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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품격
2019-02-22 06:00:00 2019-02-22 06:00:00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위상을 비춰볼 때, 전직 대통령이 둘이나 구치소에 갇혀 있는 현실은 참담하다. 시민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 거리에서 촛불 시위를 했다고 국군 사이버사령부 내 여론조작 담당 팀을 꾸렸다는 당시 군 간부들 혐의를 듣는 심정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촛불로 정권을 바꿨지만 인정하지 않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기가 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중 질환보석 신청 사유는 화룡점정이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달 29일 보석신청에 이어 지난 19일 추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여러 사유를 들었지만, 핵심은 피고인의 건강상태는 보석을 허가할만한 정도가 아니다는 취지의 검사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그리고 아울러 제시한 9가지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 △역류성식도염과 표재성위염 및 대장폴립 △제2형 당뇨병 △수면장애와 수면무호흡 △빈뇨와 야간다뇨 △췌장낭성종양 △탈모와 피부질환 △건조성습진과 지루피부염 및 지루각화증 △당뇨망막병증과 황반변성 등이다. 이로 인한 돌연사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한마디로 구차하다. 불구속 재판 원칙 등 법리적 이유와 이미 증거들이 상당부분 채집돼 추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과 얼굴이 알려져 도주 우려도 없다는 점 등을 조목조목 제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신청사유는 차라리 고고해 보인다. 현대건설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올라간 샐러리맨 신화를 발판으로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지낸 'MB의 마지막 품격'은 어디로 갔는가. 구속기간이 최대 갱신 횟수인 세 번이나 연장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비교된다.
 
여론만 악화할 뿐이다. 댓글조작의 대상이던 포털 사이트에 이명박 보석을 검색해 관련 기사들에 달린 조작되지 않은댓글들을 한번 읽어보시라. 마지막 남은 전직 대통령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그를 뽑고 지지했던 절반 국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MB의 뜻도 그렇다. 한국당 친이계 이재오 상임고문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전 대통령은 내가 죽어도 감옥에서 죽어나가지 보석으로 나가겠느냐며 말리고 못하게 했는데, 우리가 건강을 우려해 억지로 보석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보석 여부는 이르면 오는 27일 새 재판부의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에 결정 날 전망이다. 인용돼도 문제지만, 기각되면 말 그대로 체면 구긴다. 재판이 장기화할수록, 정부의 경제정책 실책이 두드러질수록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비판과 관심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모습은, 개인의 안위보다 절반 국민의 기대와 믿음을 지켜주지 못한 반성과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길 바란다.    
 
최서윤 사회부 기자(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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