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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이정모의 세상읽기)우리를 맹탕으로 보지 마라

2017-02-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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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본적으로 물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아마도 우리 몸이 물로 되어 있기 때문알 것이다. 우리 체중의 70퍼센트 정도가 물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맹탕이다. 물이 97퍼센트를 차지하는 수박에 비하면 훨씬 낫지만 말이다.
 
생명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약할 수밖에 없다. 부딪히면 잘 터진다. 그러면 만약에 생명이 쇠로 ehldj 있으면 어땠을까? 튼튼하고 열과 전기가 잘 통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화학반응은 일어날 수 없다. 우리 몸은 커다란 화학공장이다. 반응물들이 서로 만나서 반응하여 쪼개지고 합쳐지면서 덩달아 에너지도 발생한다. 반응물이 서로 만나려면 자유롭게 헤엄치거나 날아다닐 공간이 필요하다. 물이 딱 좋다.
 
반응물이 만난다고 해서 반응이 저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남녀들이 만나지만 그들은 스스로 짝을 짓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딱히 중매쟁이로 나서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한다. 세포의 화학반응도 마찬가지다. 반응물 사이에도 중매쟁이가 있다. 단백질 효소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체온에 민감하다. 체온이 몇 도만 떨어져도 저체온증에 빠지고 체온이 몇 도만 올라가도 고열로 죽는다. 체온을 36.5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단백질 효소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온도이기 때문이다. 온도가 달라지면 단백질 효소가 활성을 잃는다.
 
중매쟁이는 남녀가 만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그들이 자식을 낳는 과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단백질 효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반응물들을 끌어당겨서 서로 맞잡게 하고는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는 다른 반응물들을 또 찾아 나선다. 단백질 효소는 반응을 도와주기만 하는 것이다. 이 역할을 잘하는 까닭은 반응물과 쉽게 붙었다가 쉽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 마치 포스트잇처럼 말이다.
 
단백질 효소가 포스트잇처럼 작용하는 데 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은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물 분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지만 물 분자 안에서 산소는 전기적으로 음성이고 수소는 양성이다. 그래서 물 분자의 산소는 단백질 효소의 수소와 포스트잇 결합을 할 수 있다. 또 물 분자의 수소는 단백질 효소의 산소나 질소와 포스트잇 결합을 한다. 이 포스트잇 결합을 생화학에서는 수소결합이라고 한다.
 
단백질 효소의 작용들이 모여서 생명 현상을 이룬다. 단백질 효소의 작용은 물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물이 생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NASA의 과학자들이 화성에서 물을 열심히 찾고 있는 이유는 물이 있어야만 생명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이 생명인 것은 아니다.
이런 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대체의학자 에모토 마사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는 다양한 얼음 결정 사진이 나온다. 그는 물을 영하 20도의 냉장고에 3시간쯤 넣어둔 후 얼음의 결정구조를 관찰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거나 사랑 또는 감사처럼 긍정적인 단어를 보여준 물의 결정은 아름다운 모습을 띠었다. 반대로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주거나 망할 놈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보여준 물의 얼음 결정은 대칭성이 깨져 있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아름다운 결정 사진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랑과 감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메시지에 감동했다. 하지만 전부 거짓이었다. 그 누구도 그 현상을 재현하지 못했다.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물은 그냥 분자인데 말이다.
 
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그래도 낫다. 속는 사람이 바보다. 그런데 시민을 맹탕으로 보고 우습게 취급하면 참기 힘들다. 검찰의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특검도 받아들이겠다던 대통령은 언론에 나타날 때마다 거짓말이다. 법원이 발급한 수색영장을 무시한다. 심지어 대면조사일이 공개되었다는 이유로 특검의 대면조사를 거부한다. 한편에서는 헌재를 무력화하려는 잔꾀를 부린다. 시민들을 협박한다. 요즘 청와대가 하는 꼴을 보면 시민과 법을 물로 보는 듯하다.
 
인정한다. 우리는 물이다. 맹탕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각각의 포스트잇 결합은 보잘것없지만 그 힘들이 모여서 거대한 생명체를 이룬다. 물은 쇠도 자를 수 있다. 우리 시민의 결합도 그러하다. 시민들이 잔잔한 흐름이 봇물이 될 수도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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