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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 미주·유럽노선 차질에…뒷전 밀린 '승객 안전'
조종사협회 "승무시간 1시간 단축 좌초시 논의 '보이콧'"
양대항공사, 단축시 조종사 150여명 필요·노선감축 불가피
2018-03-20 06:00:00 2018-03-20 06:00:00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국토교통부가 최대 비행시간(승무시간)을 12시간으로 1시간 단축하면 미국과 유럽 노선이 즉각 영향을 받는다. 대한항공의 최소 7개 노선, 아시아나항공의 5개 노선이 조종사 1명을 추가로 탑승해 운항해야 한다. 항공사는 추가 인력을 투입해 비용이 늘어난다. 반면 조종사는 피로도를 줄여 안전운항에 필요한 최소한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행시간 단축안은 항공업계의 반발로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다. 
 
본지가 입수한 공동의견서에는 승무시간 단축에 대한 항공사의 반발 이유가 담겼다. 사진/뉴스토마토
 
19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항공사 노선분석 비교표'와 국적항공사 공동대표단이 작성한 공동의견서를 보면 국토부가 추진하는 승무시간 단축과 관련한 국적항공사의 입장을 알 수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부터 조종사의 피로를 줄이기 위한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최소 휴식시간(현행 8시간)을 10시간으로 늘리고, 시차 미적응 지역(시차 4시간) 운항시 비행 근무시간을 30분 단축할 계획이다.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인데, 현재 최종회의만 남겨둔 상태다. 
 
그런데 승무시간을 1시간 줄이는 방안은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승무시간 단축은 조종사 피로 관련 대책 중 핵심으로 꼽힌다는 게 조종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토부는 대신 장거리 노선에 조종사 1명을 추가해 2인1조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실 가능성이 낮다. 조종사 추가 투입에 따른 조종사 인력 부담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노선분석 비교표에 따르면 승무시간 단축에 영향을 받는 구간은 미주와 유럽노선이다. 대한항공의 유럽 6개 노선 프랑크푸르트(비행시간 11시간55분), 파리(12시간30분), 런던(12시간30분) 등과 미주 노선 2개 시애틀(11시간50분), 뱅쿠버(11시간30분·귀국편)가 대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유럽의 이스탄불(12시간5분)과 파리(12시간30분), 미주 시애틀(12시간10분·귀국편), 대양주 호놀룰루(11시간20분·귀국편) 등이다. 
 
양사는 현재 이 구간을 조종사 3명이 운항한다. 국토부가 승무시간을 1시간 단축할 경우 조종사 1명이 추가로 탑승해야 하는 구간이다. LCC는 미주·유럽 노선을 운항하지 않아 관련이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승무시간 단축 시 대한항공은 94명, 아시아나항공은 50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최대 일 63편이 줄어, 1만4400명의 탑승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공동대표단은 설명했다. 
 
반면 조종사협회, 노조 등은 승무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거리 노선에 조종사 4명이 탑승하면, 2인1조로 이·착륙 구간을 각각 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3시간 걸리는 노선은 조종사 3명은 8시간40분씩 비행하는데, 4명은 8시간씩 비행한다. 비행 중 휴식시간도 늘어난다. 비행시간을 반으로 나눠, 비행 중 몰입도도 높아진다는 게 조종사의 공통된 설명이다. 
 
현재는 기상악화 등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UOC)이 발생할 경우 비행시간이 2시간 연장된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장거리 노선은 4명(2인1조)의 조종사가 필요하다는 게 조종사들의 설명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조종사는 "3명 탑승 시 피로도가 높아 25%의 비행수당을 추가로 주는 실정"이라며 "조종사들은 차라리 3명보다 4명이 장거리를 가는 걸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피로한 상태로 운항할 경우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본지가 입수해 보도한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FRMS) 구축 연구용역(국토부)' 보고서에 따르면 조종사 2명 중 1명(52.8%) 꼴로 수면무호흡증을 앓고 있다. LA 등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조종사의 수면시간이 짧고, 반응속도가 늦었다. 20시간 이상 각성상태에 있을 때, 항공기 조작에 손상이 나타난다는 해외 연구도 보고서에 담겼다. 
 
항공기 사고는 기상, 항공기 상태, 예측 불가능한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할 때 발생 가능성이 높은데,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 조종사가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 사고를 막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조종사협회, 노조 등은 승무시간을 단계적으로라도 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등 주요국의 경우 비행 출발시각, 시차, 휴게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비행시간을 운영한다. 반면 국내는 이 같은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조종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지 체류시간이 짧아지더라도 조종사 4명을 보내는 게 피로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라며 "승무시간 단축안이 빠진다면 피로 개선 논의를 보이콧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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