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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국회라고 성역은 아니다
2018-09-20 06:00:00 2018-09-22 13:34:08
2018년 가을,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회담 둘째 날인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쟁 없는 한반도'를 선언하면서 역사적인 결과물들을 쏟아냈다. 광복 이후 역대 어느 정권도, 전 세계 어떤 평화특사도 이뤄내지 못한 성과로, 매우 환영받을 만하다. 벌써 종식된 냉전시대의 유물들이 아직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그것도 남과 북 스스로 일궈낸 민족적 합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같은 시간, 대한민국에서는 헌법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었다. 또 다시 맞은 ‘헌법재판소의 공백’ 이야기다. 이번에는 5기 헌법재판부 5명이 한꺼번에 퇴임하면서 재판관 4명만이 남게 됐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헌법상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정족수는 9명이다. 현재의 '4인 체제'로는 평의조차 열 수 없다. 사실상 헌법재판소 기능지 정지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감격 때문인지, 추석을 바로 앞둔 설레임 때문인지 이제는 민심도 이 중차대한 상황에 주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장은 물론 헌법재판관이 바뀔 때마다 공백이 생겨, 이제는 ‘O인 체제’로 불리는 변칙적 운영이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대법원도 다르지 않다. ‘O인 체제’라는 말 역시 헌법이나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날 퇴임한 김창종 재판관은 자신의 임기 동안 처리한 재판부에서 처리한 사건을 정리해 보니 총 접수건수가 무려 1만3009건, 이 가운데 전원재판부에서 종결 처리한 것이 3215건이라고 밝혔다. 또 본인이 주심으로 처리한 사건이 1671건, 그 중 380건을 전원재판부에서 종결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산술해보면 헌법재판관 1명이 매년 주심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수는 약 240건, 매월 20여건 씩을 처리해야 한다. 물론 헌법상 정족수 9인 완편에서다. 
 
김 재판관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을 통한 기본권 보장을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점잖게 에둘러 말했지만, 국회가 헌법상 헌법기관의 구성 의무를 방기하면서 발생하는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에 대한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발생한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재판부의 공백사태는 각 후보자의 결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국회의 '헌법상 의무 이행의 부작위'에 의해 발생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4일 전체회의에서 이석태·이은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했어야 했지만 회의조차 열리지 않았다. 여야간 정쟁 때문이다. 20일에는 이 두 후보에 더해 유남석 헌재소장 후보자와 김기영·이종석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서까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가부가 불투명하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사법농단’ 사태가 발발하자 국회는 침을 튀겨가며 사법부를 향한 비난과 저주를 퍼붓는다. 특히 법사위는 “이번에야말로 뻣뻣한 사법부의 버릇을 제대로 손 봐주겠다”며 국정감사를 벼르고 있다.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은 차이가 없다. 국가통수권과 사법권을 헌법이 정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본질이다. 국민은 이를 적폐라 부른다. 같은 논리로, 국가구조는 물론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헌법기관 구성을 방기하는 것은 적폐 중의 적폐다. 즉 국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적폐였던 것이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감사한다는 말인가. 국회는 20일 헌재 기능의 중단 사태부터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국회라고 해서, 여야라고 성역은 아니다.  
 
최기철 사회부장(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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