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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허벅지 갑자기 쓰다듬는 행위도 강제추행"

"강제추행 요건 '폭행', 피해자 의사 반한 유형력이면 족해"

2020-03-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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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볼에 입맞춤을 거부하는 여성의 허벅지를 기습적으로 쓰다듬었는데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이 행위는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것일까? 2심은 이를 무죄로 봤지만, 대법원은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는 26일 직장회식 자리에서 가맹점주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모 미용회사 대표 A씨(52)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초순 한 노래방에서 직원들과 회식하던 중 여직원 B씨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힌 뒤 귓속말로 “일하는 것 어렵지 않냐, 힘든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갑자기 피해자의 볼에 입을 맞추고, 놀란 B씨가 그 자리에 앉아 “하지마세요"라고 거부하자 "괜찮다. 힘든 것 있으면 말해라. 무슨 일이든 해결해 줄 수 있다”며 갑자기 오른손으로 B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기습적으로 쓰다듬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의 행위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과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쌍방이 항소한 상황에서 2심은 갑작스런 입맞춤과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입맞춤 행위는 증거가 없고,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강제추행에 해당할 만큼의 폭행이 없었다는 게 판단 이유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인들의 진술 내용이나 이 사건 회식의 지속 시간, 진행 과정 및 분위기, 피고인의 부적절한 행동의 유형 및 반복성, 피해자의 반응, 다른 회식 참석자들의 상황 인식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행위가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또 "강제추행죄 구성요건인 ‘폭행’이라는 유형력 행사 여부를 엄격히 인정하지 않고 ‘추행행위에 해당하는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들어 모두 ‘기습추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강제추행죄를 인정한다면, 강제추행죄와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 단순추행죄의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형벌법규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심히 훼손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다.
 
결국 허벅지를 쓰다듬어 피해자를 기습추행이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피해자가 즉각 거부의사를 즉각 밝히지 않았을 경우 강제추행죄 성립을 인정할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폭행 또는 협박을 이용해 추행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폭행 자체가 추행이라고 인정되는 기습추행도 포함한다"면서 "이 때의 기습추행은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 행사가 있으면 인정될 뿐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여성인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인 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추행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을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강제추행죄의 성립에는 지장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을 쓰다듬는 행위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교사가 피해 여중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비비는 행위 △피해 여중생의 귀를 쓸어 만지는 행위 등을 기습추행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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