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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단체 조직죄' 적용 지시, 고민 깊은 검찰
전례 없고 입법취지도 달라...법조계도 가능 여부 두고 '갑론을박'
2020-04-01 02:00:00 2020-04-01 02: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이른바 'n번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텔레그램에 디지털성범죄 채널(단체대화방)을 만든 일명 '갓갓'이나 조주빈에 대한 처리도 문제지만 26만명의 유료회원들의 죄까지 일일이 특정해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지난 24일 공개적으로 지시한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이 더 문제다. 이제껏 성범죄 사건에서 처벌 근거로 적용된 예가 알려지지 않은 법규정이다. 
 
형법 114조는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또는 그 구성원으로 활동한 사람은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범죄단체 조직죄를 규정하고 있다.
 
'텔레그램 디지털성범죄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요건을 일일이 이번 사건에 대입해 보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 즉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 등 위반자들에 대해서는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볼 여지는 있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그러나 'n방'이나 '박사방' 운영자와 관리자, 조력자 중 어디까지를 단체를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 음란물을 시청, 소지, 유포한 자들을 하나의 범죄단체 또는 집단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의견이 대랍하고 있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조주빈 같은 운영자가 단체 대화방을 열고 그 무리들이 제작한 아동성착취물을 유포한 경우 그 영상물을 다운로드 받은 사람이나 유포한 사람은 자신들의 행위가 '아청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렇다면 다수인이 일정한 범죄를 수행한다는 공통적인 목적 아래 단체대화방이라는 결합체에서 활동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검찰 출신의 또 다른 형사전문 변호사는 "형법을 피의자의 개별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한번에 묶어서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원칙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조주빈, 또 그와 함께 성착취물을 공동제작한 공범들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유료회원 개개인이 모두 '아청법 위반'이라는 범죄목적의 촉진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료단체대화방에 가입한 사람들의 무리를 단체나 집단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측은 대화방 관리자, 운영 조력자 등은 '갓갓'이나 조주빈이라는 대화방 운영자들로부터 일정금액의 돈을 받고 아동성착취물을 제작 또는 유포하는 등 상당한 정도의 통솔체제가 성립했다는 주장이다. 유료회원들에 대해서는 운영자들의 요구로 20만~150만원씩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대화방 운영자들의 통솔체제에 합류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반면, 신중론은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한다고 해도 수괴격인 운영자와 하부 관리자, 조력자, 유료회원들을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 다른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공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입법취지상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최근 범죄단체 조직죄가 적용된 보이스피싱 범죄 처럼 단체 활동의 계속성 여부도 중요한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수사 T/F 관계자는 "범죄단체 조직죄를 구성하기 위한 요건이 성립하느냐 문제는 우선 '수괴 간부 구성원'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들을 통한 조직체계 활동 여부가 확정돼야 실질적인 법리 검토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범죄단체 조직죄 적용이 여러 쟁점에 휩싸인 만큼 법정에서도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범관계를 치밀하게 적용하면 아청법이나 성폭력처벌법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이와 함께 "형사정책상, 이번 사건은 단순 가담자까지 일괄적으로 무거운 형벌로 처벌하는 것 보다는 관련자 전원을 끝까지 찾아내 한 명도 빠짐 없이 처벌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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