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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홍보맨이 보내준 8장 분량 강연 녹취록

2018-12-13 18:29

조회수 :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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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년 전입니다.
 
2011년 2월22일 오후. 당시 근무했던 언론사에서 이같은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날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본사에서 임직원들을 위해 개최한 명사 초청 특강에 연사로 섰던 홍수환 한국권투인협회 명예회장(현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홍보팀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자료를 읽다보니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좀 더 내용을 추가할 수 없을까. 홍보팀에 연락했습니다. 강연 들으신 임직원분들 가운데 주요 내용을 적어놓은 분들이 있으면 그 내용을 좀 보내달라고. 녹취한 것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홍보팀장이 난처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적어놓은 것은 없고 녹화한 건 있다고요. 그냥 내용이 좋아서 기사를 늘려보고 싶으니 적은 사람들 수소문해서 몇가지만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알았다는 답변을 듣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기에 안되는구나라고 하고 잔무를 좀 더 하다가 오후 9시경 퇴근해 집에서 노트북을 켰습니다. 그 시간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홍보팀에 있는 다른 직원분이 보냈는데, ‘요청하신 홍수환 씨 강의 스크립트입니다.’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채명석 기자님, 온라인에 게재해주신 기사 잘 보았습니다.
 
기자님이 궁금하신 것이 강의 내용인 듯 하고 1시간 30분 분량의 강의를 상세히 기술하여 보냅니다.
 
거의 원본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기사나 다른 데 사용하실 생각이셨다면 제가 잘못 판단하여 좀 번거로우실 테지만,
 
한 번 쭉 읽어보심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강의 듣는 임원진들도 연배가 비슷한 분이 오셔서 추억 어린 얘기도 하시고, 입담도 워낙 달변이시고 하니 참 좋아하시더군요.
 
좋은 밤 되십시오. ^^
 
첨부파일을 열어보기까지 1시간30분의 강의를 상세히 기술했다는 말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MS워드로 작성한 파일을 열어보니 세상에. 단어 수 3761개, A4 용지로 8장. 읽어보며 더욱 놀란 건, 정말로 강연 내용을 하나도 안 빼고 옮겨적은 겁니다. 바로 홍보팀장에게 연락했습니다. “무슨 짓이냐? 누가 이렇게 다 달라고 했냐?”하니 웃으면서 제 전화 받고 그때부터 직원에게 강연 녹화파일을 보면서 다 옮겨적었다고, 작업 끝나자 마자 바로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저녁 식사도 미뤄가며 8시간 가까이 ‘녹취’를 한 것이죠.
 
미안한 마음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냐 했더니, “기사 하나 더 써주시면 됩니다”고 하길래, 결국 8장 분량의 녹취록을 밤새 읽어나가며 줄이고 줄여 다음날 오전에 상보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회사 인트라넷에 기사를 이틀에 걸쳐 두 번 쓰게 된 사연을 올리며, 받은 녹취록 전문을 올렸습니다. 논설실장과 논설위원은 물론 편집국장과 부장, 기자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고, 기자는 “이런 식으로 출입처에 갑질을 했다”고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항상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교훈을 그렇게 얻었습니다. 이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기자 한 명을 위해 8시간을 들여 녹취록을 작성해 준 홍보팀 직원의 정성을 떠올리곤 합니다.
 
지난 2011년 2월22일 프로복싱 주니어페더급 세계 챔피언 출신인 홍수환 한국권투인협회 명예회장(가운데 양복 입은 사람)과 성동조선해양 임직원들이 22일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대회의실에서 열린 명사 초청 강연후 한 자리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성동조선해양
 
그런데, 회사를 옮기다보니 잃어버렸던 그 녹취록 원본을 이메일 받은 편지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했습니다. 정말 반가웠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8년 전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홍보팀장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역시 놀랍니다. 안타깝게도 그 직원은 퇴사했다고 합니다. 기자 생활을 이어가는 한 절대 잊지 못할 분입니다.
 
원문 그대로 공개하고 싶지만, 강연인데다가 재미를 위해 다소 지나친 표현이 들어 있어 이를 정리해 뉴스카페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내용은 길지만 읽다보면 홍수환 선수가 마치 옆에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2011년 2월 22일 성동조선해양 본사에서 열렸던 명사 특강을 즐겨 보시길 권합니다.
 
 
[명사초청특강]성공을 위한 프로정신과 도전정신
 
강 사: 홍수환 한국권투인협회 명예회장
 
1974년도 일이니 카라스키야(헥토리 카라야스키야)를 때려눕힌 것도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일이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말은 그냥 라디오에서 조절한 거에요. 왜냐하면 그 때는 너무 먼 거리에서 통화를 하면 전화가 울렸기 때문에 “엄마”하면 “엄마아~아아~” 이런 식으로 울렸죠. 근데 그 때 우리 어머니가 멋있는 말을 했죠. “대한민국 만세다” 이랬으면 별 것도 아니었을 것을 “대한국민 만세다!!!” 하면서 히트를 쳤죠.
 
성동에 들어오면서 제가 야드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배운 게 있습니다. “비상(非常)해야 비상(飛上)한다”는 말이요. 사실 1974년도에 많은 분들이 4전5기 권투시합을 좋아하셨어요. 근데 전 아니거든요. 모두들 4전5기 경기를 기억하시는데 저는 그 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때 영상 편집본에는 2회전에 4번 다운되고 바로 3회전에 출전하는 것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사실은 2회전 종칠 때까지 더 맞았어요.
 
