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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집계 방식 바꾼 교보문고..사재기 사라질까?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 '누적'으로 변경
사재기 예방 목적..'긍정적 시도'로 평가
"다양한 추가 대책 마련돼야"
2014-09-25 14:54:10 2014-09-25 14:54:10
[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교보문고가 주간 베스트셀러의 집계 방식을 누적 판매 기준으로 바꾸면서 출판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사재기'를 근절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5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날부터 이 서점이 발표하는 주간 베스트셀러는 누적 판매 부수를 기준으로 집계된다. 그동안 교보문고는 해당 주간 판매량만을 집계해 주간 베스트셀러를 꼽았다. 주간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의 전면 개편은 지난 1980년 이 회사 창립 이후 34년 만이다.
 
새로운 주간 베스트셀러 선정은 직전 4주간의 가중평균 판매량 집계를 기준으로 한다. 최근 1주차부터 4주차까지 40%, 30%, 20%, 10% 등 가중치가 매겨지는 식이다.
 
이번 개편은 사재기를 예방하고, 책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 마련됐다. 이와 관련 연구를 진행한 김원준 카이스트 교수는 "누적판매량 개념을 도입하면 책이 베스트셀러에 급격하게 진입했다가 내려가는 문제를 해결해 책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며 "외부 이슈로 인해 순위가 급등락하는 현상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도 "이번 개편에 따라 장기적으로 고른 판매량을 보이는 책이 유리하게 되므로 꾸준한 관심을 받는 책이 스테디셀러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판매량을 집계하는 주에 출간된 경우 그 부분을 100%로 집계하므로 신간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하기 어렵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신간의 수명이 짧아지는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꾸준히 팔리고 있는 책이라도 특정 주간 판매량이 하락하면 순위에서 밀려나 판매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누적된 집계를 활용해 순위를 매기면 이 같은 현상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집계 방식을 적용하면 책 순위가 뒤바뀌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달 2주차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부키)의 순위는 기존 집계 방식보다 2계단 올라 4위를 차지했다. 반면, <김우중과의 대화>(북스코프)와 <어떤 하루>(프롬북스)는 1계단씩 내려가 각각 5위, 6위를 기록했다.
 
(사진=교보문고 제공)
 
◇베스트셀러 집계, 사재기 '원인'..관련 업계도 '관심'
 
대형서점, 인터넷서점들이 매주 집계해 발표하는 베스트셀러는 그동안 사재기 등 출판 시장 왜곡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해당 주간 판매량만 집계할 경우 출판사나 서점이 책의 온·오프라인 진열 방식 변경, 할인 판매 등 집중 마케팅이나 각종 은밀한 수법으로 사재기를 벌이면 베스트셀러 순위가 쉽게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이 주요한 책 구입 기준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팔리는 책만 인기를 끌게 돼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는 작가들의 창작 의지와 출판 업계의 의욕을 꺾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사재기 의혹에 휩싸인 출판사 대표가 물러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절판을 선언하는 등 충격적 사건도 발생한 데 이어 올해도 사재기 의혹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서점 관계자는 "이번 개편이 반짝 마케팅으로 매출을 올려 불황에서 벗어나려는 일부 출판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만큼 베스트셀러 목록이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탓에 불황을 겪고 있는 출판 시장의 일각에서 사재기와 같은 무리수를 벌인다는 해석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교보문고의 시도는 사재기 문제 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출판사들이 주로 광고하는 신문을 사람들이 안 보니까 책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딱히 없고,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서점들의 경우 교보문고의 이번 개편의 영향을 관찰하면서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 변경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서점인 예스24(053280)와 알라딘 등은 "현재 검토 중인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고, 반디앤루니스는 "누적 판매량 기준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교보문고 제공)
 
◇"사재기 예방 위한 근본 대책 마련해야"
 
하지만 사재기를 완전히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전국적 통계,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 대책 등 더욱 견고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구매자의 주소를 교묘하게 분산하는 등 치밀한 수법으로 사재기가 이뤄지면 발각되기 어렵다. 내부 고발자에 의한 공개가 가장 효과적이다. 
 
지난 7월 출판문화사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책 사재기는 '범죄'가 됐으나 더 강력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 책 사재기가 적발되면 기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서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으로 강화됐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 7월 내부고발에 대한 포상 규정이 신설됐는데 포상금을 대폭 강화하고 고발자의 신원 보장과 영업권에 제동을 거는 등의 장치를 추가해야 사재기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서점에서 집계하는 베스트셀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필요도 있다. 잘 팔리는 책이 '베스트' 책이냐는 것이다. 양질의 지표를 만들어 베스트셀러의 신뢰성을 높이고 독서 인구의 다양한 수요를 발굴해 출판 시장의 침체를 극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컨대 최근 열린 아시안 게임과 관련해 읽을만한 책 목록을 베스트셀러로 꼽는 등 시의성이 있거나 특정 주제별로 잘 나가는 책 목록을 만들면 다양한 독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교보문고가 이번에 신설한 스테디셀러 목록도 긍정적인 대안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기획회의' 편집주간)도 "각각의 회사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좋은 책을 고르는 데 장애가 되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전국적 통계를 바탕으로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인지 사회적 합의를 거쳐 공식적이고 신뢰성 있는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 베스트셀러 한 권만 팔리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담론을 만들고 사회의 논쟁도 이끄는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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