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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양향자 "한일 경제전, 기술 경쟁력 한단계 도약 계기될 것"
"정치권·기업 신뢰 회복 중요…기술패권 경쟁서 활약하는 대기업 역할 인정해야"
"기술 인재 육성 필요성도…기술현장 잘 아는 정치인 키우자"
2019-08-23 06:00:00 2019-08-23 06:00:00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고졸 출신으로 삼성의 최초 여성 상무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삼성전자에서 30여년간 일하며 플래시메모리 설계·감수팀을 이끌었던 반도체 전문가로도 꼽힌다. 2016년 당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정계에 입문한 뒤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지난달 30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직을 사임하고 당에 합류했다. 한일 경제전쟁 국면을 기술패권 경쟁으로 바라본 양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오히려 기회로 봤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도 함께 내놨다.
 
지난달 1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을 한국 수출 규제 대상으로 지정한 이후 고조돼 온 한일 갈등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계기로 이제는 무역전쟁으로 돌입한 양상이다. 그 누구도 파장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하는 가운데 양향자 부위원장은 "미래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기술을 놓고 기술패권의 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이유도 향후 벌어질 미래 산업 기술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양 부위원장은 "일본에서 수출 규제를 조치한 3가지 전략물자가 결국 우리가 미래로 나가고자 하는 산업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용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일본이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 산업 영역에서 입지를 완전 잃어버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위기의식이 대두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전세계에서 시장 점유율과 기술 경쟁력 등에 있어서 차지하는 범위가 워낙 넓고 깊은 데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은 80년대 중반부터 전자산업이 사양 길을 걷게 됐다"며 "(일본 전자산업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주용 기자
 
"일본 규제, 미래산업 위기의식 반영"
 
양 부위원장은 "일본은 결국 대한민국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소니와 닌텐도 등 게임산업과 토요타를 위시한 자동차 산업에도 모두 반도체가 들어간다. 일본으로선 최고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가진 반도체를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가 이처럼 자국 산업의 어려움이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수출 규제를 한 데에는 그만큼 위기감이 훨씬 컸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반도체 비전 선포' 발언을 통해 정부의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육성 계획을 밝힌 것도 일본에게 상당한 자극이 됐다는 주장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인 삼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한국을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양 부위원장은 "향후 미래 산업의 강국으로 가겠다는 대한민국의 비전을 봤을 때 일본이 얼마나 위축이 됐겠느냐"며 "일본 수출 규제 배경에 이런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한 가장 큰 문제로는 "향후 발생할 피해가 어느 정도가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언제, 어느 때 얼마만큼 올지 모르는 게 가장 큰 피해"라면서 "이런 과정 속에서 고객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기술을 최대한 빠르게 내재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향자 부위원장이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한 일본 언론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기술인재 육성 위한 법제도 필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양 부위원장은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전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며 "예산과 법률 집행, 기술을 갖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기술 인재가 없다"며 "일본은 공과대가 1877년에 세워졌고 우리는 1950년도 이후에 기술 인재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됐다. 대략 80년 정도의 격차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에 대한 법제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필요하다"면서 "정부와 정치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기술인 출신 정치인', 즉 테크폴리티션(TechPolitician)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전했다. 기술을 아는 정치인이 지금 같은 위기 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양 부위원장은 "정치인 구성이 사실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며 "교수 출신 정치인도 국정에 어느 정도 이바지할 수 있겠지만 산업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인들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기술패권 경쟁 과정에서 결국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정치를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삼성, 위기상황 이겨낼 것으로 기대"
 
기술패권 경쟁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기업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 부위원장은 "기업의 속성도 알아야 되고 기술도 알아야 하는데 정치권은 기술시장이 얼마나 치열하고 엄중한지 너무도 모른다"며 "서로 '윈윈'하는 모델이 돼야 하는데 기업에서는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기업들이 서로 성과가 나도록 해야 하는데 뭐라도 하나 하면 대기업은 가해자인 논리로 가니까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면서 "기술패권 경쟁에서 활약하는 대기업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했다.
 
이번 일본 수출 규제가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봤다. 그는 "지금 보다 어려워지겠지만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해지고 또 집중력도 강해질 것"이라며 "삼성은 결국 (현재 위기상황을) 잘 해쳐나갈 것이라고 본다. 삼성의 반도체 정신이라면 소재 개발 부분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전체를 퀀텀 점프(단기간 내 발전) 할 수 있는 기회"라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당시 양향자 부위원장이 국가인재원 진천캠퍼스에서 열린 '국가인재원 개원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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