그때 저는 육군 일등병에 동양 챔피언이었습니다. 12회전 뛰기도 하고. 13, 14, 15회전까지 어떻게 뛰느냐? 어떻게 연습을 했냐하면 남산 순환도로를 뛰고 나서 남산 야외 음악당에서부터 남산 꼭대기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가는 거에요. ‘이걸 성공하면 난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뛴 거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정복을 못했어. 그래서 선생님은 한번은 쫓아 나오시더니,
 
“야, 내가 젊었을 때는 이거 뛰었어. 임마 뛰어봐. 계단만 보고 뛰어봐.”
 
계단만 보고 뛰었어요, 진짜로. 그러니깐 계단이 더 이상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이제껏 내가 왜 실패했겠어요? 얼마나 앞을 쳐다 본 게 나를 못 뛰게 만든 거지. 계단을 오르다가 ‘어휴, 저만큼 더 남았네’하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나 그거 하나 갖고 남아프리카까지 날아갔어요. 일본, 홍콩, 요하네스버그, 더반까지 공항에서 내리니까 아주 기분 나쁘데? 인종차별 국가였거든. 백인은 앞문으로 내리고, 흑인은 뒷문으로 내리는데 우리는 어디로 내리느냐?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게다가 이놈들이 또 코리아도 몰라요. 그래서 제가 이랬죠. “유 노우 재팬?” 그러니까 또 일본은 안데. 그러면 임마, 우리는 일본 위다. 제가 그런 애국잡니다 제가. “On top of the Japan” 딱 이러니까, 아 미안하게 됐다고. 전 영어를 좀 잘했어요. 담임선생님이 영어 교수였기 때문에 영어 덕을 좀 봤죠. 그래가지고 내려가지고, 선생님이 나보고 “아 왜 안내리냐.” “선생님 우리 어느 쪽으로 내릴까요?” “야, 우리가 까맣냐? 흰 쪽에 가깝지.”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내렸어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갈게요. 딱 하나에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늘 돕는다.” 나는 내 스스로 이기려고, 남산 계단을 목표 설정을 해서 그걸 정복을 했더니 하늘도 도와주더라 이거에요. 첫 날밤에 누가 노크를 해요. 누구냐 했더니, 자기를 좀 들어가게 해 달래요. 그래서 들어오라고 했더니, 자기는 “니가 싸울 아놀드 테일러의 트레이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왜 왔냐고 했더니, 자기는 제가 이기는 걸 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떡하면 이기냐” 그랬더니 “계속 움직여라, 그럼 너는 이긴다. 걔는 스트레이트가 센 놈이다. 그러니까 너는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선수가 세계챔피언이 된 다음에 루이 투 주니어란 사람과의 시합에서 논타이틀 매치 때 졌다. 그리고 컨디션도 안 좋다. 그래서 넌 이길 수 있다. 계속 움직여라.” 그래서 제가 기분 좋아가지고 제가 100달러를 줬죠. 그때 100달러가 큰돈입니다. 그때 우리나라에 일간스포츠 신문 10원할 때에요.
 
“이기면 더 줄게”하고 그렇게 보냈죠. 너무 너무 기뻐가지고 우리 선생님이 계신 대로 가서, “선생님 계속 움직이면 안 맞는 댑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야 잠 좀 자자, 야 움직이는데 왜 맞냐?” 제가 벌써 예순 둘인데 그 때 선생님이 지금 저보다 조금 어렸어요. “아놀드 테일러 트레이너를 왔다 갔다니까요.” 이랬더니. “얌마 너 아놀드 테일러 트레이너를 본 적이나 있어?” 그말 딱 들으니까, 이건 사기다. “얌마, 100달러를 선생님이나 주지 이 XX야.”
 
외국 나가서 그렇게 첫날을 싱숭생숭하게 시차도 있고 잠도 못자고 다음날 아침에 식사를 하는데, 그 호텔 주인이 와가지고 “먼 길에 고생이 많았다. 이번 시합에 호텔 가운을 입고 나가라.” “돈 줘야지” 하니까. “니가 싸울 아놀드 테일러 테이프 보여줄게.” 그래 가지고 가서 봤어요.
 
뭐 어쨌든 그놈 말이 맞는 것 같아. 이놈이 꼭 어정쩡하다가 한 방씩 나오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로미오 아나에라는 멕시코 선수가 들어가다가 그냥 코너에서 맞아가지고 실려 갔어요. 앰뷸런스에. 근데 기뻐가지고 어느 놈이 아놀드 테일러를 막 들어 올리는 거야. 근데 자세히 보니까 어제 그 놈이야. “선생님 저 XX 왔었어요 저 XX.” 그러니까 선생님이 “맞어?” “아 맞다니까요.” “알았어.” 그 XX 말이 맞다고. “야 내일부터 연습하자.”
 
