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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잃은 정책금융)③역할 중복된 정책금융기관…소관부처 밥그릇 욕심 탓
산은·수은·기은·무보·기보 등 역할 중복 지적…"소관부처 몸집 부풀리기"
2018-12-14 08:00:00 2018-12-14 08:00:00
[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정책금융기관의 고질적인 문제는 구조조정 기능 외에도 정책자금 공급역할이 중복된다는 점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은 각자 고유업무를 가지면서도 정부의 기조에 맞춰 새로운 역할을 넓히는 중이다. MB정부는 자원개발 투자에, 이번 문재인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에 혈세를 쏟고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금융당국이 포용적 금융을 외치면서 정책금융기관의 업무분담은 더욱 복잡해지는 형국이다. 정부의 기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정책금융기관들이 모두 '포용적 금융'을 외치며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지원 부문에서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의 역할이 중복되고 있다. 우선 산은과 기은의 역할이 중복된다. 그간 대기업 여신을 지원했던 산은은 새정부가 들어서자 중소기업 지원으로 급선회했다. 최근 산은은 혁신성장이라는 기조 아래 벤처 및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강구 중이다. 
 
특히 산은은 중소기업을 지원했던 기업은행과 역할 중복이 우려된다. 학계에서도 산은-기은의 업무중복이 개선해야 될 부문이라고 평가한다. 익명을 요구한 KDI 한 연구원은 "산업은행이 과거 대기업 여신이 많다는 비판을 받아 중소기업 지원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그런데 산은과 기은의 역할이 겹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역할을 더 세분화시켜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 산은과 수은은 온렌딩 지원 측면에서 역할이 중복되고 있다. 온렌딩 대출이란 국책은행이 민간은행에 중소기업 대출자금을 빌려주면 민간은행이 자체적인 여신심사를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간접대출 제도다. 실제로 수은은 지난 8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1조1000억원 규모의 해외온렌딩을 진행했다. 산업은행도 베트남에 진출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온렌딩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수은과 무역보험공사는 보증과 보험으로 업무가 분담되긴 했지만, 손실이 생길 경우 정부가 책임진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업무로 평가된다. 공공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두 기관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및 대기업을 위해 정부가 대신 자금을 대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두 기관은 2008년 본격적으로 법 개정을 통해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나눴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보증·보험 지원이라는 점에서 역할이 중복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감사원은 "신보와 기보의 중복 보증이 심각해 한정된 보증재원이 소수 업체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은 효율적인 보증재원 사용을 위해 두 기관을 통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역할에도 여러 정책금융기관이 발을 걸치고 있다. 산은-수은은 이미 우리나라 주력기업의 주채권은행이거나 모회사다. 산업은행은 한국GM, 대우조선, 현대상선의 상당수 지분을 갖고 있다. 수출입은행도 대우조선·성동조선·대선조선의 주채권은행이다. 주력산업이 기울어질 때 채무기업의 구조조정 총대를 멘 곳도 두기관이다.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의 업무 중복은 각 부처들이 업무를 확장하려는 무리한 '밥그릇 챙기기'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의 역할 확대도 결국 소관부처의 몸집 키우기에 직결된다. 어느 부처가 이를 거부하겠냐"고 되물었다. 실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같은 기관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업무가 중복돼 있지만, 소관 부처는 각각 다르다. 산업은행은 금융위원회, 수출입은행은 기획재정부 산하다.
 
소관부처가 다른 상태에서 역할이 중복되면 과한 경쟁이 발생해 오히려 비효율적인 정책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정책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MB정권 때는 어느 기관이랄 것 없이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며 "이번 정부에는 기관이 모두 남북협력·중소기업에 지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간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사업에는 모든 공공기관들이 일괄 투입된다"며 "결과적으로 어땠는가. 국책은행들이 자원개발 투자에 대거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본점. 사진/ 뉴시스
 
최홍 기자 g24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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