인정하는 똘레랑스는 이들에게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에서 컷오프된 의원들은 대부분 친박에게 쓴소리를 했거나 이견을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정치가 산업사회를 장식했던 군사독재로 회귀하고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말 14년간 프랑스를 이끌어온 프랑수아 미테랑은 프랑스인 사이에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미테랑이 큰 대통령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라이벌 미쉘 로카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테랑과 로카르가 적수로서 전투를 시작한 것은 1956년이다. 법무부 장관이던 미테랑은 구 식민지 전쟁의 알제리인 죄수들의 석방을 거절했고, 이에 분개한 로카르는 미테랑을 만난 자리에서 '살인자'라고 외쳐댔다. 그 후 이 둘의 증오는 자꾸만 커지고 대립각은 뾰족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 감독관이었던 로카르는 1974년 사회당에 버젓이 입당했고 1981년 사회당 대선 후보를 꿈꿨으나 미테랑에게 밀리고 말았다. 1988년 대선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돼 로카르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렇게 정치적 적수로 30년간 '결투'를 벌여 왔건만, 미테랑은 놀랍게도 1988년 로카르를 총리로 임명했고 정치적 동반자로 삼았다. 이 둘은 첨예한 이견 속에서 열정적인 이중주를 만들어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의 한획을 긋는 정치인으로 남게 되었고, 프랑스 사회당의 양대 지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비박 의원들을 내치는 친박 의원들의 행보와는 180도 다른 통 큰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날로 세련되고,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결해 승리할 만큼 첨단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부합된 정치를 모색하기는커녕 중세의 고전에서나 볼 수 있는 복수극을 연출하고 있다면 이처럼 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친박은 비민주적 헤게모니 쟁탈을 중단하고 신속히 한국 정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차이를 인정하고 이견을 흔쾌히 받아들일 때 향상되고 발전하는 법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21세기의 포스트모던 정치인으로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적수였던 미테랑과 로카르의 똘레랑스 정신, 그리고 당당히 결투를 벌였던 페어 플레이 정신을 몸에 익혀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만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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