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박물관에서 만나는 알타의 선사시대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29)
2024-06-17 06:00:00 2024-06-17 06:00:00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알타 시내 스케치 
 
알타 일정은 원래 단 하루였다. 물가와 숙박비가 워낙 비싼 곳이라 토요일 아침에 도착하면 방문 목적인 알타 암각화만 둘러보고 일요일에 헬싱키로 떠나, 그 다음날 상트페테르부르크행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을 계획이었다. 올 때 경로였던 시르케네스-무르만스크 국경은 오래 지체됐던 기억 때문에 망설여졌다. 물론 러시아로 들어갈 때는 나올 때보다 상황이 낫겠지만, 어차피 마지막 일정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여서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결정이 늦어지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항공편을 찾다 보니 일요일에 떠나는 표를 구하지 못해 결국 월요일 아침까지 기다리게 됐다. 알타에서의 시간이 하루 더 주어졌으니 나는 주변의 시내를 둘러보고 다시 박물관에 가 복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전날 제대로 보지 못한 내부 전시실도 꼼꼼히 둘러볼 생각이었다.
 
알타 시내의 작은 광장에는 눈길을 끄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보세삭사(절단기)로 작업 중인 슬레이트 노동자’(욘 토르게르센, 2004)라는 작품인데, 150년 동안 알타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었던 슬레이트 산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노르웨이 북부에 위치한 대부분의 다른 도시들은 어업에 의존했지만 알타에서는 슬레이트가 가장 큰 수출품이었고 다수의 주민들이 몇 세대에 걸쳐 슬레이트 산에서 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슬레이트 산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알타 도심에 세워져 있는 동상 '보세삭사로 작업 중인 슬레이트 노동자'(욘 토르게르센 작, 2004년). 사진=박성현
 
동상 바로 앞에는 ‘시장거리’라는 뜻의 거리가 뻗어 있는데, 행사 조형물에 ‘오프로드 핀마르크’라 쓰여 있다. 오프로드 핀마르크는 매년 여름 열리는 오프로드 산악자전거 경주로 알타의 이 거리에서 시작한다. 거리를 죽 따라가면 맞은편에 보이는 오로라 대성당에 이르게 된다. 외관에 티타늄을 입힌 오로라 대성당은 오로라를 형상화한 나선형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알타시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암각화를 품은 동네가 어떤 곳인지 잠시 둘러보고 나는 다시 알타 박물관으로 향했다.  
 
오로라를 형상화한 '오로라 대성당'은 알타시의 랜드마크이다. 사진=박성현
 
알타의 도심가에 산악자전거 경주인 '오프로드 핀마르크' 행사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사진=박성현
 
박물관 전시실의 암각화, ‘돌 속의 흔적’
 
알타 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규모가 크다. 그래서 간단한 특별전시를 먼저 둘러보았는데, 방문 당시 해안 사미족의 삶과 사고방식을 주제로 한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요한 사라 주니어라는 작가는 여름 동안 순록이 풀을 뜯던 알타와 스티에르뇌야섬의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데, 그 전시 내용이 알타 박물관에 적절히 어울린다.  
 
2023년 여름 방문 당시 알타 박물관의 특별전시. 해안 사미족의 삶과 사고방식을 주제로 한 요한 사라 주니어의 작품이다. 사진=박성현
 
상설전시실은 다채롭게 구성돼 있으며 실제의 바위그림 7개를 포함한다. 바위 표면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암각화 하나를 보니, 달의 표면처럼 울퉁불퉁 파인 자국이 있는 돌에 순록과 곰, 곰발자국, 그리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2017년 알타피오르 서쪽의 이스네스토프텐에서 발견된 것으로 약 6000~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바위에는 손발의 포즈가 독특한 두 사람이 보이는데, 한 명은 오른손으로 뭔가 길고 커다란 물체를 쥐고 있으며 왼손은 허리 쪽으로 구부리고 있다. 그의 발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위에 서 있다. 다른 한 명도 오른손은 무엇을 쥐듯이 앞으로 뻗었고 왼손은 위를 향해 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오른손이 둘 다 바위를 수직으로 가르는 가느다란 흰색 선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이 두 명의 다리는 각각 가지런히 붙은 채 두 발만 벌려져 마치 물고기 꼬리처럼 보이는데, 흥미롭게도 바위의 흰색 수직선이 그 발을 관통하고 있다. 그들의 아래쪽에는 순록이 보이고 왼쪽에는 고래인지 다른 동물인지 선명하지 않은 형상이 놓여 있다. 
 
2017년 알타피오르 서쪽의 이스네스토프텐에서 발견된 암각화(6000~7000년 전). 순록과 곰, 곰발자국이 새겨진 바위 표면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사진=박성현
 
바위 중앙에 손발의 포즈가 독특한 두 사람이 보이는데, 왼쪽 사람은 오른손으로 길고 큰 물체를 쥐고 있다. 사진=박성현
 
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바위그림 중에는 알타보다 북쪽인 함메르페스트 지방자치체의 고스호펜에서 발견된 암각화도 있는데, 두 척의 배와 배에 탄 사람들이 보인다. 고대의 정착지 근처에서 발견된 이 암각화의 제작 연대는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어 꽤 젊은 편이다. 다른 쪽에는 붉은 문양이 그려진 암채화도 전시돼 있다. 석기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이 평평한 바위는 무덤 위에 뚜껑으로 놓여 있었는데, 채색된 그림이 있는 면이 아래쪽을 향해 고인을 마주보는 방향이었다고 한다. 장례의식과 관련 있는 바위그림이라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암채화는 1937년 네세비 지자체의 니엘브에서 발견됐고 4000~5000년 전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바위의 크기는 170x50cm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트롬쇠 박물관으로 넘겨지기 전에 나머지 부분이 사라졌다고 설명돼 있다. 원래의 크기대로라면, 좀 짧긴 하지만 관의 크기와 유사해 고인을 덮을 만했을 것 같다. 이 암채화가 망자를 보호하고 저승길에서 그를 호위한 것일까?  
 
