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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

강요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2017-03-30 17:18

조회수 :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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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는다.
 
사망한 양배추를 곁들인 돼지고기 사체.

모든 메뉴는 일종의 부고.
 
가장 고결한 사람들조차

죽임을 당한 뭔가를 섭취하고, 소화해야 한다,

그들의 인정 많은 심장이

박동하는 걸 멈추지 않도록.
 
가장 서정적인 시인들조차 그러하다.

가장 엄격한 금욕주의자들도

끊임없이 씹고, 삼킨다,

한때는 성장을 지속했던 어떤 대상을.
 
나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신들과 화해할 수가 없다.

혹시 그들이 순진무구하다면 머를까,

그들이 귀가 얇아서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권력을 자연에게 넘겨준 거라면 모를까.

그리하여 광란에 휩싸인 자연은 우리에게 굶주림을 선사하고,

굶주림이 시작되는 곳에서

결백은 종말을 고한다.
 
그 즉시 배고픔을 향해 모든 감각들이 달려든다.

미각, 후각, 그리고 촉각, 그리고 시각.

어떤 요리를 먹는지,

어떤 접시에 담겨 나오는지 도저히 무관심할 수 없기에.
 
심지어 청각도 동참한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 속으로,

식탁에서 유쾌한 대화가 오가는 건 흔한 일이니까.
 
 
 
강요 -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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