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오물풍선 피해 차량, 애매한 보상 기준에 소비자 '한숨'
보험사, '무사고 아닌 무과실 사고' 주장
국가 보상 근거법은 국회 계류 중
2024-06-17 17:24:58 2024-06-18 08:39:28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북한이 남한에 살포한 오물풍선으로 차량 파손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피해를 입은 차주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은 오물풍선을 낙하물로 판단, 무과실 사고로 분류해 보상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차주들은 무사고 적용을 받지 못해 피해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손해보험사들은 북한 오물풍선으로 인한 자동차 파손 접수에 대해 자기 차량 손해 담보(자차 담보)로 보상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자차 담보는 자동차 파손이 발생했을 때 수리비를 보상받는 보험입니다. 보통은 수리비의 약 20%를 차주가 부담합니다.
 
보험사, 오물풍선 낙하물 인정
 
오물풍선에 의한 차량 파손이 일어났을 때 보험사에게는 이를 '보상 범위로 볼 것인가'가 쟁점이었습니다. 결국 보험사들은 오물풍선을 낙하물로 인정해서 자차 담보로 보상을 시작했습니다. 한 보험사는 수리비 53만원 중 33만원 보상을 완료했고, 또 다른 보험사는 보상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전쟁 △혁명 △내란 △사변 △폭동으로 인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오물풍선이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무과실 사고'로 보상을 결정했습니다.
 
다만 개인이 손해를 부담하는 무과실 사고 적용이 타당한지에 대한 쟁점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안보 문제로 발생한 사고인데, 개인이 무사고 실적을 받지 못하고 자기부담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오물풍선 피해로 자차 보험 처리를 한 차주들은 자동차보험 계약을 갱신할 때 보험료 할증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1년 간 보험료 인하도 없습니다. 보험료 할인은 '무사고'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물풍선 자차보험의 경우는 무과실로 보험금 청구가 있었기 때문에 무사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보험사들의 논리입니다. 1년간 보험료가 동결되지만 할인을 받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보험료 상승입니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물적 사고 할증 기준에 따라 사고 점수가 부여되고 보험료 인상률이 결정됩니다. 물적 사고의 경우는 1점 할증 또는 0.5점(할인 유예) 등 두 단계로 나뉩니다. 50만~200만원까지는 할인 유예를 받을 수 있고 200만원을 초과하면 사고점수 1점을 가산해 보험료가 할증됩니다.
 
오물풍선의 경우는 아직까지 수리 금액이 200만원 미만 사례가 발생하면서 사고점수가 0.5점 붙고, 보험료 할인은 1년 유예됩니다.
 
보험사들이 오물풍선으로 인한 피해 차량을 낙하물로 인정해 자차담보로 처리하고 있다. 사진은 9일 오전 소방대원들이 인천시 미추홀구 학익동의 한 빌라 옥상에 떨어진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을 수거하고 있는 모습. (사진=인천소방본부)
 
피해 차주들, 자차 보험에 의존해야
 
현재로서는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차 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보험료 할인 유예와 자기부담금까지 발생하는 상황에서 오물풍선 피해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물풍선 자체가 국가 안보 문제 차원에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차주가 오물풍선 피해로 사고 경력 없이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차량 운행 중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입니다. 정부는 2022년 시행된 자동차 손해배상보장법 개정안을 통해 무보험차·뺑소니 사고 피해자에 한정됐던 보상 대상에 낙하물 사고 피해자를 포함했습니다. 운전 중 낙하물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낙하물 소유주나 가해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 정부가 피해를 구제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이러한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지시에 따라 피해가 발생한 서울과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도 예비비 등 자체 예산을 활용해 피해 지원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보험사 보상이 완료된 건에 대해서도 추가 방안이 구체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피해액 전액 또는 자기부담금만 보상을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자기부담금만 보상을 받을 경우 피해 차주는 여전히 무과실 사고 경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반면 피해액을 모두 보상 받는다면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환입을 받아 무사고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오물풍선 낙하의 경우는 가해자 불명의 무과실 사고로 보상이 가능한데, 자차 보험 신청이 들어오면 보상을 안 할 수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상 방안이 나오더라도 이미 보험사의 보상이 이뤄진 부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는 피해를 입은 시민이 현장 사진과 수리비 영수증을 청구하면 적정가를 산정한 뒤 보상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다만 지자체가 주민들의 재난·사고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가입한 시민안전보험은 오물풍선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지자체는 자체 예비비로 실비를 보상할 계획입니다.
 
오물풍선으로 인한 시민 피해가 일어나고 있지만 마땅한 구제 수단이 없어 보험사의 자차보험으로 손해 보사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재살포에 대응하기 위해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실시한 가운데 10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군인들이 이동형 대북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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