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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잃은 정책금융)②전 정부 관치 트라우마에 선제적 구조조정 기능까지 마비
정치권·여론 눈치에 혈세지원 되풀이…"장기적으론 민간자본으로 기능 옮겨야"
2018-12-14 08:00:00 2018-12-14 08: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 논리와 산업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취약산업 내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내놓은 답변이다. 기업 구조조정에서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거나 산업 전반이 구조적 부진에 직면한 경우는 금융논리보다 산업논리를 좀더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정부때 한진해운 구조조정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금융위원회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논리를 우선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낸 결과 해운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혼란이 초래됐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때만 하더라도 금융위원회는 두달에 한번 꼴로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쏟아냈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강조한 구조조정 원칙 또한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이다. 부실기업의 노사가 자구노력안을 내놓지 않으면 신규 자금지원은 없다는 얘기다. 당시에도 구조조정 시기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 상황이라, 금융위는 대우조선·한진해운·현대상선 등 굵직한 기업구조조정 추진에 총대를 멨다.
 
그러나 서별관회의 사태로 관치금융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됐고,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자취를 감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나치게 금융 측면만 다뤄졌다는 비판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당시엔 대형사의 경우 국책은행 채권이 많아 정부가 주도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 등 개별기업은 정부가 앞장 서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최근 자동차 업체 현장방문 행사에서 "한계기업을 구조조정하는데 결국 자금지원 면에서 금융위의 핵심 역할이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말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 자동차 부품업체 등 제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지시한 바 있다.
 
자동차 완성차 업체나 조선사 하나가 협력사 직원까지 포함해 수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금융논리만으로 구조조정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지역경제와 일자리 등 여러 사정을 다 고려하다보니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금융지원 일색의 대책이 쏟아지면서 결국 좀비기업을 살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위는 자동차·조선산업의 경영악화를 막기 위해 국책은행을 통해 금융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경영평가때 자동차 조선사에 대한 자금공급 실적을 평가항목에 넣기로 했다.
 
국책은행이 집행하는 정책자금은 결국 국민세금이다. 산업적인 측면을 고려해 지역경제에 초점을 둔다 하더라도 혈세를 투입하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은행의 여신건전성은 매년 악화되고 있다. 지난 6월말 국책은행의 고정이하여신(부실대출) 비율은 산업은행 3.28%, 수출입은행 3.19%, 기업은행 1.36% 등으로 국내은행의 평균(0.49%)보다 3배 가량 높다.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각각 0.10%, 0.27%포인트씩 올라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중소 자동차와 조선사 부품업체에 대한 대출 회수 및 축소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올 들어 이들 업종을 위험관리업종으로 지정, 대출한도를 줄여왔는데 다시 늘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지금 당장은 일부 은행이 정책금융기관이 발행한 1조원 규모의 보증을 기반으로 저금리 대출을 내놓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정책자금이 투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정치권, 노조 등의 입김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자금이 계속해서 투입되면 이해관계자 고통 분담 원칙이 훼손된다"며 "정치권, 노조 등 이해당사자에 구조조정에 저항할 명분만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서는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을 위한 외부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정부 부처는 올초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정책금융기관간의 업무 중복을 줄이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자금지원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편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을 비롯해 5개 부처 8개 기관이 거론된다. 정책자금 공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조정 기능을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혁신안 이행 차원에서 구조조정 조직을 축소한 바 있다.
 
그러나 국책은행이 아직까지 조선사와 자동차 등 대형사의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는 구조조정 기능 조정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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