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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디바’, 지금 시대 지배하는 불안의 충격적 실체
‘다이빙’ 소재 끌어 온 욕망과 탐욕의 경계선…극단적 열등감 ‘주목’
‘배려’ 이면에 자리한 폭력의 얼굴, 그 너머 존재한 감정의 ‘죄책감’
2020-09-16 00:00:00 2020-09-16 22:00:4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건 선량한 폭력주의자. 선의가 우선된 배려였지만, 그 배려는 오롯이 폭력이 된다. 배려는 받는 사람 입장이 우선돼야 한다. 베푸는 사람 입장이 우선된다면 그건 무조건적인 폭력이다. 주는 사람은 스스로가 선의에 취해 버린 채 자신의 의도에 정당성을 부여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받는 사람 입장에선 주는 사람 의도와는 다른 폭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이건 선의를 가장한 폭력이고, 폭력에 대한 죄책감이다. 선의의 주체자는 자신의 선의가 폭력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도를 선의로 착각할 뿐이다. 착각이 폭력일지, 그 밑바닥에 자리한 본질 자체가 폭력일지는 모른다. 사실상 이런 출발이라면 그 자체가 완벽한 폭력이 된다. 영화 디바가 그리는 본질적인 속내다.
 
 
 
여성 중심 서사라고 볼 수 있지만 이건 힘에 대한 탐욕을 그린 입장에서 젠더 구분 자체에 의미가 없다. 선의를 가장한 폭력 이면을 여성 시선으로 그려냈단 점은 본의 속에 감춰진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장치 정도로 봐야 할 뿐이다. 남성이 가진 잠재적 투쟁성을 여성이란 젠더의 허울 속에 숨긴 이유는 선의가 가진 폭력의 이면을 착각 속에 숨겨 버리는 영화적 장치가 된다. ‘디바는 이런 지점을 추락의 본질로 접근하면서 다이빙이란 스포츠를 소재로 끌어 온다. 선의와 폭력 그리고 추락이 가진 본질은 기묘할 정도로 교집합을 만들어 냈다.
 
이영(신민아)과 수진(이유영)은 어린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이자 경쟁자다. 함께 훈련하고 함께 경기를 치르며 성장했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이영은 세계적인 선수다. 다이빙계의 디바다. 반면 수진은 이영의 그림자일 뿐이다. 영광은 항상 이영의 몫이고, 수진은 그런 이영을 바라볼 뿐이다. 결국 수진은 은퇴를 선택한다. 이영은 수진을 설득해 듀엣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영의 배려다. 이영의 배려는 모두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이영의 배려는 수진만을 향한다. 그런 배려는 다른 후배 선수들에겐 부러움일 뿐이다. 이영은 분명히 선의다. 하지만 수진은 불안하다. 언제나 자신의 앞에선 이영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 벽에 가로 막힌 자신은 쓸모 없는 존재다.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넘고 싶다. 그런 수진의 속내를 이영은 모른다.
 
영화 '디바' 스틸. 사진/영화사 올(주)
 
그리고 어느 날 수진과 이영이 타고 있던 차가 빗길에 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수진은 실종된다. 이영은 일주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이영의 곁에 이제 수진은 없다. 사고 트라우마로 예전 기량을 찾지 못한 이영은 곤욕스럽다. 그의 곁에 사라진 수진이 떠도는 것 같다. 이영은 수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는 듯하다. 언제나 수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려하고 베풀었던 이영이다. 그런데 이영은 불안하다. 수진이 사라졌단 게 불안하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 했던 수진이 사라진 것이 불안한 게 아니다. 이영은 자신의 자리를 놓칠지 모른단 사실이 불안해진다. 그는 언제나 1등이었다. 수진은 이영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이 배려하고 끌어주던 상대였다. 그런데 수진이 사라진 뒤 이영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영은 점점 곤두박질치는 불안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수진은 사라졌다. 그를 지켜보는 듯한 누군가의 시선이 존재한다. 그 시선은 무엇일까.
 
영화 '디바' 스틸. 사진/영화사 올(주)
 
디바는 특이하다. ‘배려란 감정이 어떤 식으로 폭력이 되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기존 장르 영화에서 주체적으로 그려본 적 없는 감정이다. 배려는 선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폭력은 주는 행위받는 감정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디바는 분명히 그 두 가지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굴곡을 바라본다. 감정의 굴곡이 드러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두 인물의 관계 속에 담긴 서사를 세밀하게 설명하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오롯이 이영과 수진 두 사람이 느낀 감정에만 집중한다. 이영의 불안감, 수진의 드러내지 못한 열등감이 충돌한다. 두 감정의 충돌은 영화에선 직접적으로 그리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두 감정이 충돌하면서 터지는 소리는 스크린을 뚫고 관객의 심리를 뒤흔들 정도다. 그 소리는 영화 시작부터 러닝타임의 흐름 동안 데시벨을 순차적으로 높인다. 영화 마지막 결말 지점에서 터지는 파열음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이영과 수진이 느낀 감정 자체가 관객의 감정과 교차될 정도다.
 
영화 '디바' 스틸. 사진/영화사 올(주)
 
사실 디바가 배려의 이면에 가려진 폭력성을 그리고 있지만 그 본질의 실체는 죄책감이다. 이미 처음부터 이 영화는 배려 자체가 죄책감을 밑바닥에 깔고 전달되는 폭력임을 드러내지 않고 인물과 관객 모두에게 전달한다. 결과적으로 이영의 입장에서 그리고 수진의 입장에서 관객은 자신의 감정이 기울어지는 인물 쪽으로 이 영화 속 배려의 밑바닥에 담긴 죄책감을 안고 공감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영이 되고, 또 누군가는 수진이 된 채 각각의 인물이 느끼는 퇴색된 배려와 배려의 허울을 쓴 폭력의 짓밟힘을 당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감정과 심리로 끌고 간다. 이영이 느끼는 감정과 불안한 심리, 그 본질은 위선이다. 수진이 느끼는 열등감과 왜곡, 그 본질은 자기 파괴다. 이 두 가지 충돌은 사실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단적 파멸이다.
 
영화 '디바' 스틸. 사진/영화사 올(주)
 
신예 조슬예 감독은 신민아의 얼굴에서 이 정도의 극단성을 끄집어 냈다. 이유영의 얼굴에서 불안한 열등감을 들춰냈다. 두 배우가 만들어 낸 감정의 충돌은 지금까지 국내 상업 영화가 끄집어 냈던 스릴러 장르 속 그것과는 본질 자체가 다르다. 무엇보다 다이빙이란 소재를 통해 배려와 폭력 그리고 죄책감의 경계를 무의식 세계로 끌고가 뒤섞은 연출이 신인 감독 솜씨라고 보기엔 믿기 힘들 정도다.
 
스토리에 집중한 기존 장르 문법을 탈피한 방식이 과감하다. 무엇보다 감정 자체에 집중한 서사 구조가 특이하고 독특하다. 하지만 디바가 진짜 무서운 점은 이 모든 것을 뚜렷한 경계선 없이 뒤섞어 한 번도 보지 못한 불안감을 만들어 낸 점이다. ‘디바는 지금 시대를 지배하는 불안감의 온전한 실체를 들춰냈다. 개봉은 오는 2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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