호텔 안에서 주먹 피하는 동작을 하나 둘 셋 넷 천 번을 했어요. 천 번을. 그 호텔 안에서 누구한테 보여주지도 않고 미트를 치고, 옥상에서 지루하게 계속 뛴 거에요. 아니 동양에서 온 놈이 오전부터 얼굴도 안 보이고 이러니까, 좀 떠들고 돌아다녀야 관중들이 많이 오고 할 텐데, 밖에서 나오지를 않으니까. 그 쪽에서 공개 스파링을 요청하는 거야. “선생님 어떡할까요?” “해줘야지 어떡하냐 임마. 대신 넌 이게 세잖아. 절대 이거는 치지 말어. 이건 비밀 병기니까 보여주면 안돼.” 아 근데 흑인하고 스파링을 시켜주잖아요. 시합 전에 좀 상하라고. 아 그걸 안 쓰고 계속 맞다 보니까 성질이 나잖아요. 그래서 피하면서 확~ 때렸더니 선수가 없어졌어. ‘이 XX 어디 갔지?’ 했더니 맞고 떨어졌더라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어요. 스파링 하는데 이게 뭐냐고. “20만원짜리 될래? 2000만원짜리 될래?” 이러시는 거에요. 그때 스파링이 20만원이고 세계챔피언이 2000만원이었거든요. 우리 선생님이 초대 페더급 한국 챔피언이거든. 하도 이쪽으로 많이 맞아가지고 담배를 태우면 이쪽으론 (연기가) 안 나와요. 이쪽으로만 나오지. 또 우리 선생님이 코 고는 소리가 장난 아니에요.
 
“야, 저쪽에서 미인계를 쓸지도 몰라.” “아 그쪽에서 왜 미인계를 써요?” 근데 새벽 2시가 되니 똑똑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거야. 문을 탁 열었지, 근데 그 사람 한국인이었어요. 경상도 남자. 아 홍수환 선수 맞냐고? 자기는 포스터 보고 왔다고. 아 근데 오른손을 딱 보니까 양주를 들고 있는 거야. 내가 내일 시합인데 어떻게 술을 마시냐고. 수요일이 시합인데 자기는 못 보고 간다고 한 잔만 하자는 거야. “알았습니다. 딱 한 잔만 합니다.” 둘이 똑~같이 나눠먹었어 반병씩. 근데 안 먹으려면 아예 안 먹어야 돼. 체중이 줄고 이러니까 몸에서 쭉쭉 빨아들이는 거야. 기분 좋~죠. 그 다음날 얼마나 잤는지 선생님이 오셔서 “야~ 너 얼굴 좋다.” 이제 술도 이제 좀 바꿔야 돼. 술도 좋은 술 먹고 더 큰 프로젝트 성공하고 그러면 돼. 어차피 인생 한 방인데. 제가 항상 강의 때마다 하는 얘긴데, “인생이란 문상 다니다가 어느 날 문상 받는 거요.” 맞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
 
프로복싱 주니어페더급 세계 챔피언 출신인 홍수환 한국권투인협회 명예회장이 지난 2011년 2월22일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 대회의실에서 열린 명사 초청 강연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성동조선해양
 
1등하고 챔피언하고 하늘과 땅 차이에요. 1등은 퍼스트고 챔피언은 베스트에요. 그걸 모르고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잖아. 근데 일어나서 주먹을 딱 보니까 머리고 어깨고 그냥 패면 이길 것 같더라는 거야. 여러분도 깡다구 좋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저한테 강의를 들었으니까. 내가 내일 시합인데 저 XX한테 맞고 간다 이러면 진짜 맞는다니까요. 투우사가 내가 저 소한테 받치면 어떻게 될까? 이러면 받쳐요. 이게 마인드 컨트롤이에요. 저는 그쪽 부문에는 강했어요. 딱 시합 날이 왔죠. 그 쪽에는 장갑을 끼고 내 보내더라고. 그래서 딱 끼고 나갔는데, 상상하지도 못했던 원양어선 선원들이 홍수환을 외치면서 애국가를 딱 부르잖아요. 그때 링 위에 올라서 내가 선생님께 “내가 오늘 링 위에서 죽더라도 타올을 던지지 마십시오.” 이때 이 기분을 압니까? 이때 이 기분을… 후에 선생님이 얘기하시데요. “수환아, 니가 링 위에서 그 소리를 할 때 니가 이길 줄 알았다”라고. 선생님이 나가시면서 “저거 1회에 죽여 버려야 돼, 기를 살려주면 안 돼.” “알았어요.”
 
뭐, 우리라고 일일이 다 보고 치는 건 아니에요. 우리도 대충 쳤는데 잘 맞은 케이스지. 근데 하나 분명한 건 이기려고 연습을 해 놓고선, 이기려고 연습을 열심히 할 때는 안 보고 때려도 맞아요. 연습을 안 하면 보고 때려도 죽어도 안 맞아요. 그러니까 연습과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게. 그래서 중립코너에 가서 하나님 제발 저 XX 못 일어나게 해주세요, 이러니까 벌떡 일어나는 거야. 카운팅을 얼마나 느리게 하던지.
 
선생님이 나보고, “턱 들지마, 임마 턱 들지마.” 여러분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죠. 여러분 이거 맞으면 부러져. 고개 들면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선생님이 말하시는 대로 땡 하면 나가서 때리고 땡 하면 나가서 때리고 이러니까. 선생님이 이러는 거예요. “니가 이겼어 임마.” 근데 나중에 “The ladies and gentlemen, the winner and new, new”라니까 저잖아요. 제가 중앙고를 나왔거든요. 5대 사립중에 최고 명문. 아 이겼구나. 선생님하고 나하고 트위스트를 추고, 그 때 MBC라디오에서, 텔레비전 안 왔어요, 라디오만 왔지. 갑자기 이어폰 딱 씌우더니 “수환아” 엄마 목소리 나는 거야.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얼마나 배고팠으면 챔피언도 먹었다고 해.
 
