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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사회적 가치, 시민사회가 이끌고 정부가 지원해야”
국무총리실 산하 시민사회비서관실, 사회책임 활성화 위한 전문가 간담회 열어
“통합이 핵심…명확한 평가기준과 실질적 소통창구 마련해야”
2018-12-10 08:00:10 2018-12-10 08:00:10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대상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기업이 인재를 선발할 때 혁신을 추구한다면 도전정신과 창의성에 가점을 부여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충실한 기본기를 먼저 살핀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국정 기조나 정책의 방향성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진 경제적 효율성이 평가 기준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국가 차원에서 경제성장률이나 무역수지가 대표적이다. 같은 비용을 투입해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느냐가 국가의 성장을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을 한 것이다. 기업을 평가할 땐 이견의 여지없이 수익률이 기준이 된다.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교통, 전기, 수자원 등의 공공재를 담당하는 공공부문의 체질 개선 논의가 이뤄지는 주요한 이유도 만성적인 적자에 기인한다.
 
새로운 기준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만으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충분히 담길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문재인 정부의 출범 기조만 해도 적폐청산이다. 공정함과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연일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갑질 논란이나 채용비리, 혐오 논쟁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아무리 경제적 성과가 좋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이들에 대한 시선은 냉담하다. 양적 평가와 별도로 질적 평가, 즉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요구되고 있는 셈이다.
 
공공부문에 먼저 도입된 사회적 가치
 
정부는 이에 발맞춰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기준들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작년 10월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사회적가치기본법)이 발의됐다. 공공기관의 정책수행과정에서 노동, 환경, 복지, 윤리적 생산 등에 관한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법률이다. 사회적가치기본법은 공공기관의 조달, 개발, 위탁, 민간지원 사업에 있어 사회적 가치의 반영을 의무화하고 정부 및 공공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기업 중 처음으로 금융기관을 평가할 때 해당 금융기관의 사회적 가치 기여도를 반영하기로 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지금까진 매년 상·하반기마다 금융기관의 신용도, 유동성 등의 주요 경영지표 중심으로 평가해 운용 대상기관을 선정했다. 새로운 평가방법은 기존 방식에 더해 은행연합회의 ‘사회공헌 활동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가치 기여도에 따라 추가 예치 한도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지방정부도 변화하는 기준에 발맞춰 다양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는 기초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화폐 단위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경기도 시흥시는 사회적 가치를 지닌 서비스가 누구에게, 얼마만큼, 어떻게 전달되는지 추적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매핑(mapping)을 기획하기도 했다.
 
사회가치 확산 위해 사회책임 전문가 간담회 열려
 
그러나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만큼 한계도 명확하다. 민간부문이 예상만큼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경우 보여주기식 행정 처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모처럼 주어진 패러다임 변혁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사회적 가치를 의미 있는 지표로 정착시키기 위한 공공부문의 시도들이 민간부문에도 정착할 수 있도록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 및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를 확보하는 일도 숙제로 남아있다. 공공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사회적 가치라는 범주로 묶어내긴 했지만 정의가 명확치 않다. 일선에선 여전히 기업의 이윤추구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오랜 시간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가치의 확산을 주도해온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지난 4일 광화문 서울청사 인근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시민사회비서관실은 사회책임부문 시민사회 전문가들을 초청해 ‘사회가치와 사회책임 활성화를 위한 관련 단체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시민단체의 역할을 논의하고 공공기관 사회가치 이후를 제언하는 자리였다. 시민사회비서관실 주최로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지속가능경영재단, 한국CSR연구소 등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소속 12개 단체의 전문가 15명이 참여했다.
 
시민사회비서관실은 시민사회와 정부를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시민사회발전위원회’의 운영을 담당하기도 한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는 민간 소통 강화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총리 자문위원회로 민간위원 22명과 정부위원 6명으로 구성돼 있다. 민간위원은 소비자, 여성, 환경 등 다양한 영역의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 외에도 시민사회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진행, 정부 부처 간 협업 플랫폼 구축 등에 힘쓰고 있다.
 