함메르페스트 지자체의 고스호펜에서 발견된 암각화. 약 20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초기 암각화의 배 모양과는 차이를 보인다. 사진=박성현
 
1937년 네세비 지자체 니엘브의 석기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암채화(4000~5000년 전). 사진=박성현
 
알타 박물관의 상설전시는 ‘돌 속의 흔적’이라는 중심 주제와 함께 알타 암각화가 어떻게 제작됐고, 어떤 풍경 속에서 그리고 어떤 암석 표면에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시물은 암각화 형상들과 그 실제 대상―곰 같은―을 시각화하고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선사시대 사람을 보여 준다. 관람객이 암각화 이미지를 재현해 볼 수도 있다. 전시물 중 눈길을 끄는 배가 있는데, 알타 암각화의 가장 오래된 배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욘 올레 안데르센이라는 작가가 1991년에 제작한 배다. 이 배는 물개 가죽과 나무로 만들어졌다. 
 
알타 암각화의 가장 오래된 배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물개 가죽과 나무로 만든 배(욘 올레 안데르센 작, 1991년). 사진=박성현
 
또 다른 주제인 ‘자원과 정체성’은 지질학적 접근으로, 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알타의 천연자원이 어떻게 해당 지역의 인간 활동과 정체성의 기초를 형성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빙기 이후 약 1만1000년 전 알타피오르에 석기시대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곳에서 도구로 사용할 적록색 점판암(슬레이트)과 규질암 등을 얻었다. 엄청난 양의 바위그림이 보여주듯이, 알타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면서 해안과 내륙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중요한 교류장소였을 것으로 간주된다.
 
알타의 첫 암각화들은 붉은색 표면에 만들어졌는데, 코피오르의 암각화는 적록색 슬레이트에, 이엠멜루프트의 암각화는 적갈색 산화철의 얇은 층으로 덮인 사암에 새겨졌다. 야외의 암각화 산책로를 걷다 보면 ‘붉은 바위’에 대한 안내판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보이는 해안가에 붉은색의 암각화 바위가 놓여 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이엠멜루프트의 만에서 발견된 암석을 실험한 결과 이곳의 암석에는 철이 포함돼 있어 바다의 염분과 알칼리성 환경에서 산화철이 생성되고 암석 표면에 얇은 층을 형성한다. 또한, 지형이 높을수록 지의류가 자라 환경을 더욱 산성화하는데 거기에 산화철이 용해돼 암각화 산책로에서 본 것처럼 바위가 옅은 회색으로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해안가 바위에 형상을 새기면 붉은 표면 아래의 돌이 밝은 흰색으로 드러나 형상의 윤곽이 선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그 반대가 됐다. 점점 상승해 밝은 회색이 된 바위에 옛 그림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붉은색을 입혀 놓았으니 말이다. 
 
산화철로 인해 암석 표면이 붉은색으로 된 이엠멜루프트 해안가의 '붉은 바위'. 안내판 너머에 암각화가 새겨진 붉은 바위가 보인다. 사진=박성현
 
제의와 천체? ― 암각화 형상의 수수께끼
 
알타의 암각화 산책로에는 흥미로운 그림들이 매우 많은데, 붉은색 안료를 제거한 암각화 중 형상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면서 내용이 독특한 그림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려 한다. 번호 L19(Ole Pedersen 9)에는 해발 23미터 높이에 위치한 바위에 순록과 엘크, 곰과 새와 사람, 기타 사물과 알타 암각화의 유일한 토끼까지 약 50개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해발고도에 따라 추정되는 제작 연대는 6000~7000년 전이다. 이 그림에는 어른과 아이들, 사냥을 하고 춤을 추고 북을 치는 역동적인 동작의 사람들과 동물들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커다란 엘크머리 지팡이를 든 두 명의 남자인데 뾰족한 모자 내지 머리장식을 썼다. 그들 사이에는 긴 창을 든 남자가 엘크사냥에 나서고 있다. 그 옆에 활과 화살로 다른 엘크를 겨냥하는 사냥꾼도 보인다. 거대한 엘크머리 지팡이를 쥔 사람들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는 중일까?   
 
안내책자에 실린 L19번(Ole Pedersen 9)의 그림. 실물과 비교하기 위해 통행로에 펼쳐 놓았다(타원 안은 엘크머리 지팡이를 든 두 사람). 사진=박성현
 
엘크머리 지팡이를 든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긴 창을 들고 사냥을 하는 남자가 보인다. 사진=박성현

 
 
이 그림에서 가장 특이한 이미지는 굵고 길게 뻗은 줄 끝에 커다란 원이 풍선처럼 달려 있는 형상이다.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이라는 하나의 해석처럼, 어떤 천체 현상이 묘사된 것일까? 오로라가 있는 지역이니 옛 주민들도 신비한 하늘에 매료됐으리라. 이 형상 옆에는 네 사람이 가운데 놓인 커다란 구 형태의 물체를 둘러싸고 강강술래를 하듯 손을 벌려 서로 맞잡고 있다. 이 구는 또 무엇일까? 해나 달의 상징일까? 이 바위그림을 비롯해 알타 암각화의 여러 이미지들은 이곳이 후기 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만남의 중심지이자 제례의식을 행하던 장소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굵고 길게 뻗은 줄 끝에 커다란 원이 달려 있는 형상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진=박성현
 
커다란 구 형태의 물체를 둘러싸고 손을 맞잡은 사람들.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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