나 진짜 우리나라에 감정 많은 사람이에요. 훈장도 없고, 연금도 없고. 남들 보면 홍수환이 다 훈장 받은 줄 알아. 수원 가보면 더 약 오르지. ‘박지성대로’ 있고, 홍수환은 무슨 골목이나 하나 있어. 전라남도 완도에서 열심히 강의하고, 그저 군민들이 홍수환이 말 잘한다고 기분 좋아 가지고 간 곳이 ‘최경주 공원’이야.(웃음) 나는 공원도 없고 나는 진짜 열받는 거야. 진짜 우리가 힘들었을 때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말이야. 광화문 세종대왕 밑에 가면 내 이름이 있을 거다. 그 주춧돌을 우리나라 국위선양 한 사람들. 딱 찾아갔죠. 1974년에 없네. 양정모 올라가 있더라고. 그 다음 4전5기 해가지고 1977년에 반드시 있을 거다. 난 또 없더라고. 에베레스트 정복한 고상돈 씨가 있더라고. 여러분 잘 하셔서 챔피언 먹고 나서 여기 작업장이고 어디고 조그만 길 하나 있으면 홍수환 길 하나 해주쇼. 넓을 홍에 빼어날 수에 빛날 환. 넓을 홍은 월드죠, 빼어날 수는 탤런트가 있단 말이죠, 빛날 환은 페이머스 하단 거죠. 여러분 카라스키야라고 괜히 나한테 진 줄 아세요? 이름 봐요. “가라 이 XX야~.” 거 이름이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챔피언 먹고 제일 기뻤던 게 박정희 대통령 만났던 게 아니에요. 챔피언 먹고 제일 기뻤던 건 외항선원이 전문을 보냈어. 바다에서 라디오 들었다고. 그때는 이 케이블이었잖아요. “콩그레츄레이션 챔피언 홍수환.” 그러고 나서 문교부 장관 민관식씨, 김종필 국무총리. 그때 진짜 세계챔피언 된 거 같더만. 요새 비행기 타고 내리면 김포공항에 나온 머릿수만큼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잖아요. 그땐 아무것도 없었어요. 딱 보니까 사람들이 뭐 저거 나 때문에 나온 사람들인가 할 정도로 놀랬다고.
 
그 때 김포 양화대교 신촌 서소문 시청 이렇게 들어왔는데. 야 기분 좋데. 정말 비가 내리는 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셨어. 박정희 대통령도 나한테 “홍 일병 신고해야지?” 옆에 문교부 장관 민관식씨가 “여의도가 좋습니다.” 각하, 그때 왜 여의도가 좋아요, 강북이 더 좋을 땐데 그 때는. 홍수환이 거 똑똑하잖아. 각하가 해주는 대로 가만있으면 하나 떨어지는데 뭐 거기 멉니다, 가깝습니다 그럴 필요 없잖아요. 가만히 있었더니 “조치해줘” 이러니까 딱 네 마디 하데. “조.치.해.줘.” 그렇게 바로 체육관 하나 떨어진 거 아니에요? 조금 있으니 육영수 여사가 오시더니 “우리 지만이 선배네” 자기 아들 박지만씨 8년 선배라고. 금일봉 또 주는 거야. 군인정신 부대에서 훈련 받은 그대로 하나 둘 딱. (손 내미는 시늉) 여기까진 뭐 좋았는데, 대통령이 그 봉투를 옆에 계신 엄마를 주는 바람에 얼마나 무안했는지. 대통령이 더 뻘개졌어.
 
난 지금도 여기에 계신 박정희 대통령 얼굴 그대로 그릴 수 있어. 그래서 나와서 차를 탔는데 그 봉투를 보고 싶더라고, 얼마나 들어있는지. 사람이 이 얼마나 정신적인 면이 많이 차지하냐면 그 청와대에서 서대문구에 있는 문화방송국까지 20분이면 온다고. 근데 비행기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가는 것보다 더 멀더만 그게. 보고 싶은걸 못 보니까. 그래 그걸 가지고서 어디를 갔냐면, 화장실에. 요 세 손가락을 넣어봤어. 야~ 비벼지는 거야. 아 한 장은 아니다. 그래가지고 쑥 빼니까 시퍼런 100만원짜리 수표가 두 장 있는 거야. 그때 웬만한 집 한 채는 100만원 주면 샀어요. 집 두 채를 받은 거야 두 채를. 엄마한테 나 200만원 받았다니까. 뭐 얼마? 200만원 받았다니까. 그럼 나 100만원 만 좀 달라. 우리 어머니가 담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오래 못 사셨어. 100만원 달래서 100만원 드렸더니, 그 다음날 어머니가 바로 기증한 거 아닙니까. 거기다 우리 아들 잘 키워줬다고.
 
