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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부동산이 싫어서
2020-08-05 06:00:00 2020-08-05 06:00:00
계나는 20대 후반 여성이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졸업했고, 무직 기간 없이 금융회사에 취직해 3년째 일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사귄 기자 준비생 남자친구도 있다. 남자친구의 집은 강남에 있고, 아버지는 대학교수다.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 계나는 얼핏 보면 형편이 나아 보인다. 청년백수 기간을 거치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도 않았고, (나중에 방송기자가 된) 남자친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계나는 한국에서 버티고 살아갈 만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호주'로 떠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이 싫어서". 실상 그녀가 털어놓은 속내는 이렇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계나가 한국을 떠난 데는 '계층이동'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지리 가난한 집안에서 그녀가 발버둥 쳐봤자 지금보다 나아지기 힘들다는 자괴감이다. 중산층인 남자친구와 결혼한다면? 계나는 남자친구 부모님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철저히 무시당한다. 아버지가 경비원, 언니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등의 가정환경을 듣고 눈길은커녕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결혼까지 했을지도 장담 못한다.
 
사실 수많은 계나가 한국에 살고 있다. 계층사다리가 끊겨 힘든 삶을 전전하다 끝내 한국을 떠나고 싶게끔 만든 것이다. 최근 계나들이 떠나고 싶은 이유는 '부동산'이다. 부동산 가격급등과 불로소득 문제는 부익부빈익빈 확대는 물론 서민의 내집 마련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는 청년들의 근로의욕을 꺾고, 박탈감만 키운다. '부동산'이 연봉 벌어주는 나라가 된 것이다. '갭투자 1억으로 몇십억 벌었다'는 이야기가 남의일이 아닌 내 친구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일할 의지는 떨어진다.
 
부동산대책은 쏟아져 나오는데 집값은 오리무중이다. 한국감정원의 주택가격 동향조사를 보면 7월 아파트와 단독·연립주택을 모두 포함한 전국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61%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114(1.14%) 이후 93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그럼에도 상대적 박탈감이 확대되는 데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차이 때문이다. 서울이 0.71% 올랐을 때 광주와 전남은 각각 0.04%, 0.19%에 그쳤다. 서울 도심, 강남, 서울, 수도권 집값 오름세와 지방의 편차가 너무 크다. 게다가 청년층의 경우 직장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만큼 수도권 거주지가 절실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발표한 재건축 규제완화와 신규 택지개발에 의한 공급대책이 어느 정도 집값안정화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서초, 마포, 용산 등 서울 중심에 주택을 132000호 신규공급하고 향후 수도권 지역에 127만호를 공급하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그간 정부는 과열된 집값을 잡기 위해 종부세 강화카드와 임대차2법을 내놨지만 안정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도권 시장에 신규 13만가구 이상의 강력한 공급신호를 준 만큼 집갑이 소폭이라도 안정될 여력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다양한 공급책을 통해 마른수건을 짜듯 뽑아낸 만큼 확실한 시그널이 이어져 주택구입 불안심리가 낮아지길 기대해본다. 집값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지 않게 말이다
 
김하늬 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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