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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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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죽은 아빠 블로그 글 어쩌나

2017-04-20 10:41

조회수 : 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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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지인에게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지인의 아버지는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뇌졸증이 갑자기 온 것이라 작별 인사도 못했다. 이별의 아픔을 추스리고 시간이 지난 뒤 지인은 아버지 명의의 네이버 블로그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블로그에서 가족에 대한 얘기와 사진을 꼼꼼히 기록했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하면서 블로그는 과거의 사진 앨범을 대체했고, 블로그에는 지인의 20대를 총망라하는 사진과 가족의 기록이 담겨있다.  하지만 아버지 명의의 네이버 블로그는 수년간 사용되지 않으면서 아버지 아이디는 '휴면 계정'으로 전환됐다. 휴면 상태를 해제하려면 아버지 명의의 핸드폰으로 본인 인증을 거쳐야 하는데, 사망자 처리된 아버지 명의의 핸드폰이 이 세상에 있을리 만무하다. 네이버측에 본인이 아버지의 직계자손인 것을 증명할 수 있으니 아이디 제한을 풀어달라 요청했지만, '가족이라고 해도 명의자가 아니면 아이디를 이용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 정보통신법이나 포털 내규로는 불가능하다. 열어볼 수 없는 앨범이 된 것이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내 블로그 글, 내가 찍은 사진들은 어떻게 될까. 현재 우리나라 포털사이트 정책으로는 나 아닌 다른 누구도 열어볼 수 없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화가 나는 날, 남 몰래 토해놓은 내 일기장을 누군가 읽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내 소중한 소역사가 누구의 손도 타지 못한채 묻혀버리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른바 '디지털 유산'은 사망한 자가 디지털의 형태로 남긴 부호, 문자, 음성, 음향, 화상, 동영상 등의 정보를 말하고 댓글, 아이디와 비밀번호, 사이버 머니까지 포함한다.

죽으면 그만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죽은 이후의 내 권리보다는, 사랑하는 가족이 내 유산에 접근하는 권한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실시간으로 백업한다. 나이가 먹을 수록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나고 여행을 떠나고 많은 일이 생기면서 찍어야 하는 사진이 더욱 늘어나고,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성향도 더욱 강해진다. '모든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집 어디인가 숨겨 둘게. 참고해'라고 미리 말해두는 게 유일한 대처로 보이지만, 비상금을 오픈하는 것 만큼이나(!!) 리스크가 있다. 기록하고 저장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수월한 이 시대에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내 지인의 사례를 똑같이 밟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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