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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범죄 저질렀으면 범죄단체” 박사방 1심이 준 교훈

2021-01-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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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법원이 '박사방'은 범죄조직이 맞다는 판단을 연달아 내놨습니다. 터치 몇 번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은 어째서 범죄조직으로 인정됐을까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재판장 조성필)는 지난해 11월 '박사' 조주빈의 1심 선고공판에서 '박사방 조직'이라는 범죄집단 조직·활동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범죄단체의 부수적 특성에 무게를 두는 대신 범행의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성범죄 목적을 위한 반복적 역할 분담입니다.
 
당시 재판부는  “(구성원) 대부분은 텔레그램 박사방 및 ‘시민의회’, ‘노아의 방주’ 방에 참여했는데 위 방들은 모두 피고인 조주빈이 만든 성착취물을 유포한다는 점과 참여자들이 조주빈을 추종하며 따른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했다”며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대체로 유사한 역할과 지위를 유지했다는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형법에서 정한 범죄집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주빈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은 성착취물을 영리목적으로 반복 유포하고, 피해자를 유인하는 광고를 게시하고, 일부는 조주빈에게 가상화폐를 주고 고액방에 가입해 성착취물을 받아 소지하며 지시를 따랐습니다.
 
범죄로 얻은 수익인 가상화폐 대부분을 조주빈이 가져갔다거나 다른 구성원을 속일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은 배척됐습니다. 재판부는 가상화폐 제공·취득이 범행이 반복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였고, 박사방 구성원들은 조주빈이 암시한 성착취물이나 고액방이 실존할 것으로 기대하고 참여하면서 가상화폐 제공이나 범행 협력으로 범행을 고도화했다고 봤습니다.
 
형사합의31부는 지난 21일 박사방 2인자로 지목된 '부따' 강훈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법원에 따르면 강훈은 아는 사람의 얼굴을 합성하는 '지인능욕'을 부탁하러 조주빈에게 접근했다가, 돈이 없어 2019년 9월 하순부터 박사방을 관리했습니다. 범죄사실을 인식하면서도 피해자를 유인하고 성착취 영상을 제작해 조주빈에게 범죄수익을 전하면서 공범이 되었습니다.
 
이같은 판단을 근거로 재판부는 강훈이 조주빈 협박으로 박사방을 관리했다는 등의 주장을 전부 배척했습니다. 강훈이 단지 성착취물을 시청할 목적이었다면 박사방을 관리할 필요가 없었고, 자발적으로 박사방을 관리해 조주빈이 계속 성착취물을 제작할 동기를 제공했다는 판단입니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면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논리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가입과 탈퇴 절차라는 것은 집단 구성원의 계속성을 담보하는 장치일 뿐, 그 자체로 범죄집단 성립을 구성하는 요건은 아니다"라며 "특정 다수인이 결합체를 이뤘다면 범죄 집단을 조직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판부는 범죄 수익 분배 여부도 범죄 목적이 분명해 범죄집단 성립 판단에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주빈과 강훈은 1심에서 각각 징역 40년과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두 형량을 합치면 한 사람의 일생에 가깝습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대가입니다.
 
범죄를 저지르기 편리해진 세상입니다. 쉽게 모였다 흩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도망치기도 쉬울 것 같지만, 본질은 가려지지 않는 법입니다. 두 번에 걸친 박사방 1심 선고는 텔레그램을 통해 저지르는 범죄의 편의성이 무죄에 대한 편의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줍니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씨('박사')가 지난해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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