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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획①)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중대한 헌법위반·탄핵사유

학계·법조계 "헌법상 국민주권주의 등 직접 침해"

2016-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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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전국 곳곳에서 성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만 남녀노소를 불문한 시민 2만명이 모여 박근혜 탄핵”,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울산과 부산, 전주와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터져나온 목소리도 같았다. 야당이 정치적인 셈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국민은 희대의 국정농단사건에 대한 헌법적 심판을 외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탄핵이다.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이 가시화 되면서 대통령의 헌법상 형사불소추특권도 문제되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순실 게이트’가 처음 터졌을 때만해도 야당은 당장 ‘박근혜 탄핵’을 전면에 내세워 청와대와 여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그러들었다. 역풍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탄핵 국면으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 돈다. 지지세력이 결집되면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올라간다. 탄력을 받은 여당이 세를 추스르면서 결국 탄핵소추안 발의도 물 건너간다. 내년 대선까지 끌고 가야 할 ‘국정농단’ 이슈 동력이 꺼져 모처럼 잡은 승기를 놓치게 된다. 이것이 야당이 두려워 하는 ‘역풍’이다.
 
그러나 민심은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들의 구호부터 달라졌다. 과거 “책임자 처벌”이나 “정치 개혁”, ”사죄하라“ 등의 미온적 구호가 아니라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 ”박근혜 탄핵“, ”박근혜 하야“라는 구체적 요구로 바뀌었다. 이런 목소리는 지난 30일 서울 청계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이후 현재까지 매일 계속되고 있다.
 
하야, 현실성 없어
 
지금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는 현실성이 없다. 그는 지난 25일 사전 녹화한 1분40초간의 짧은 사과 이후 복지부동하고 있다.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기습 입국’을 하루 앞두고 우병우 민정수석 등 일부 청와대 수석들을 교체한 것도 여론 무마용 땜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때문에 이번 사태의 근본적 해결 방법으로 헌법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탄핵이 가장 헌법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헌법 65조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 또는 ‘국정 농단’을 박 대통령의 ‘직무집행’상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로 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최씨가 지금 받고 있는 혐의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외국환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 또는 배임, 강요, 업무방해, 뇌물 등 10여개다. 이 중 대통령기록물관리법 관리법 위반이나 뇌물죄 등은 법리 해석상의 문제가 있지만 최씨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도 공범이라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25일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표현 등을 도움 받은 적이 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고 시인했다.
 
"재직 중 소추 안돼"
 
그러나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대통령의 헌법상 불소추특권이다. 최씨나 박 대통령의 혐의 중에는 내란이나 외환의 죄는 없다. 때문에, 박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직을 사임하지 않는 이상 박 대통령을 최씨와의 공범으로 기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행위는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탄핵사유에 해당된다 것이 헌법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박 대통령은 형사상 범죄 이전에 기본적으로 국민대표주의, 국민주권주의라는 헌법상 기본원리를 침해하는 헌법 위반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탄핵은 징계적 조치이기 때문에 탄핵으로 파면되더라도 기소할 수 있다. 즉,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송기춘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31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헌법상 대통령은 국민이 맡긴 대표권한을 충실히 행사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가 있지만 박 대통령은 이것을 방치하고 국민의 통제나 감시를 벗어난 집단에게 의사결정을 일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영향이 국민에게 미쳤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며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은 그 다음 문제”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또 “박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했으므로 헌법상 국민주권의 원리를 위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국민이 준 권한 최씨에게 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을 역임한 이재화 변호사도 같은 지적을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행위 중 가장 큰 탄핵사유는 ‘대통령 권한의 양도’”라며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국가 원수이자 대표자로서, 그 권한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것인데 박 대통령은 이것을 최씨에게 줘버렸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통령은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한다고 정한 헌법상 국민주권주의를 철저히 유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역임한 황도수 건국대 교수(변호사)도 “박 대통령의 행위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례에 비춰볼 때 매우 엄중한 위법행위”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신중론도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연구원 출신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전학선 교수는 구체적인 형사상 위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전제로 “최씨에게 유출된 문건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기록물이라고 한다면 직무상 위법행위로 탄핵사유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으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역임한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설문에 대해 단순히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탄핵사유로 보기 어렵다”며 “탄핵을 위해서는 헌법 또는 법률위반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수사 중으로 확정적인 위법행위가 드러난 것이 없다. 검찰 수사를 신중히 지켜본 다음 구체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심이 목소리를 높이고 학계와 법조계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여부를 두고 이같이 해석하더라도 국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발의는 오직 국회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발의에 찬성해야 하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 소리치는데 국회는 모르쇠"
 
이재화 변호사는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는, 국민들은 가만히 있는데 국회에서 깜이 안 되는 사유를 가지고 탄핵을 하더니, 이번에는 국민이 직무상 중한 위법해위로 박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오히려 국회가 몸을 사리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다면 헌정사상 세 번째가 된다. 노 전 대통령 전에 유태승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된 것이 첫 사례다.
 
12대 국회 128회 정기회 중인 1985년 10월18일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 102명은 사법부에 대한 탄핵발의 1호로 제8대 대법원장인 유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을 국회에 접수시켰다.
 
‘사법 본질과 법적 정의를 소홀히 한 채 정부권력에 영합해 사법에 의한 인권침해판결을 한 법관을 우대하는 인사 조치를 함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앞장서 법관의 재판에 대한 독립을 규정한 헌법 104조를 침해했다는 것’이 사유였다.
 
그러나 같은 달 21일 이 결의안은 재석의원 247명 중 찬성 95표, 반대 146표, 기권 5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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