근데 내가 참 챔피언 복이 있고, 여러분들이 저를 사랑해주는 제일 큰 복은 제가 가지고 있는데, 재물 복이 없어 내가. 7월18일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잖아요. 8월15일날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거야. 거 슬픈 상황에서 “거, 내 체육관 어떻게 됐어요?” 할 수도 없잖아 이거. 만약에 박근혜씨가 대통령 된다면 나도 체육관 찾아야 되요. 여러분 그때 1100평인가 그랬어요. 난 지금 복싱 전용 체육관에서 우리 각자 체육관 만들 필요 없이 홍수환 소속, 누구 소속 다 한군데서 연습해가지고 저녁 7시 되면 매표소에서 표 팔고 1년 365일 복싱 경기할 수 있어. 내가 장기적으로 10년을 두고 대한민국 복싱의 아버지로서 만들 테야.
 
어차피 복싱은 엄마 아버지 갖춰서 행복한 환경에서는 챔피언 나오기도 어려운 직업이에요. 뭔가 응어리진 게 있어야 돼요. 이거를 권투를 가르쳐서 사회에 이바지하게 만들어줘야지 그게 내 길이지. 그게 심판이 잘못 봐가지고, 분명히 이 선수가 이겼는데 상대편 선수 손 들어주면. 괜히 열 받아서 소주 먹고 맥주 먹고 술 취해서 싸움이라도 붙어가지고 사람 몇 명 패 버리면 깡패 두목이 봐가지고 그래가지고 그냥 기도로 들어가서 깡패 쪽으로 빠져버리면 그게 사회악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배 만들고 그러는 거 국익을 위한 겁니다. 그러나 사회에 적응케 하고 사회를 아주 깨끗이 만드는 일도 중요한 거예요. 각자 파트에서 프로정신을 발휘하면 우린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은요 대단한 민국입니다. 제가 아까 그랬죠? 얼마나 배가 고프면 챔피언도 먹었겠습니까? 우리 선배 뻘 되는 사람들은 구공탄에 막 손을 비벼대고 그랬어요. 왜 그러냐 하니까 “야, 임마 손이 험하게 보여야 취업이 되는 거야”하고 그랬어요. 지금 여러분 5000만 인구에요. 금메달 13개 나오는 나라에요. 대단한 나라에요. 메이드 인 코리아죠 제가.
 
문제는 제가 세계 챔피언이 됐는데, 안주했다는 거죠. 그때 선생님께서 권투는 가르쳐 줬는데, 멘토가 없었다는 거죠. “너, 이러면 안돼” 해줄 멘토가 없었다는 거죠. 그 순간 멕시코에서 영웅이 나타났죠. 알폰소 자모라 18전 18승 18KO승입니다. 미래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거기서 “붙자. 와 임마” 하길래 “나는 가서 땄어 임마” 이러니까 너희 나라는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아서 난 안 간다는 거에요. 그래 내가 가면 얼마 줄래? 이러니까 세계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 8만달러. 그래서 갔죠. 그 놈이 이름이 좋아요. 자모라. 상대편이 잠이 와 아주. 자모라 그 놈은 실속의 권투를 하는 거야. 모든 주먹을 자기 몸통 안에서만 때리는 거야. 이게 때리고 빠지는 게 아니고 몸통 안에서만 또 때리는 거야. 관중들이 볼 때는 재미없어요. 근데 맞는 놈은 죽는 거야. 내가 그거 맞고 간 거 아냐. 졌죠. 지고 갔더니 수도경비사 제5헌병대대 자대 유치장에 일주일 넣데요. 지고 왔다고. 그때 나는 진짜 배신감을 느꼈어. 저렇게 뜨겁게 카퍼레이드를 해주다가 지고 오니까 깜빵이다. 에라이 내 이 권투하면 뭐하냐. 그 8만달러 받은 거. 4000만원. 강남 신사동 4거리 1000원, 2000원 할 때 그때 땅 사놨으면 4만평 살 수 있어요. 그 때 그 돈 가지고 후원회 회장님 찾아갔죠. 회장님이 “너, 컸구나 임마.” 정부청사에 박사님들이 저 후원회원 분들이었거든요. 딱 그러더라고요. “링 위에서 쥐어터지면 말려주는 레프리라도 있지, 인생은 레프리가 없다고.” 그 말 정말 멋있는 말 아닙니까.
 
여러분, 제가 제대하고 알폰소랑 또 붙었잖아. 인천에서. 12회전에서 KO로 또 지잖아. 자모라에게 “가라 임마. 니가 이겼다.”하니 “야~ 임마 넌 주먹이 없어.” 도끼질을 하라고 충고하더군요. 나 그 놈한테 도끼질을 배웠어요. 보세요. 나 그 놈한테 도끼질 배운대로 바꿔서 이렇게, 또 바꿔서 이렇게. 그 뒤 다시 재기에 성공한 거에요. 여러분, 졌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복 받아요, 졌다고 핑계 대는 사람은 성공 못 합니다.
 
