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경제민주화'에 재벌그룹들 "한발만 더 가까이!"
2012-11-16 15:46:19 2012-11-16 15:47:54
[뉴스토마토 김기성·양지윤기자] 16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재계의 반응이 이해관계에 따라 다소 엇갈리는 모습이다. 사안별로 민감한 현안이 달랐던 탓이다.
 
10대 그룹은 무엇보다 자사 이름으로 입장이 전해지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쓸데없는 자극을 통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때문에 다들 익명을 전제로 속내를 조금씩 꺼내보였다.
 
한 그룹사 고위임원은 먼저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입장을 반겼다. 그는 “기존 출자에 대해 의결권 제한 등 그 어떤 불필요한 제약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이는 분명 재계 입장을 경청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 편은 맞더라”는 말도 이어졌다.  
 
대신 '금산분리 강화'에 대해서는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요즘 누가 금융계열 돈을 빼서 쓰냐”는 게 주된 반론 이유였다. 그러면서 “법제화까지 시일이 걸릴 테니 좀 두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다른 그룹 관계자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공약을 거론하며 “관치 경제를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들린다”고 말했다. 해외 경우 공적 연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치권력이 시장(기업)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또 다른 그룹 임원은 총수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일본만 해도 배임은 적용하지 않는다”며 “총수 결단을 통해 그룹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배임을 포괄적으로 적용할 경우 그 누구도 위험을 지려 하지 않는다. 기업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특히 총수 문제가 얽혀 있는 몇몇 해당 그룹들의 반응은 매한가지였다. 이들은 “소급적용의 영향을 받을 사안이 아니다”며 해당 공약과 선을 그으면서도 “다만 여론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뭐라 언급할 처지가 아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대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여전히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른 그룹사 관계자는 “총론적으로 봤을 때 많이 후퇴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그나마 합리적 안을 내놓은 것 같다”고 평했고, 다른 그룹 임원은 “예측 가능성에 있어선 여전히 혼란스럽다. 어쨌든 여야 불문하고 경제민주화 흐름만은 분명하기 때문에 대관 파트를 중심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 그룹은 발 빠르게 TF팀 구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갈등으로 혼선을 빚었던 박근혜 후보를 끝으로 유력 대선주자 3인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면면을 드러낸 만큼 시나리오별로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한편 경제단체의 움직임도 엇갈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보다 시장 공정경쟁을 강조하고, 기존 순환출자 해소와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 등이 제외된 점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극화 해소가 우리 시대 과제”라고 규정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의 자율과 창의활동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권의 칼날을 의식해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규제와 조정으로 보완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의는 끝으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이고,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별도의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주 극단적인 케이스만 빼고 광범위하게 기업환경을 위축시키는 공약들로 구성됐다”고 혹평했다.
 
그는 시장 매물로 나와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예시하며 “금산분리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도입되면 사실상 국내 기업이 사기 힘들어 해외 투기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비금융 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도 문제”라며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쓰여야 할 자금이 지분 확대로 사용되면 투자나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장담했다.
 
특히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및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관련해 “기업 경영활동을 크게 제약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소송이나 고발이 급증해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느라 정작 기업활동에는 집중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뜩이나 국내경제 상황이 어려운데, 박 후보의 공약이 현실화 될 경우 투자는 물론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것”이라며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재검토하고 합리적으로 재계 의견 등을 수렴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민주화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 개선 ▲대기업집단 불법행위 및 총수일가 사익편취 엄격 대처 ▲기업지배구조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 5대 분야를 중심으로 한 35개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이날 최종안에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등 당내 경제민주화 주창론자들이 주장한 개혁안들이 대거 빠져 경제민주화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특히 재벌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추진된 기존 순환출자 대상에 대한 의결권 제한과 대기업집단법 제정 등이 전면 제외돼 재벌개혁 의지 자체가 실종됐다는 혹평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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