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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수능개편이 백지화됐다

2018-08-08 09:04

조회수 : 4,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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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부로부터 현 중3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이송안)’을 넘겨 받은 게 지난 4월 11일. 당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시민 공론화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7일 김 부총리가 국가교육회의에서 받아 든 건 곳곳이 비어있는 맹탕 답안지뿐. 김 부총리는 4개월을 그대로 허비한 채 원점에서 다시 최종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가교육회의가 이날 공개한 대입개편 권고안 내용은 크게 3가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위주 전형 비율은 정하지 않되 현행보다 확대하고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며, ▦수능 일부 과목 상대평가 원칙을 유지하면서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 대상에 포함하도록 교육부에 권고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3일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가 내놓은 공론 조사 결과에 더해진 것은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라는 주문뿐이다. 그 동안 수능전형이 중심이 된 대입 정시모집 확대 여부를 놓고 사생결단 식의 찬반 갈등을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공론화위도, 국가교육회의도 해법 도출에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심지어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교육부에 (전형) 비율을 정하라 마라 할 권한이 (국가교육회의에) 없다”고 했다. 수능 전형으로 뽑을 구체적 수치를 못박을지 말지, 폭탄은 교육부가 떠안으라는 의미다. 

대입개편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8월 31일 섣불리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밀어붙였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김 부총리 스스로 새 대입안 확정을 미룬 지 1년 만이다. 입시 개혁에 ‘공론화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입제도를 국가교육 차원에서 다루는 의제로 올린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혹을 떼려다 오히려 혹을 붙였다. 대입제도 개편이라는 ‘폭탄’을 4월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에 보낸 뒤 더 커다란 ‘폭탄’으로 변해 교육부로 돌아온 것이다. 

국가교육회의는 7일 교육부에 현 중학교 3학년이 치르는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전형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최대 관심사였던 구체적인 수능 전형 비율은 명시하지 않아 최종 결정은 다시 교육부로 넘어갔다.

수능은 지금과 거의 동일하게 치러진다. 영어 한국사에 이어 제2외국어·한문만 추가로 절대평가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대입제도 개편 초기부터 예견됐던 사안이라 사실상 현행 유지에 가깝다. 이번 권고안은 ‘수능 전형이 소폭 확대된 현행 대입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입제도 개편안 유예를 발표한 뒤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4개월간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초라한 결론이다.



<영상출처 : MBC>

?교육부는 이미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달 말 나올 대입제도 개편 최종안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들도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시나리오 1안(수능위주 전형 45%로 확대) 발제자인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 박소영 정시확대추진 학부모모임 대표와 시나리오 4안(수능-학종-내신 위주 전형 간 비율 균형 확보) 발제자인 이현 우리교육연구소 이사장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교육회의가 수능위주 전형의 비율을 정하지 않은 것은 숙의 민주주의 결과를 왜곡한 반민주적 결정”이라면서 권고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등은 “시나리오 1안이 2안(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과 오차범위 내 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은 만큼 1안이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2안을 지지했던 좋은교사모임은 “수능 절대평가 도입을 해야 한다”면서 “국가교육회의가 공론화 조사 결과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논평을 통해 “국가교육회의는 1안의 입장만을 옹호했다”면서 “2022학년도에 도입할 수 있었던 수능 절대평가를 장기적인 안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들은 수능 위주의 전형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정현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장은 “지금까지 대학들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신 중심의 대입전형에 무게를 두고 수시를 늘려 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정시를 늘리라고 하는 꼴”이라면서 “시민 정책단의 공론화 결과에 공감하긴 하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대입에서 수능의 ‘힘’이 더욱 강해지게 되면서 “수능의 힘을 빼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실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문재인 정부는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를 전제로 하는 고교학점제와 내신 성취평가(절대평가)제 등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국가교육회의가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를 중장기 과제로 밀어 놓으면서 스텝이 꼬이게 됐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위 위원장은 “시민사회의 의견이 대통령 공약과 다르다면 그 의견을 듣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도리”라면서 “이번 공론화가 그런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입시전문가들은 당장 새 대입제도로 입시를 치러야 하는 중3 학생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는 “교육부에서 정시확대 비율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으면 현 중3 학생들의 대학별 입시전형을 둔 혼란은 이들이 고2가 되는 2020년 4월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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