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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산업, 수출이 미래다)①세계로 눈 돌리는 한국 제약·바이오 "R&D가 답이다"
수출 유리한 신약개발 필요성 대두…정부 전략적 지원 요구 목소리도
2018-08-16 06:00:00 2018-08-16 06:00:00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수출 전략 고도화에 대한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100년이 넘는 산업사를 지닌 데 비해 국내 제약사의 세계시장 입지는 여전히 약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문제의식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시장을 향해 본격적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자동차와 반도체 등이 일찍부터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결과 2000년대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특히 자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발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웃국가 중국을 참고 삼아 국내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제약사 신약개발 투자 현황과 더불어 정책적으로 보완할 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세계무대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 기술 열세로 내수시장에 집중해 왔지만, 기술 향상과 협소한 국내 시장의 한계 절감이 맞물리며 저마다 해외시장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21억1700만달러(약 2조3900억원)이었던 국산 의약품 수출액은 지난해 39억9000만달러(약 4조3000억원)으로 4년 만에 2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액이 47억800만달러(약 5조3200억원)에서 55억4700만달러(약 6조2700억원)로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의약품 교역액 증가 속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질적 성장도 동시에 이뤄낸 셈이다.
 
특히 2013년 이후에만 10개 품목이 미국 및 유럽에서 허가를 획득하며 의약품 수출 확대를 위한 발판을 다지는 데 성공했다. 올해의 경우 역대 최다인 총 7개 품목의 미국 허가가 기대되는 해이기도 하다. 사상 첫 미국 진출 국산 의약품인 LG화학의 항생제 '팩티브' 이후 2003~2017년까지 미국 진출 국산 의약품이 8개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현 시점의 국산 의약품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산 의약품 경쟁력이 높아진 배경에는 과감한 R&D 투자가 주효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조차 연간 매출의 3% 수준만을 R&D에 투자하는 전 산업계 분위기 속에서도 주요 제약 바이오 기업들은 매출액의 두자릿수대 비중에 차지하는 비용을 기술개발에 쏟아부었다. 지난해만 놓고봐도 상위 5개 제약·바이오기업(유한양행, GC녹십자, 대웅제약, 셀트리온, 한미약품) 가운데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한 자릿수대에 머문 곳은 유한양행 단 1곳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기술투자 비중을 보인 셀트리온의 경우 지난해 매출의 32.3%에 해당하는 금액을 R&D 투자에 쏟아부었다. 전통 제약사인 한미약품(18.6%)과 대웅제약(13.2%), 종근당(11.2%), GC녹십자(10.6%) 등이 같은 기간 국내 500대 기업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 상위 10개사에 이름을 올린 점도 제약·바이오업계의 기술 투자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셀트리온의 최근 성장세는 업계에 또 다른 자극제로 작용 중이다. 지난 2010년 1809억원에 불과했던 셀트리온의 매출액은 지난해 9490억원으로 껑충 뛰며 단숨에 제약·바이오업계 TOP5에 진입했다. 2013~2017년 연 평균 성장률이 43%에 달한다. 다른 상위권 제약사인 유한양행과 GC녹십자, 대웅제약, 한미약품 등이 6~12% 성장률에 그친 데 비해 눈에 띄는 수치다.
 
셀트리온은 세계무대에서의 존재감 역시 다른 제약사들에 비해 앞서 있다. 전통 제약사들의 경쟁력이 아직 글로벌 제약사들의 뒤를 쫓는 수준이라면, 주력 사업인 바이오시밀러의 글로벌 시장을 선도 중이다. 주력 제품인 램시마의 경우 지난해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점유율을 앞질렀고, 상대적으로 고전하던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주도하는 국산 바이오시밀러 수출액은 지난해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하며 지난해 3%에 불과했던 전체 수출 의약품 중 바이오시밀러 비중을 38%로 끌어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혁신 신약 개발이 해외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 특성상 R&D 투자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지만 기업 입장에서 성과달성에 기약이 없는 무조건적인 투자는 부담스러운 요소"라며 "하지만 과거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수 수출을 비롯해 최근 셀트리온의 고무적 성장세 등 R&D 투자에 유독 무게를 실어온 기업들이 업계 투자 기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한국 제약산업이 이같은 환골탈태에 나서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 2000년 7월 시행된 의약분업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덜 요구되는 일반의약품 성장세가 대폭 둔화됐고, 이는 제약사로 하여금 경쟁력 있는 신약개발을 위한 전문의약품 연구개발 투자와 생산관리 등 전략 변화를 꾀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약개발에 집중하는 산업구조 변화는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과거에는 기술 장벽에 부딪혀 내수시장 위주 전략이 불가피했다면, 지속적 연구개발 투자로 2010년대 들어 기술력에 자신감이 붙었고, 이는 해외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 같은 전략변화는 지난 2014년 국산 의약품의 품질과 생산관리 능력에 대한 국제적 보증서라고 할 수 있는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가입으로 실사 면제 등 수출여건이 대폭 개선되며 탄력을 받았다.
 
이 같은 기업들의 노력과 별개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규제 시각에서 벗어나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국가별 허가 및 판매 기준이 판이한 산업 특성상 외교를 비롯한 국가 차원의 지원은 해외 시장 개척에 큰 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 수 아래라고 평가되던 중국이 최근 대대적 육성 지원책을 앞세워 맹추격에 나서며 위기감마저 조성되는 분위기다.
 
해외 시장에서 미래를 찾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답을 찾고있다. 셀트리온 연구원들이 연구를 진행 중인 모습. 사진/셀트리온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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