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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검찰이 보는 종북, 대법원이 보는 종북

2018-11-02 11:05

조회수 :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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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라는 단어는 보수측이 먼저 쓴 것이 아니라 진보측이 먼저 썼다. 자기들 내에서 NL과 PD가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아마 PD계열 쪽이 NL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북과 연계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그쪽에서 먼저 쓴 것이 종북으로 저희들은 인식하고 있다."
 

2014년 8월22일, 공안수사 전문가인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이 날 서울고법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 남편 심재환 법무법인 정평 대표 변호사를 '종북(從北)'으로 지칭한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40)씨와 일부 언론사 등에게 수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반면, 같은 사실로 고발된 사건에서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느냐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보는 '종북'의 개념을 풀이했습니다.

명시적이고 유권적인 근거를 대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관계자 말에 따르면 진보측(과거 학생운동 노선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에서 먼저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사실과 다르더라도 검찰은 이같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해 전 법원에서 '종북'의 개념을 판결문에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도 이 판결을 소개하며 종북의 개념을 정리했습니다. 법원은 종북을 어떻게 규정했을까요?
 
▶법원이 보는 '종북'
 
법원은 판결문에서 "'종북(從北)'이라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는 '북한을 추종하는 것 또는 그러한 성향'을 의미한다고 할 것인데, '종북'이라는 표현 자체는 누군가의 행동과 발언 등을 토대로 평가한 특정인의 대북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 첫째,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둘째,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예컨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옹호하나, 동시에 북한의 대내외 정책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경우). 셋째,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다만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종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이중 어떠한 범주의 사람 또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전 대표가 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을 판결하면서 '종북'의 개념을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의미가 있어 판결문을 인용해 소개합니다. '주사파'와 '경기동부연합'은 덤입니다.


▶대법원이 정립한 '종북'의 개념

다수의견

‘종북’이라는 말은 과거 민주노동당의 이른바 ‘평등파’가 당의 정책이나 이념적 방향에 관하여 북한에 대한 독자성과 자주성이 없다는 취지로 이른바 ‘자주파’를 비판하면서 사용된 이래,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태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종북’이라는 표현은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사회 세력’이라는 의미부터 ‘북한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종북’이라는 말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이나 북한과의 관계 변화, 북한의 대한민국에 대한 입장 또는 태도 변화, 서로간의 긴장 정도 등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용어 자체가 갖는 개념과 포함하는 범위도 변한다. 또한 평균적 일반인뿐만 아니라 그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종북’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 또는 감수성도 가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종북’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가 어렵다. 

이 사건 표현행위에 사용된 ‘주사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주사파’라는 용어를 사용한 기사가 문제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0다14613 판결).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용어의 통상적인 의미만을 근거로 사실 적시로 본 것이 아니라 해당 표현의 문언과 함께 기사 전체의 취지, 보도 당시인 1994년을 기준으로 해당 표현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갖는 부정적 의미를 살펴보고,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도 살펴본 다음 사실 적시로 판단한 것이다. 즉 단순히 ‘주사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사실 적시로 판단한 것이 아니다.

위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십여 년 이상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전하고, 그동안 표현의 자유가 계속 확대되어 온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주사파’라는 용어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이 사건에서 ‘주사파’라는 용어는 ‘종북’ 이라는 용어와 병렬적으로 사용되어 통합진보당의 운영이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경선 과정을 둘러싸고 원고들이 취한 정치적 행보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한 수사학적 과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또한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


소수의견

‘종북’이라는 용어는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으로서 주사파와 같은 계열에 둘 수 있다는 의미로, ‘주사파’라는 용어는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우면서 북한의 남한혁명노선이라고 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을 추종하는 집단이라는 의미로, ‘경기동부연합’이란 용어는 주사파와 종북 인사들로 구성된 단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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