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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2019년의 소녀시대, 2008년의 트와이스

2019-09-24 18:51

조회수 : 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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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 시절 종교 활동을 반드시 해야만 했는데 절실한 크리스천, 가톨릭이 아닌 이상 장병들은 모두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절에 가면 종교 활동이 끝날 즈음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을 틀어줬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선명한 장면 중에 하나는 삶의 소중함에 대해 설법하던 스님이 미소를 지으며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어쩌다’ 동영상을 켜는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스님은 마케팅의 귀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대 배치 후 들어간 부대에서 고참들은 음악방송을 챙겨봤습니다. TV 속에는 소녀시대, 브라운아이드걸스, 원더걸스, 카라, 레인보우, 2NE1 등 수많은 걸그룹들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요계의 트렌드는 원더걸스 ‘Tell Me’로 시작된 후크송이었습니다. 인기를 구가했던 그들의 노래는 대부분 이 문법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일과가 끝나고 즐길 수 있는 거라고는 텔레비전밖에 없던 막사 안의 후크송은 그저 ‘인기 있다’를 넘어 엄청난 파급력을 자랑했습니다. 지루했던 경계근무는 그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달랬고, 사회에서 춤 좀 췄다 하던 이등병들은 고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걸그룹 춤을 춰야만 했습니다. 걸리쉬 댄스로 잘 알려진 제이블랙이 막사에는 참 많았습니다.
 
가요 담당 기자가 되고 나서야, 내 군대시절을 함께 해줬던 소녀들이 ‘2세대 걸그룹’이라고 분류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2세대 걸그룹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것은 소녀시대였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로 인지도를 쌓았던 그들은 후크송 문법을 따른 ‘Gee’로 가요계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소원을 말해봐’ ‘Oh!’ ‘훗’을 연달아 히트시켰고 지금도 레전드 걸그룹으로 꼽힙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이등병의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과거 비장한 표정의 군인 뒤에서 이를 비웃듯 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소년의 근황 사진이었습니다. 장난기 가득했던 소년은 자신이 비웃던 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정말 동일 인물인지, 사실유무는 확인할 수 없지만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모두들 ‘어느덧 세월이 많이 지났다’며 회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적었던 걸그룹에 대한 이야기도 이 사진이 촉발한 내 군 시절에 대한 회상입니다.
 
걸그룹은 또 다시 세대 교체가 일어났습니다. 트와이스, 마마무, 여자친구, 레드벨벳, 블랙핑크, 러블리즈 등이 ‘3세대 걸그룹’이라고 분류되어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트와이스는 2019년의 소녀시대입니다. ‘우아하게’로 시작해 발매하는 신곡마다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매한 ‘Feel Special’까지 1위를 차지하며 ‘12연속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사진 속 소년이 트와이스 노래를 읊조리고 있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춤을 잘 추는 소년이라면 고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사나의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 안무를 소화해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가혹행위 없는 군생활이 되길. 3세대 걸그룹의 가호가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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