카라스키야가 초대 챔피언전을 하자고 제의해왔어요. 그래 좋다. 근데 다들 홍수환이가 진대요. 낙타가 아주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 격. 기관총으로 탱크 쏘는 격. 시합 전에 그런 말을 들으면 오기가 생기는 거에요. 더 강하게 때리자 하는 결심이 서는 거죠. 나는 여러분들이 그걸 배웠으면 좋겠어요. 피하지 마세요. 여기 여러분들한테 딱 올 때 배운 건 “비상(非常)해야 비상(飛上)할 수 있다” 그 말처럼. 지금 11시 다 되어 가는데. 파나마가 거의 12시간 시차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말씀하신 게, 너 아침 6시 반에 파나마 TV시간에 맞춰서 올라와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때가서 맞을 연습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준비하면 이기는 거에요. 프로는 준비된 사람이지 그때 가서 준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갔지요. 파나마에 갔지요. 기적이 일어났죠. 룰이 바뀐 거에요. 3번 다운당하면 자동 KO인데 무제한으로 된 거에요. 사인을 할 때 전 통역관을 데리고 갔는데, 그 통역관도 통역을 잘 못해요. 그 분이 “야, 얘들이 죽을 때까지 하재.” 이게 첫 번째 행운이 따라온 거죠. 남들이 다 진다고 했을 때 나는 열심히 하니, 이게 복이 온 거예요.
 
두 번째 내 방을 올라갈 때 엘리베이터에서 레프리를 만난거야. 시합 날 레프리를 만나거야. 심판이 나보고 행운을 빈대요. “Good Luck to you”이라고. 난 그 때 기분이 많이 상했지. 내가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는데 왜 나한테 행운을 비냐고. 이 사람도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그랬자. “Sorry, sir. I’m ready for this fight.”라고 하니 이 레프리가 깜짝 놀란 거야. 웬 동양인이 영어를 하니까 “Where did you learn English?” 그래. “highschool” 그랬지. 그 레프리가 여러분 나 맞고 쓰러졌을 때 “One, two, OK?, three, Get up” 카운팅을 어찌나 느리게 하는지, 자기 배 나온 데에 글러브 다 닦아주고. 여러분 TV에는 4번 쓰러지고 바로 이기는 것만 나오죠? 4번 쓰러지고 제가 종 칠 때까지 맞았어요. 심판이 그때 시합중지 시키려고 그랬데요. 그런데 제가 쓰러졌을 때 저한테 괜찮냐고 물어보데요. 그러니까 저는 무조건 하겠다고 “네” 그랬죠. 그러고 나서 일어서니까 이놈이 이게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는 거야. 딴 놈들은 4번씩 쓰러지면 못 일어나는데 계속 일어나니까. 거기다 선생님이 저에게 “1회전 더 뛰어 암모니아 마셔.” 저는 욕을 먹어야 잘 합니다. 암모니아 먹으니까 링 위가 깨끗하게 보이데요. ‘에이 4번 간 놈이 5번 못 가냐’하고 했는데, 쩍~ 맞았는데 이 기분이 아마 이승엽이 홈런을 칠 때 그 맛일 거야, 손맛이. 이놈이 무릎을 딱 꿇더니 뒤로 물러나는 거야. 이놈이 흑인인데 힘이 좋아요 안 넘어가는 거야. 한 번, 두 번, 세 번째, 제가 기념으로 드리는 CD니까 한 번 보고 가세요. 근데 심판이 마지막 맞을 때까지 이거 다운이 아니라고 나 이기게 해줬잖아요. 나 지금 페이스북을 통해서 그 사람을 찾으려고. 나를 먹고 살게 해줬으니까. 카라스키야는 더 고맙죠. 그 사람 지금 파나마에서 시장이에요. 도전지구탐험대에서 카라스키야 만나고 왔죠. 얘기를 좀 나누니 자기는 그때 봐줄려고 나왔고, 전 목숨 걸고 갔죠. 난 +1의, 걘 -1의 마음으로 갔으니 갭의 차이는 둘이야.
 
세계챔피언, 그 중에서도 초대 챔피언은요 세계에 있는 모든 권투선수들이 가장 앉고 싶어 하는 자리야. 그 일순간의 방심이 카라스키를 본좌의 자리에서 홍수환한테 뺏기게 만든 거야. 커피 먹다가 허벅지에 떨어져서 뜨거워서 이러다 보면 그 조그만 실수로 큰 사고 나요. 요번 KTX 보십쇼. 그 조그만 부주의로 그게 큰 사고 나요. 전 KTX 정말 자주 타요. 강의할 때. 그런데 천안 아산에서 광명까지 갈 때는 아주 불안해요. 뭔가 억지로 달리고 있는 기분. 뭐 어떻게 인터넷에 올려가지고 전 솔직히 보수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KTX 제일 많이 탄 사람 홍수환 일겁니다.
 
다시 아까 얘기로 돌아와 금의환향했어. 아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할 때보다 2배나 많은 사람들이 불사신 홍수환이라고 해가지고 얼마나 행복했어. 여러분 제일 먼 파나마에 가서 챔피언을 먹고 왔죠. 남아프리카공화국 보다 더 멀어요. 그때 TV 자주 나가다가 또 졌죠. 그러니까 여러분 진정한 챔피언은 먹고 유지까지 하는 게 챔피언이에요. 먹고 나서 이거다 거기서 안주해 버리면 진정한 챔피언은 아니에요. 진정한 챔피언은 김기수 유명우. 왜 김기수씨를 뽑느냐? 우리 한국에서 경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로마 올림픽에서 벤베누티한테 졌어요. 벤베누티한테 지고 벤베누티는 거기서 금메달을 땄거든요. 근데 그 분은 프로에 와서 자기를 이긴 선수를 이긴 거 아니에요. 저는 날 이긴 놈을 다시는 못 이겼거든. 유명우는 17차(방어전) 때 이오카 일본선수에게 뺐겼거든. 1년 동안 시합 한 번 안하고 1년 후에 일본에 가서 자기를 이긴 이오카를 때러 눕히고 세계 챔피언을 다시 찾아놓고 은퇴했거든. 이런 그들이 진정한 챔피언이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거 아녜요? 우리도 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왜 나는 하면 질거다 하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가지고 그래요?
 
