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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권력의 제약과 자제

2020-08-14 06:00

조회수 : 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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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자제를 모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 중 최고 권력인 주권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주권은 대외적 측면과 대내적 측면이 있다. 대외적 측면은 국제사회에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내적 측면은 국가 내에서 법률적 권한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주권은 헌법과 법률을 만들어 국가를 통치한다. 자연법칙, 경제법칙에 벗어나지 않는 한 주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정치인은 대통령이 되려고 하고 정당은 여당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주권은 제약받는다. 권한행사는 항상 제약 조건 속에서 행사된다. 당장 국경 밖으로 나가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다른 나라가 마음에 안든다고 전쟁을 할 수도 없고 수출입 관계를 끊을 수도 없고 인적 교류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주권은 최고의 권력이지만 국경 밖에서는 끊임없이 제약당한다. 강대국이 아니면 주권은 더 많이 제약당한다.
 
주권은 제약당하지만 사실은 자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국제사회에서 마음대로 행동하면 국제질서가 교란되고 세상은 위험에 빠진다. 무엇보다 자국이 먼저 위험에 빠진다. 마음에 안든다고 주변국과 전쟁을 일삼는다면 주변국보다 자국이 먼저 망한다. 국민의 생명이 위기에 처한다. 평화를 위해서는 주권 행사는 자제되어야 한다. 
 
주변국과 교역을 금지한다면 폐쇄적 경제체제로 먹을 거리, 입을 거리, 생활필수품을 비싼 값에 구입해야 한다. 경제는 침체되고 사회는 활동력을 잃는다. 순식간에 못살았던 과거로 돌아가 버린다. 경제를 위해서도 주권 행사는 자제되어야 한다. 정보 유통, 인권 발전, 질병 해결을 위해서도 주권 행사는 자제되어야 하고 국제사회는 협력해야 한다. 주권의 자제와 협력은 문명국가의 현명한 선택이다. 
 
권력기관의 권한도 제약과 자제의 대상이다. 권력의 자제와 협력도 권력의 현명한 선택이다. 권력기관의 권한이 자제의 대상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평화를 위해서다. 모든 권리와 권한의 경계는 흐릿하다. 대략 나뉘어져있을 뿐이다. 권리와 권한은 중복될지언정 공백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권리와 권한이 중복된 상태에서 권한을 자제 없이 행사하면 당연히 충돌이 발생한다. 충돌은 갈등과 분쟁, 위기로 이어진다. 국경이 분명하지 않는 곳에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과 상황은 비슷하다. 시민들은 사회의 안정, 평화를 위해 국가에게 권한을 집중해 주었다. 그런데 국가기관들이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해 다투면 오히려 사회의 안정과 평화가 위태로워진다. 국가기관들은 자제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기관이든 상대방은 하나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개인에게는 침범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 내밀한 세계가 있다. 기관에게도 법률에 의해 보장받은 권한이 있다. 정당에게는 지지자들이 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사회에서 상대방의 기본적 인권, 법률상의 권한, 지지자들을 무시하고 정책을 펼 수는 없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인 사이의 갑을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기관의 입장 역시 바뀔 수 있다. 정책방향에 따라 힘 있는 기관이 힘이 없어질 수도 있고 힘없는 기관이 힘센 기관이 될 수도 있다. 정당은 선거를 거치면서 여야가 바뀐다. 소수가 되었을 때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다수일 때 소수를 배려해야 한다. 소수의 자존심을 짓밟을 정도의 권한 행사를 해서는 안된다. 
 
셋째, 자애와 연민 때문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자애심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은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란다. 이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계발하지 않을 뿐이다.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이 잘되는 경우는 없다. 함께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권리와 권한을 자제할 때 상대방에게 해를 적게 끼칠 수 있다.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권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행사하는 것은 평화와 상대방 존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도 금기시되어야 한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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