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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772명을 기억해야 될 이유
‘인천상륙작전’ 성공 위해 감행된 ‘장사리상륙작전’의 의미
단 4대의 카메라가 바라본 시선…”전쟁 아닌 학도병 얼굴”
2019-09-20 00:00:00 2019-09-20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전쟁 발발 두 달여가 지난 9월 초 전선은 한반도 끝자락인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다. 사실상 한반도 전역이 북한 인민군 손아귀에 넘어간 것이다.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드라마틱한 반전이 필요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은 인천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계획한다. 하지만 전세는 이미 북한군에게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서 연합군 사령부는 교란작전을 준비한다. 한반도 전역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가장한 여러 상륙작전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상북도 영덕 근방 장사리 해변에서 감행된 장사상륙작전이다. 여기까지가 완벽한 실화이고 한국전쟁에서 실제로 진행된 군사작전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모티브다.
 
 
당시 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총 772명. 하지만 대한민국 정규 군인은 대장 이명준 대위(김명민)와 부대장 박찬년 중위(곽시양), 상사 류태석(김인권) 그리고 몇 명의 병사가 전부다. 나머지 772명은 모두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들이었다. 훈련 기간은 불과 2주 가량. 인천상륙작전 불과 하루 전이다.
 
전투함이 아닌 일반 상선 ‘문산호’에 몸을 실은 이들은 폭풍이 몰아치는 날 장사 해변 인근에 도착한다. 이미 장사 해변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다. 장사 상륙작전을 도와줄 연합군의 공중 폭격도 함포 사격도 불발된다.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낙동강 방어선 유지를 위해 정규 병력 자체를 움직일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교란 작전이지만 ‘죽음의 작전’이기도 했다. 정보과 출신으로 전투 경험이 전무했던 이 대위는 자신이 선발한 772명의 학도병들을 사지로 몰아 넣는 것에 강한 자괴감을 느꼈다. 결국 그들을 위해 자신의 신념과 일종의 죄책감을 위해 장사상륙작전 대장을 자원한다. 실패할 경우 병력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살아 남았을 경우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이 모든 과정은 종군 기자 매기가 간파한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포기하는 병력 취급을 당하는 장사상륙작전 투입 학도병들에 대한 인간적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매기는 연합군 지휘관과 한국군 지휘관을 상대로 장사상륙작전 투입 병력의 귀환을 위한 병력 투입을 요청하지만 당연히 묵살된다. 이제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된 이명준 대위를 포함한 772명의 학도병들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키메이커로서의 역할에 목숨을 걸게 된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드라마틱한 역할이다. 실제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완벽한 반전을 만들어 냈다. 전 세계 전쟁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상륙작전이다. 이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 낸 것은 결과적으로 장사상륙작전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그리고 실제 한국전쟁 역사에서도 연합군과 한국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몇 개의 교란 상륙작전을 진행시켰다.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이 가운데 장사상륙작전을 주목한 것은 바로 가장 성공적이고 또 완벽한 교란 상륙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정규군이 아닌 학도병 출신으로 구성된 772명의 장사상륙 병력은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완벽한 교란은 물론 낙동강 전선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북한군 병력 보급로까지 차단하는 성과를 올린다. 장렬하고 화려하고 또 감동적인 비주얼과 스토리로 끌고 갈 수 있지만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의외로 건조한 시선을 유지한다. 전쟁 영화 특유 히어로와 강력한 악역을 내세운 감정적 몰입도를 배제한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영화의 차별성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주인공은 ‘잊혀진 영웅들’이다. 바로 772명의 학도병, 그리고 그들의 대장이자 리더였던 이명준 대위(실존 인물 이명흠 대위)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이명준 대위는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의외로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주인공은 염연히 772명의 학도병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중심 인물은 있다. 최성필(최민호) 기하륜(김성철). 각자의 사연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사연이 관객들의 가슴을 들끓게 하고 스토리의 동력으로 작동하진 않는다. 인물간의 관계성을 설명할 뿐 스토리의 중심으로 발을 들이밀지는 않는다. 이런 점은 학도병들의 희생 그리고 전쟁의 참사에 얽힌 반전 메시지로 이어진다. 저마다의 이유와 사연을 통해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한 학도병들의 사연은 하나로 뭉쳐 ‘772명의 학도병’이 된다. 그리고 하나된 학도병들은 전쟁 속에서 희생의 이름으로 산화한다. 결과적으로 ‘장사리’ 전투 자체에 담긴 학도병들의 숭고함이 주인공으로 자리할 뿐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는 초반 장사리 상륙작전에서 벌어질 뿐이다. 상륙 전투와 참호전투에서 이어지는 액션은 그 자체로 스토리다. 해변가 모래사장을 내달리는 학도병들의 숨소리와 총탄의 파열음,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고 죽고 죽이는 참호전의 참상, 인민군 군복 안에 입고 있는 교복,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생사의 상황 속에서 ‘엄마’를 외치며 숨을 거두는 피눈물 고인 눈동자. 전투가 끝난 뒤 장사리 해변가 파도에 넘실대는 주인 잃은 수 많은 학생모가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그 자체로 ‘장사리상륙작전’의 참담함과 현실 그리고 역할을 말해준다. 주인 없는 그 모자들은 ‘잊혀진 영웅들’의 마음이고 존재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이 모든 것을 제작진은 건조한 카메라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전쟁 장르 특유의 현란함과 화려함을 버린다. 앞서 언급한 건조한 시선은 어쩌면 연출을 맡은 감독 의도이고 시선이다. 단 4대의 카메라로 초반 상륙 전투를 담아냈다. 전투 자체 현실감이 아닌 생사의 현장 속에서도 이름 모를 772명의 학도병 그들의 얼굴을 담았다. 스크린을 가득 메운 그들의 얼굴에 드리운 공포와 두려움은 곧 전쟁의 얼굴이다. 이 영화는 그래서 우리가 폄훼할 수 있는 국뽕도 아니고, 장렬함도 아니고 숭고함도 아니다. 완벽한 반전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부제 ‘잊혀진 영웅들’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영웅은 전쟁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스스로가 자신의 책임질 때 영웅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772명의 학도병들은 모두가 한국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던졌고, 오롯이 모든 것을 책임졌다. 이제 그들은 잊혀진 영웅들이 아니라 기억될 영웅들이다. 개봉은 오는 25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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