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시, 지란지교를 꿈꾸며
2024-08-26 06:00:00 2024-08-26 06:00:00
멀어진 사람이 있다. 싸운 적은 없다. 작은 말다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도 없이 긴 시간동안 깊은 우정을 나눴던 관계가 틀어졌을 리 만무하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사소한 일들이 누적되어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서운해 할 것을 알면서도 ‘내 진의를 알아주겠지’, 상대에게 서운한 게 있어도 ‘날 생각해서 한 말일 거야’ 하며 솔직한 대화로 만들어질 불편한 순간을 애써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우리는 절대 그 정도의 감정으로 망가질 관계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모든 게 오만이었다. 
 
글에서나 사진에서나 1인칭만으로는 세상을 구성할 수가 없다. ‘나’가 물러서므로 3인칭은 겨우 드러난다. 1인칭과 3인칭 사이에 ‘너’가 있음으로써 인간은 복되다. 3인칭을 2인칭 ‘너’로 변화시켜서 끌어당기는 몸과 마음의 작용을, 쑥스럽지만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다. 잘 드러난 3인칭은 대상으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너’가 되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 김훈, <허송세월> 중에서
 
애초에 상대는 내게 ‘그녀’였다. 3인칭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섣불리 건너가 일찍 2인칭의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회에서 만들어진 관계가 대체로 그렇듯 느슨하고 가벼운 게 편했다. 그런데 조금씩 스미고 번지기 시작했다. 신혼초였던 그녀가 결혼 10년차인 내게 결혼생활에 대해 물으며 조언을 구하는 일이 서로의 마음을 여는 데 주효했다. 두 남편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급격히 동지애가 생겼다. 5살의 나이차이가 무색하게 동지애는 금세 우정이 되었고, 우리는 10년이 훌쩍 넘도록 피만 안 섞인 자매처럼 지냈다. 긴 시간동안 서로를 물들였고 서로에게 길들여졌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브렌다에게 야스민은 철저히 3인칭이었다. 그것도 꽤 거북한 3인칭. 그러나 야스민은 서슴없이 브렌다에게 다가가려 한다. 2인칭으로서 말이다. 대체 자기한테 왜 그러냐는 물음에 야스민은 천진하게 답한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라고.
 
순수한 야스민과 먼저 친구가 된 이들은 브렌다의 아들과 딸이었다. 야스민은 상대가 누구여도 그 상대에게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마법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힘은 마침내 브렌다의 마음도 열게 만드는데, 우정이 서로를 알아보자 바그다드 카페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적 말이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을 끌어당길 때 만들어지는 에너지는 관계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력을 갖는다.
 
물론 현실의 모든 우정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내 우정 역시 브렌다, 야스민과 같다고 말하지 못한다. 기적은커녕 우리 둘 사이마저 한 치 앞을 모른다. 혹자는 모든 인연이 다 시절인연이라고, 집착하지 말라고 이른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관계가 끝났음을 상정한 말처럼 들린다. 다른 이는 먼저 연락해 마음을 다 보여주라고 말한다.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조언일 게다. 또 다른 이는 시간에 맡기라고, 이어질 인연이라면 지금의 격조는 ‘마디’가 생기는 중인 것이니 기다리라고 말한다. 수긍은 되나 과연 시간의 힘을 과신해도 될는지 잘 모르겠다. 세 가지 말 속에서 난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헤매는 중이다. 이제 조금 안다고 할 만하면 또 모르겠는 게 인간관계라는 것만 확실히 알겠다. 아마 죽는 날까지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다만, 지금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들이다. 2인칭의 ‘너’가 3인칭의 ‘그녀’로 바뀐다면 나는 많이 슬프고 아플 것이라는 것. 가끔 꿈에서는 우리가 웃고 떠들고 있다는 것. 나는 ‘너’를 여전히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것.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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