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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극일'은 완제품으로 완성된다
2019-10-23 06:00:00 2019-10-23 06:00:00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을 감행한 지 100일을 넘겼다. 한국 정부와 업계는 일본에 대한 소재부품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소재부품 육성을 위한 예산이 올해 추가경정 예산에 들어간 데 이어 내년 예산안에도 2조원가량 반영됐다. 
 
국민들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국산대체품 생산기업을 돕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다. 이처럼 단합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의 저력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직 품질경쟁에서 일본 기업에 뒤진 분야가 너무나 많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산 자동차는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로 팔려나가는 '효자상품'이다. 그렇지만 일본 자동차와 견줘보면 아직 보잘 것 없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시장에서 일본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현저하게 낮다. 그 격차도 최근 더 벌어지고 있다.  
 
격차는 한국과 일본 상호간의 수출입실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감행하기 이전인 올 상반기에 수입된 일본차는 2만9453대로 작년 동기보다 22.1% 증가했다. 반면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판매된 한국차는 고작 4대에 불과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일본시장 부진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현대차는 2000년 현지 판매법인인 현대모터재팬(HMJ)을 세우고 2001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판매 부진에 허덕이다  2009년 사실상 철수했다. 기아차도 2013년 일본시장에서 물러나왔다. 그 이후 두 회사는 다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품목이 일본에 비해 품질경쟁력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000대 제조업 수출상품 가운데 ‘품질경쟁력 우위’로 분석된 상품은 156개로 일본의 51.8%에 불과하다. 그러니 1965년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지난해까지 6000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낸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일본은 오랜 경제발전 역사를 갖고 있다. ‘제조업왕국’이라는 명성도 상당히 오래 됐다. 소비수준도 높다. 따라서 일본시장에는 아무 제품이나 들고 가서는 안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은 확보돼야 내놓을 수 있다. 그런데 아직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 화장품의 경우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가 최근 흑자를 내고, 그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의 대일본 수출액은 3억260만달러로, 2017년 2억2539만달러보다 34.2%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는 2017년 4301만달러의 흑자에서 2018년 8909만달러로 늘어났다. 다만 한국의 수출은 아직 중저가 중심이라는 한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전자제품의 아직 여의치 않지만, 최근 고무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는 올 2분기 일본시장에서 9.8%의 점유율을 달성했다. 일본의 샤프 와 소니도 제쳤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2014년 5.6%에서 2016년 3.4%로 뚝떨어졌다가 다시 회복됐다. 한국은 5G 시대도 일본보다 훨씬 먼저 열었으니, 앞으로 10%선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국내에서는 일본 제품 대신 국산제품을 더 아끼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덕분에 관련기업의 주가가 상승하는 등 반가운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 틈을 이용해 일부 기업의 대주주가 보유주식을 내다파는 등 ‘작은 이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투자자와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 것이다. 아마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울 것이다. 
 
오늘날처럼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이 높은 개방경제시대에 ‘극일’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국가간 냉혹한 경쟁은 엄존하니 나름대로 의미있는 단어이다. 더욱이 일본이 먼저 공격적인 조치를 취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 진정한 ‘극일’이 필요하다.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몽테뉴는 수상록에 “확고한 목표가 없는 영혼은 방황한다”고 썼다. 몽테뉴의 견지에서 볼 때 한국은 오히려 지금 다행일지도 모른다. 극일이라는 목표가 더욱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일본의 소재부품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는 것이 첫째 목표라면, 완제품에서도 승리하는 것이 둘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재부품으로 시작된 극일 노력은 완제품으로 완성돼야 하는 것이다. 국내시장은 물론 일본 시장에서도 일본 기업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가일층 분발해야 할 때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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