그래요 여러분 저는 옥희랑 헤어지고, 미국으로 이민가고 고생 많이 했어요. 미국에서 택시 운전수 하다가 보따리 하나 잘못 나르다가 형무소에서 살았고 고생 많이 했어요. 알라스카 5년, LA 5년 살고, LA에서 돈킹한테 프로모션 하는 거 배워가지고 들어와서 복싱해설 한 거 아니에요. 근데 진짜 여러분 링보다 인생이 더 무섭더라고요. 책까지 썼는데 그거 좀 사서 보세요. 링보다 세상이 무섭다. 젤 처음 쓴 책은 누구에게나 한 방이 있다. 책에다 돈 들이면 열 배 이상 다시 돌아와요. 1만원짜리 책 사면 10만원이 뭐에요. 무궁무진한 모든 지식, 지혜가 모두 책에 있죠. 유명한 사람의 와이프가 쓴 책은 다 팔리고, 홍수환이 쓴 책은 팔리지도 않고, 문제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뭐 전쟁이 나면 미국이 다 지켜줄 거라고 정치에 신경 쓸 사람들은 그저 어떡해서든지 이때 아니면 언제 돈 벌까 그저 일만 생기면 돈. 여러분 일을 해가지고 돈을 벌면 얼마나 값어치 있어요. 세계챔피언 타이틀 매치 하기 전에 53kg 520g을 만들어야 되거든 53kg 520g 못 만들면 난 돈 받을 권리도 없다구요. 타이틀 매치도 안 되는 거지요. 씩씩대면 선생님이 저한테 “왜, 씩씩대? 그게 다 돈이지, 임마.” 이게 얼마나 멋있는 얘기에요 여러분. 솔직히 여러분 열심히 펀치 날릴 때는 세계챔피언이 됐잖아요. 돈을 알고 이번 시합 얼마 받을까 돈 따질 때는 다 졌잖아요. 그래서 내가 강의를 사랑하는 거예요. 흉금을 털어 놓을 수가 있으니까. 방송국에서 내가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해요. 비타민 같은 얘기는 다 잘라버리고. 방송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신문도 그렇고. 한 권투 선수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한 번은 강의를 위해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튕 튀는 길이 나오더라고, 그랬더니 경찰이 나오데. 갓 길로 갔거든. 그래도 내가 거기서 집니까? 기도를 했더니 내가 하나님 길로 갔다고. God 길. 근데 진짜 섭섭하게 그 딱지를 띠데? 아 진짜 홍수환이 정도는 알아봐야지. 경찰이나 군인들은. 그래도 뭐에요 홍수환은 딱 떠나면서 수고하세요. 그래 당신이 나중에 이 나라를 이끌지도 모르지. 만약에 당신이 나를 봐줬으면 이것도 부패의 하나지.
 
여러분 오늘 좋은 시간 됐죠? 좋은 시간 좋은 사람 좋은 세상. 이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그 일의 가치를 모르면 돈의 가치만 알고 일의 가치를 모르면, 일의 가치에서 돈의 가치도 생각해야지. 여러분 중국 왜 그렇게 컸어요? 우리나라뿐이에요? 중국이 인구가 많고 임금이 싸니까 모든 걸 다 맡겼잖아요. 일하기 싫은 세계 모든 나라 때문에 중국은 지금 그렇게 큰 거에요. 일하는 즐거움 얼마나 즐겁습니까.
 
스티븐 잡스 난 그 사람 제일 좋아합니다. 잡이나 잽이나 다 똑같죠. 스티븐이니까 스티프, 스티프 잽 강한 잽이거든요. 스탠퍼드 대학교에 가서 뭐라 그랬어요. 간단히 길게도 얘기 안했잖아요. “Don’t settle. Stay hungry, stay foolish.” 난 아직 바보야 난 아직 발견할게 또 남아 있어. 내가 아무리 아이폰을 발명해도 또 아이템이 또 있으니까 stay foolish 한 겁니다. 난 솔직히 여러분들한테 헝그리 정신입니까? 나는 헝그리 바디입니다. 세계 챔피언이 되고, 옥희도 만나고, 안주했다는 겁니다. 진정한 헝그리 정신은 내가 밥을 먹고 배가 불러도, 더 큰 프로젝트를 또 성공시킬 것이다. 이게 헝그리 정신이죠. 그럼 배가 부른 것 하고 헝그리 정신은 전혀 상관이 없는 거죠. 여러분이 이걸 아셔야, 리더로서 그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기수 선수 카퍼레이드를 제가 중앙고등학교 2학년 때 봤거든요. 제가 그걸 보고 엄마한테, “엄마 저 김기수처럼 권투할래요?” 이랬더니, 엄마가 “너 나가 뒤지라우” 이랬어요. 아버지 어머니 다 신의주에요. “네 손을 보라우, 넌 공부해야디” 이랬어요. 전 공부 잘하면 권투 더 잘하지 했죠. “아 XX 애비 닮아서 말을 잘하디” 니가 정 권투 한다면 큰 형한테 얘기한다고 하시길래, 전 몰래 권투를 시작했죠. 서울시학생선수권대회에서 졌어요. 전북학생선수권대회 또 졌어요. 2번 다 졌어요 아마추어 시절. 선생님이 나한테 넌 하도 흔들어서 넌 그냥 프로로 나가야돼 이래서 1969년 5월10일날 프로로 데뷔한 거 아니에요. 그때 엄마가 옆문으로 들어오더라고, 락카룸으로. “너, 나 모를 줄 알았지? 내 니 시합 다 봤어 아 XX야, 너 한번 이기고 그만두라우.” 그 다음부터 어머니가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미군부대에서 식당 하셨어. 미군부대 식당에 A4 용지만한 버터가 있었어요. 그거 두 동가리 떼어 가지고 뜨거운 밥에다가 간장만 비벼 먹어도 끝내주게 맛있었어요. 여러분 버터밥 5년 만에 세계챔피언 된 거 아니에요.
 
