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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권일

계엄군의 성폭력, 38년만의 뒤늦은 사과

2018-1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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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벌어진 5.18은 전쟁이나 다를바 없는 참극이었다. 계엄군에 의해 저질러진 잔혹한 범죄행위는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씻을 수 없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계엄군이 저지른 성폭력도 그런 범죄 가운데 하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행 사실이 국가기관 공식 조사로 확인된 것과 관련해 “정부와 군을 대표하여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식 사과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참혹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계엄군 지휘부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으로 무고한 여성 시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준 것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국방부는 앞으로 출범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일 오전 서울 국방부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성폭행과 관련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38년만의 뒤늦은 사과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총 17건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시민군이 조직되기 전인 5월19일~21일에 광주 시내에서 집중적으로 범죄가 자행됐다. 10~30대의 피해 여성들 직업은 학생·주부·직장인 등 다양했다.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피해자들 다수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 그들은 38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거나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며 조사단에 트라우마를 진술했다.
 
계엄군이 광주를 진압한 뒤 자행한 성폭력과 성고문 사례도 많다. 기자는 20여년 전 광주에서 전옥주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5.18 당시 가두방송을 하다 80년 5월 22일 붙잡혀 보안대에 끌려갔다. 보안대는 그녀를 간첩으로 조작했다. 그녀는 “여자로서 견디기 어려운 치욕적인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몽둥이로 매타작을 당했고, 열흘 동안 한잠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실에도 못가게 해서 가슴에 총을 겨눈 상태로 잔디밭에서 신문지를 깔고 용변을 봐야했다. 치욕스런 성고문도 자행됐다. “옷을 다 벗긴 뒤 총 개머리판과 나무 자로 음부를 마구잡이로 후비고 짓찧으면서 민망한 폭언과 만행을 저질렀다... 심한 통증과 함께 하혈이 시작됐지만 성고문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고문을 당한 뒤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민주평화당 전국여성위원회가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피해자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사진/ 뉴시스  
 
 
전씨의 찢겨진 인생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5.18 진상규명에는 여도 야도 없다. 호남에 다수 의원들을 두고 있는 민주평화당이 요즘 적극적이다. 최경환 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5.18계엄군에 의한 성폭행과 관련해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앞서 평화당 전국여성위원회도 지난 9월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피해자를 위한 다각적인 대책을 요구한바 있다. 
 
 
계엄군은 정부군이다. 정부군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행위는 정부가 국가가 사과하는 것이 맞다. 그런 점에서 7일 국방부장관의 사과는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속한 출범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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