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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 규제 비웃는 EDGC, ‘꼼수’ 리픽싱에 오버행 폭탄
발행가 조정 한계선 막히자 유증 동원
지분율 3% 신주가 20%로 급증
금융위 CB 리픽싱 제도개선 예고에 규제 회피 움직임
금감원 "규제 우회로 보이지만 제재 어려워"
2024-02-02 06:00:00 2024-02-02 0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EDGC(245620)가 전환사채(CB) 출자전환을 통한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논란입니다. 유증 발행가액이 기존 CB 전환가 대비 낮아지면서 신주물량이 급격히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CB의 과도한 ‘리픽싱’(전환가액 조정)을 방지하는 제도 개선을 예고했는데요. 시행 전부터 기업들의 규제 회피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채무상환 압박에 유증, 실제 현금 유입 없는 출자전환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EDGC는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통해 76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습니다. 유증으로 발행되는 신주 발행가액은 431원으로 이사회 결정 당일 종가 477원에서 10.67% 할인된 가격입니다.
 
유증을 완료해도 EDGC에 실제로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유증이 먼저 발행했던 CB를 출자전환하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유증 대상자는 과거 EDGC 7~8회차 CB 보유자들과 같습니다. 유증자금 76억원은 실제 현금이 아닌 76억원어치 CB 채권으로 상계 처리됩니다.
 
최근 EDGC 주가는 지난달 말 CB 채권자들과의 채무조정 합의소식이 전해지면서 변동성이 커졌습니다. 지난달 29일 상한가로 마감한 데 이어 31일에도 18.18% 급등했습니다. 바로 전 25일만 해도 349원까지 하락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으나 31일엔 장중 586원으로 67.91%나 올랐습니다. EDGC가 발행한 7~8회차 CB 채권자들이 보유 채권 일부를 주식전환하고 나머지 채권도 조기상환을 미뤘다는 소식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EDGC는 앞서 지난 2021년 채무상환 등을 위해 400억원 규모의 7~8회차 CB를 발행했습니다. 조달자금 400억원 중 340억원은 3회차 공모 CB를 조기상환하는 데 사용됐습니다. 사실상 사모 CB로 공모 CB를 돌려막은 셈입니다.
 
문제는 EDGC의 주가 하락에서 발생했습니다. EDGC 주가는 CB 발행 후 계속 하락했고 돌려막기를 위해 발행됐던 7~8회차 CB의 주식 전환가보다 낮아졌습니다. 지난해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 시점이 도래하면서 유동성 우려도 커졌습니다.
 
현재 7, 8회차 CB의 전환가액은 각각 2213원, 2313원으로 이날 종가보다 4배 이상 비싼데요. 7~8회차 CB는 이미 최저선까지 리픽싱된 상황입니다. 주식전환을 통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CB 보유자들이 풋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꼼수' 혹은 '묘수'…유증·출자전환으로 리픽싱 규제 우회
 
채무 상환이 임박하자 EDGC는 현금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묘수’를 부렸습니다. CB 채권자들을 대상으로 유증을 진행해 CB 채권을 갚는 방식입니다. EDGC 입장에선 신주를 발행해 채무를 상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CB 투자자들은 리픽싱의 한계를 우회해서 더 낮은 가격에 신주를 인수, 보유주식을 늘릴 수 있습니다.
 
실제 이번 유증으로 CB 채권자들은 기존 CB를 주식전환해서 받을 수 있는 주식수보다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7~8회차 CB 76억원어치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채권자들이 확보할 수 있는 주식은 309만8637주입니다. 이는 작년 3분기 기준 발행주식(9001만1338주)의 3.44%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번 유증으로 받게 되는 주식은 1763만3408주로 발행주식의 19.59%에 달합니다. CB 보유자들로서는 보유 채권 대신 유증을 선택해 EDGC 지분을 5.7배나 더 늘릴 수 있게 된 겁니다.
 
다만 이렇게 유증을 진행할 경우 새로 발행되는 주식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어서 EDGC의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EDGC는 기업공개 이후 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 메자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습니다. 지난 2020년부터 공모와 사모 메자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만 1260억원에 달합니다.
 
'리픽싱' 제도 개선 전부터 허점 악용 우려
 
금융투자업계에선 CB를 출자전환에 활용하는 이런 행위들이 금융당국의 CB 리픽싱 규제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CB 공시를 강화하고 과도한 리픽싱을 방지하는 내용의 제도개선 추진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CB 발행 시 리픽싱 한도(최초 전환가액의 70%)를 준수하고 예외 적용은 건별로 주총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사회 결의를 통해 결정되는 유증의 경우 주총 동의가 필요 없습니다. CB가 리픽싱 한도에 도달할 경우 출자전환으로 추가 리픽싱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셈입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CB 상향 리픽싱 의무화 당시에도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이 대안으로 떠올랐다”면서 “CB 상계를 통한 유증 역시 기업들의 규제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은 CB 리픽싱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에 대한 제재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환가보다 저렴한 신주 발행과 출자전환을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이번 제도개선의 목적이 CB 리픽싱을 통한 불공정거래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출자전환을 통한 유증을 제재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CB 출자전환과 유증을 통한 저렴한 신주 발행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주가를 부양한 정황 등이 발견될 경우 불공정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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