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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헌법에 '문민통제' 정신을 명시해야 한다

2018-03-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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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은 모두 개헌을 공약했다. 그래서 대통령은 곧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헌법은 시대의 거울이다. 그 시대의 권력관계는 물론, 그 시대 민주주의의 화두와 인권보장의 주소가 기록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최고 사각지대는 어디일까.
 
2007년 2월에 발매된 신동아에 한 예비역 대장의 인터뷰가 실린다. 군사법제도의 독립성을 보장할 필요성에 대하여 그가 말한 요지는 이렇다.
 
“군이 별도의 사법권을 갖고 있는 것은 지휘권을 확고하게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사법권이 지휘체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능을 행사한다면 지휘권을 약화시키기에 반대하는 것이며, 문제가 있다면 군 지휘관들에 대한 법률교육을 대폭 강화하면 된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군 지휘관들은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한 사람들이니 법과 제도를 만들지 말고 사람을 믿으라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모든 제도는 권력과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군 지휘관은 모든 것을 교육의 강화로 해결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는 독선과 아집. 이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면 이 세상 모든 조직의 수장은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해야 하므로 결코 견제 받아선 안 된다. 그저 그를 믿어야 하고, 우려되는 부분은 해당 교육을 강화하면 다 해결될 일이니…
 
또 있다. 이 사람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막 중령으로 진급하여 육군대학에서 대대장반 교육을 받는 장교들의 특강에서 군사학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면서 자신의 경험을 자랑스레 설파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단장이 참모장인 자신에게 장지선정을 부탁하였다는 것. 그래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본부대장에게 묫자리 쓰는 책, 제사지내는 책을 사오라고 해서 그것을 밤새도록 읽었지만 결국 도상연구를 한 후 헬기를 타고 가서 ‘기관총진지 선정 시 고려사항’을 떠올리며 두 곳 가운데 한 곳을 결정했더니 지관으로부터 천하의 명당이라는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다. 공사의 구분이 전혀 없다. 부끄러움은커녕 자랑과 탄성뿐이었단다.
 
한 나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자유롭게 소통해야 올바른 생각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자연스레 들어앉는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이게 어떤 집단의 문제로 옮아가면 조직논리를 앞세워 단선적 생각을 요구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흔하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사명을 위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긴다. 생각을 강요하느라 폭력에 까지 이르고, 당사자의 개성을 말살하며 자유로운 사고에 대한 탄압까지 이르면 히틀러나 스탈린이 도처에서 부활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인격과 인권은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든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든 공무원이든 흔히 겪는 상황이다. 그래서 헌법이 필요하고 그 안에 인권을 불가침의 가치로 담고 있으며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필요와 권한을 앞세워 자기 신념을 강요하기 시작하면 헌법은 그저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에 그친다. 그래서 사법부가 중요하고 헌법재판소가 중요하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요하고 감시자인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니 지난 정권은 이걸 무력화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군대 안엔 독립되어 공정한 견제나 감시체계가 없다. '비상시'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종교시설, 병원, 검찰, 경찰, 국정원, 법원이 모두 군대 안에 있으며 지휘관이 재판에 관여하는 통로가 공식적으로 보장돼 있다. 그러니 한 번 잘못된 마음을 먹으면 한 방향으로만 전력질주할 수 있고, 끼리끼리 말을 맞추면 진실을 은폐하는 게 언제라도 어느 범위에서든 가능하다.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될 민감한 부분은 '군사기밀'과 '보안'을 내세워 가리면 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제는 이러한 상황이 용납되어선 안 된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헌법정신은 이번 개헌을 통해 확고히 천명되어야 하며, 군의 사명은 군 자체의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있다는 점이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군인은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 당당하게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군사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군인 출신이 아닌 국방장관을 가져야 한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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