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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토마토칼럼)사법농단 사건을 특검하라

2018-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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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 헌정사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었다. 국정농단 사태 전후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회적 감각신경이 무뎌졌지만, 이번 사태는 섬뜩할 정도다.
 
'법관 블랙리스트' 존부 논쟁에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총 세 번의 조사를 거치면서 정체성을 의심할 정도로 민망한 사법부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후 약 1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사법부 담장 '안'의 일로 치부됐다. 법관들 스스로도 각 조사결과가 나올 때마다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사법부의 자정능력을 믿어달라”며 사법부 담장 '밖'과는 선을 그었다.
 
그 관성 때문에,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3차 조사결과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법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지 여부가 관심 대상이었다. 언론도 “그래서 법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사태의 실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제 도입'이라는 자신의 치적 쌓기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이 걸린 재판을 청와대와의 거래 조건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특별조사단의 결론은 거래 의도를 가지고 재판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법원행정처가 적어 준 재판 목록을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 오찬 자리에 가져가 언급했다는 증거도 없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그를 도운 심의관들이 재판을 거래 조건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법원행정처 간부나 실무자이기 전에 법관들이다. 게다가 특별조사단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임 전 차장은 차기 대법관으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심의관들도 임기가 끝나면 주요법원 부장판사로 배치될 예정이었다. 재판목록이 사후에 임의적으로 추려졌다고 해서 문제가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임 전 처장이 대법원의 특정 재판 목록을 청와대와의 거래조건으로 만든 사실을 양 전 대법원장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 사실을 임 전 처장 등으로부터 직접 보고 받았다는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결론은 양 전 대법원장의 조사 거부로, 임 전 처장의 진술에만 의존한 결론이다. 특별조사단도 임 전 처장이 양 전 대법원장과 관련된 질의에는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또 임 전 처장은 충성심이 아주 강하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도 익히 알려진 바다.  
 
이번 사태는 처음부터 사법부 담장 '안'의 일이 아니었다. 국정농단이라는 총론적 적폐에 이은, 각론적 적폐로서의 ‘사법농단’이라는 것이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조사단을 비롯한 사법부 구성원 대부분이 이번 사태를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뒷조사를 당한 피해 법관들과 ’거래 볼모‘가 된 재판 당사자인 국민은 공동피해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고발을 고심 중이다. 그가 결정을 내리면 검찰이 곧 수사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그 검찰은 바로 얼마 전, 수사외압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 이전 검찰의 역사도 국민 모두가 다 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수사한다는 것인가.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가 아직도 지지부진한 대가이겠지만, 결국 특별검사를 가동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범죄수사와 공소제기 등에 있어 특정사건에 한정해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는 특검은 한낱 정쟁의 대상이 아니다. 사법부와 검찰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바로 이 때 필요한 수단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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