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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전쟁에 사무쳐야 평화가 온다.

2020-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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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른 나라 선거지만 한국인에게는 한국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일이다. 경제와 평화 때문이다. 미국의 의사결정은 한국 경제와 한반도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 문제를 넘어 북한과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상회담에 많은 기대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한반도 평화에 새롭게 접근할 것이라고 한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톱다운 방식을 폐기하고 실무협상을 통한 원칙적 접근을 주장해 왔다. 북핵 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과 조율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가 절박한 한국의 입장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보다 훨씬 큰 개념이다. 개인의 평화와 안전, 공동체의 안전, 국가의 안전, 국가간 안전을 모두 포함한다. 그렇지만 전쟁의 소멸이 평화의 출발점이라는 점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쟁을 없애려면 사람들이 전쟁에 사무쳐야 한다. 전쟁이 고통이고, 허망하고 비이성적이라는 점은 보통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쟁을 즐기고 이용한다. 수많은 나라들이 대량살상 무기를 계속 만들고 수출하고 거래하고 있다. 심지어 군수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전쟁이 고통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고통을 즐기는 것이다.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보통 정신이상자로 분류된다. 입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고 거래하는 국가 역시 비정상적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완전한 평화를 달성할 수 없다. 핵확산금지 조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핵을 가진 국가들이 핵의 무서움에 사무쳐 핵을 폐기하지 않고 오히려 핵을 이용하여 세계 정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핵이 괴로움이 아니고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처럼 보인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전쟁이라는 현상을 덩어리로 보면 전쟁을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을 분해해서 구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과학, 학문은 사태를 분해함으로써 시작한다.
 
전쟁은 정치와 폭력으로 분해할 수 있다. 정치는 투쟁의 정치와 대화의 정치로 나뉜다. 이중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임은 분명하다. 세계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명확하다. 대립과 투쟁의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가고 있다. 과거지향적인 복수 중심의 정치는 미래지향적인 건설 중심의 정치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한쪽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하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선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방적인 승리는 어렵다. 대통령은 지지자만이 아니라 반대자도 포용해야 한다. 
 
전쟁의 폭력은 국가의 폭력이지만 결국 분해하면 개인의 폭력과 다를 바 없다. 모든 폭력은 상대방의 부정을 목표로 한다. 나아가 현대 전쟁의 폭력은 자신의 절멸, 인류의 절멸, 지구의 폭발까지도 포함한다. 핵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은 그 자체로 고통이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고통을 준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평화와 행복을 침해한다. 
 
폭력을 다시 분해해보자. 폭력은 행동이지만 그 행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성냄, 적의, 분노에서 시작한다. 성냄, 적의, 분노는 심리현상이다. 1분에도 수없이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는 심리현상이다. 결국 전쟁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고통, 괴로움일 뿐이다. 전쟁은 그 자체로 보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분해해 보면 이처럼 하찮은 것이다. 
 
전쟁, 폭력, 고통, 성냄, 적의, 분노에서 벗어나려면 이에 사무쳐야 한다. 사무칠 정도로 넌더리가 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로만 성냄을 없앨 뿐, 전쟁을 즐기고 이용하고 평화를 전쟁의 제단에 바치는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평화는 전쟁에 사무칠 때 다가온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모든 지도자들이 전쟁을 깊이 생각해보고 전쟁에 사무치기를, 전쟁에 넌더리가 나기를 바란다. 전쟁에 사무치는 다수의 시민이 있다는 점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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