여러분 내 마지막 한마디만 하고 마칠게요.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려움이 있다는 건 성공할 수 있다는 거에요. 나하고 시합한 사람들 26전 26승 26KO승, 11전 11승 11KO승, 45전 45승 45KO승 다 그런 놈들이에요. 저는요 50전 41승 4무승부 5패 가운데 14KO승이에요. 30% KO율이에요. 3번 중에 한 번 KO로 이기는 꼴이에요. 제가 어떻게 세계 챔피언이 되겠어요.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죠. 시간은 흐르니까 난 걱정 안 했다 이거에요.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사람은 파나마에서 나타난 거에요. 나도 원래 깡다구가 좋지만, 저에게 진짜 좋은 말을 해 준 사람. 아나운서 박병학씨. 내 탈의실에 딱 들어오더니 붕대를 딱 감고 있는데, “수환아, 니가 이긴다 오늘.” “아, 형 농담하지마”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니까 형이 “파나마 XX는 이게 강하고 이게 약해. 임마 넌 이게 약한데 이게 세잖아.” 그 사람 말대로 됐죠. 난 일어났잖아요. 여러분 붙어보면 거기서 거기에요. 우리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이거에요. 부디 이 자리에 챔피언이 왔으니까 퍼스트 말고 챔피언 먹으시라니까. 더 버시라니까. 그땐 반값으로 해줄게. 내 그때 마누라하고 같이 와서 노래도 해줄게.
 
내 동생 홍수철이 보고 싶지 않아요? 가수. 목사님 됐잖아요. 여러분 정말 우리 집안에 홍수철이가 제일 공부를 못했습니다. 양정고등학교에서 퇴학 받았어요. 중학교 때 하도 싸움만 하고 다녀서. 그 퇴학 받았던 때가 1974년도입니다. 퇴학 받고 신일고등학교 전학 갔다가 다시 데려다가 앉혀가지고 양정고등학교 졸업했어요. 그 놈이 권투 한다 그랬다고, 두 놈이 체중 빼는 거 그거 안 된다고 해서 말리고. 그 놈이 배운 것도 없고, 노래는 잘 하니까 가수 한다고. 맨 처음 데뷔곡이 ‘어떤 날 둘이’ 그 되겠어요 그게? 월요일도 아니고 화요일도 아니고 시합날도 아니고 어떤 날이. 그게 또 방송국에서 형이라고 좀 틀어주세요 해서 몇 번 틀어줬지. 안 됐어요 결국. 6개월 후 이건 꼭 된다고 ‘등대불이 왜 켜져 있는지 그댄 아나요.’ 결국 한다면 된다니까요 저 같은 사람처럼. 결국 가요 프로그램에서 6주 동안 1위를 했죠. 계속 히트 치더니 어느 날 예수님 좋다고 목사 되겠다고 해서 지금 목사해요. 지금 주일에 예배가서 막내 동생 말씀 듣는다니까.
 
여러분들이 꼭 요 말씀은 들어주세요. 우리 한번 뭉쳐보자. 정말 비상한 마음으로 한번 뭉쳐보자. 실험 한 번 하자. 노래방 가서 노래 한 번 불러보세요. 내가 일본과의 차이점을 노래방에서 느꼈어요. 내가 일본에 초청 받아가지고 일본에 가서 권투시합을 13번을 했는데, 12명이 와서 한 명이 어디 갔냐고 물으니 죽었대요. 그래서 가라오케에 놀러갔어요. 뻥 뚫린 가라오케에 홍수환이가 가서 노래 하니까 다 들어 주더라고. 근데 우리나라는 꽉 막혀 있더라고. 거기서 노래하면 다 들어주더라고. 그게 우리나라랑 차이점이더라고.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게 프로에요. 일할 때 놀고 싶고, 놀 때 밀리는 걱정하고 이거는 어떤 분야에서도 성과가 없고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을 보십쇼. 때 가림을 잘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챔피언이 왔으니까 반드시 챔피언을 먹으십시오. 먹고나서 유지까지 하세요. 그게 여러분들이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김기수의 카퍼레이드를 보고 권투를 시작했듯이 여러분들이 열심히 리더십을 발휘해서 일하는 것을 밑에 사람들이 보고 이어나가는 것이 살아있는 교육이죠. 한 사람 또 백년 앞을 보고 교육에 힘을 쓴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발전을 기대하며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 채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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