시민사회비서관실 주최로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에서 사회가치와 사회책임 활성화를 위한 관련 단체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KSRN
 
사회적 가치 측정기준 통합이 우선돼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통합’을 강조했다. 크게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통합적인 방법론 ▲관련 정보를 수합하고 유통할 수 있는 콘트롤타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사회적 책임(CSR)은 비교적 충분히 의제화가 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들이 확고히 있으나, 사회적 가치의 측정 지표는 정확하지 않다”면서 “결국 사회적 가치의 평가 방법론을 정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내부 실정에 맞는 사회적 가치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도입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뒤따랐다. 이동형 더나은미래 이사는 “시민사회가 사용하는 사회적 가치의 의미와 기획재정부가 판단하는 것에 간극이 있다”며 “시민사회에선 사회적 가치를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혹은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기재부에서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할 때 사회적 가치에 반영되는 항목의 상당부분은 ‘일자리 창출’이다”고 지적했다. 평가 지표가 이렇다보니 공공기관 입장에선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인권, 안전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폭넓게 반영하기 위해선 평가 지표가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 제고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적폐청산, 반부패 개혁의 일환으로써 시민공익위원회를 설치해 공익법인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CSR이나 사회적 가치가 ‘녹색성장’이나 ‘경제민주화’와 같이 특정 정권의 정치적 용어로 한정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권이 교체되면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합의나 정책이 백지상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에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책임연구원은 “현장에서 일선 공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사회적 가치 역시 정권이 바뀌고 나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고 전달하면서 “사회적 가치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전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일선 기업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실현 가능성이 높은 지속가능한 가이드라인과 실질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조적으로 기업이 할 수 없는 가치들을 강제하다보면 현장의 거부반응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처별로 다른 정책…일원화한 소통창구 필요
 
간담회에선 범부처를 아우르는 콘트롤타워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시됐다. 현재는 기재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한 각각의 정책을 산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평가를 받는 주체나 수혜를 받는 주체 모두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와 소통할 연속성 있는 창구가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해외엔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여러 기준과 이에 대한 합리적 판단 근거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며 “국무총리실에서 이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합해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의 접근성을 높여 이해관계자 스스로 사회적 가치 창출 방안을 고민하고 자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처를 통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기관이 많이 없는 만큼, 시민사회비서관실을 넘어 국무총리실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은 “총리실이 투트랙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첫째는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의제를 파악하고 범부처 합동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콘트롤타워 기능을 해야 하고, 둘째는 사회책임 관련 NGO와 함께 소통해나가면서 상호작용하는 소통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시민사회를 고민할 때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창출하는 일을 넘어 지속가능한 시민사회의 토양을 만들기 위한 고민들도 엿보였다. 아름다운 커피의 이혜란 홍보팀장은 국정과제인 민주시민교육을 넘어 세계시민교육으로 시야를 확장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나 국가 정체성 단위로 묶일 수 없는 의제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이에 덧붙여 초·중등 교육과정 내에 세계시민교육을 반영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교육부·교육청· 지자체 등이 나서 이해관계자들을 조정하고, 학교교육과 시민사회교육이 연계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정부와 시민단체의 양자적 상호작용만으론 사회적 책임 정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 전반의 동참이 요구되는 이유다. 황선희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은 은퇴를 경험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경제 일선에선 벗어났지만 생계 유지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구성하려는 욕구가 있는 중년세대에게 NGO가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애주기 내에서 시민사회와의 접점을 늘려가는 방법을 여러 측면에서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간담회를 진행한 문은숙 시민사회비서관은 “사회적 가치는 범사회적인 시민사회가 이끄는 의제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논의가 축소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비서관은 “정부는 각 부처를 조정하는 등의 정치적 역할을 수행할 뿐, 제도의 방향성이나 정책 범위 등을 결정함에 있어 시민사회가 워치독(감시견) 역할을 하며 주도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송은하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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